[헬스동아]치료 어려운 복막전이암, ‘HIPEC(온열화학요법)’으로 잡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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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막전이·재발암 클리닉 개소 기념식. 이근 병원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이원석 교수(오른쪽에서 세 번째)를 비롯한 병원 관계자들이 축하하고 있다. 가천대 길병원 제공
복막전이·재발암 클리닉 개소 기념식. 이근 병원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이원석 교수(오른쪽에서 세 번째)를 비롯한 병원 관계자들이 축하하고 있다. 가천대 길병원 제공

직장인 김 모 씨(34)는 2년 전 대장암 3기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암을 잘라내고 항암치료도 모두 마쳤다. 이후 야채, 과일과 같은 음식을 주로 먹고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요양원도 다녔다. 정기적으로 대장내시경을 받으며 혹시 모를 재발암에 대비했다. 하지만 최근 이뤄진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에서 복막에 암이 발견됐다. 복막전이암이 의심된다는 의사 소견에 김 씨는 가천대 길병원 복막전이·재발암 클리닉을 방문했다. 복막전이암 진단을 위한 검사에서 김 씨의 복수천자액은 장액성인 황색으로 나왔고, 세포 검사에서는 다수의 악성 암세포가 발견됐다. 복막전이암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다. 이원석 가천대 길병원 복막전이·재발암 클리닉 교수는 치료를 위해 개복 수술과 복강 내 온열화학요법(HIPEC)을 병행하기로 했다.

말기암으로 취급되는 복막전이암

복막전이암의 가장 흔한 원인은 대장암이다. 대장암 수술 환자의 전체 재발암 중 복막전이는 25∼35%로 간 전이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한다. 결장암에서는 수술 후 최고 12%, 직장암에서는 수술 후 최대 19%에서 발생한다. 대장암 환자의 전체 재발률이 25∼43%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예후도 나쁘다. 대장암 환자의 간이나 폐 전이의 5년 생존율 30∼35%에 비해 복막전이는 평균 생존기간이 5∼7개월에 불과하다. 복막전이암이 말기암으로 취급되는 이유다.

복막전이암은 암 세포가 배 부위 복막 전체에 퍼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실제 개복해보면 노랗거나 주황색의 둥그런 암세포 덩어리가 복막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암 외에도 5mm 이하의 작은 암세포도 다수 존재한다.

암이 발생하는 정확한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환자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높은 복강 내 암세포 빈도, 높은 원발암의 침습도가 보인다. 따라서 대장의 장벽을 뚫고 나온 암세포가 복막에 뿌리를 내려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또 암세포가 혈액, 림프관 혹은 절단된 정맥을 통해 외부에 노출, 복막에 파종돼 발생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복막전이암은 개복을 하기 전에는 진단이 매우 힘들다. 주요 증상은 복부 팽만이나 간헐적 복통이다. 장폐색이나 복수가 동반된다. 진단은 초음파나 CT로 가능하다. CT의 경우 2cm 이상일 경우 발견율은 70%로 높아진다. 다만 5mm 이하의 작은 병변은 발견이 어렵다. 즉, 복막 내 암 덩어리가 충분히 성장하고 나서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병 빈도는 남성이 여성보다 3배 정도 높으며 주로 40대 이후에 많이 발병한다.

이원석 가천대 길병원 복막전이·재발암 클리닉 교수
이원석 가천대 길병원 복막전이·재발암 클리닉 교수

HIPEC로 암세포 괴멸 유도

복막전이암은 치료가 매우 어렵다. 최근 다양한 항암제가 개발되면서 전이성 대장암의 생존율이 높아진 것과 다른 양상이다. 복막에는 혈관이 매우 적기 때문에 항암제가 암세포에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다.

복막전이암 치료는 수술과 항암제로 가능하다. 수술적 치료는 복강 내에 보이는 모든 암 덩어리를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암 덩어리의 제거 정도가 환자 예후에 직결된다. 눈에 보이는 암 덩어리는 모두 없애야 한다.

5mm 이하의 미세 암세포는 제거가 어렵다. 따라서 항암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미세 암세포를 제거하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다만, 항암제가 암 세포에 정확히 전달되기 어렵다.

HIPEC은 암세포에 항암제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다. HIPEC은 항암제를 42∼44도까지 데워서 혈관에 주입하는 방법이다. 따뜻한 항암제로 병소 부위의 온도가 40∼43도까지 높아지는데, 이에 세포막의 변성이 이뤄지고 혈관 투과도가 높아지면서 병소 내 약물 농도가 최대 25배까지 올라간다. 암세포에 항암제가 제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의료진의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최대 약 90분간 시행된다.

HIPEC을 받기 위해서는 전신 마취와 특수 장비가 필수적이다. 일반적인 진료실에서는 이뤄질 수 없다. 이 교수는 “암세포는 기본적으로 열에 매우 취약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며 “HIPEC을 통해서 암세포의 괴멸을 유도하면, 이는 결국 환자의 생존율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실제 HIPEC을 받은 환자들의 중앙생존기간은 대조군의 12.6개월에서 22.3개월로 연장됐다. 2년 생존율은 16%에서 43%로 증가됐다는 보고가 있다.

이원석 교수(왼쪽)가 복막전이암 환자에게 HIPEC을 시행하고 있다.
이원석 교수(왼쪽)가 복막전이암 환자에게 HIPEC을 시행하고 있다.

HIPEC, 복막전이 생존율 크게 높여

최근 인천 최초로 복막전이·재발암 클리닉을 개소한 가천대 길병원은 첨단 HIPEC 시스템을 도입했다. 본관 2층에 자리한 복막전이·재발암 클리닉은 항암, 영상, 수술, 핵의학, 마취 분야 전문의는 물론 암 전문 코디네이터를 비롯한 다학제 기반의 10여 명의 의료진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10여 명의 의료진은 최고의 팀워크와 인프라를 갖춰, 종양 절제와 HIPEC 시술로 복막전이 치료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이 교수는 “복막전이는 많은 의료진이 사실상 치료가 어려운 말기 암으로 보는 것이 공통된 시각”이라며 “복막전이 시 HIPEC을 시행하면 환자들의 기대 수명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진혜 기자 jhpark102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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