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판례DB-전자소송 베트남에 전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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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현지 사법지원 마친 오병희 판사
“베트남 통일과정 법제 연구하면 통일 한국 사법 정비에 큰 도움”

“아끼던 선배 법관들이 말렸어요. 당장 법관 경력에 도움은 안 되겠지만 선구자는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왠지 모를 사명감이 저를 베트남으로 이끌었습니다.”

2014년 초 ‘베트남 법원연수원 역량강화 사업’ 현지총괄책임자를 구하는 대법원의 채용공고를 처음 봤을 때 오병희 대구지법 부장판사(47·사법연수원 30기·사진)는 망설임 없이 지원서를 냈다. 2009년 정부 대표단 자격으로 민사사법 공조 조약을 체결하러 가면서 베트남과 첫 인연을 튼 그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법관 14년 차, 주변에서 경력관리가 필요하다며 만류했지만 오 부장판사는 2014년 2월 베트남으로 떠났다.

베트남 법원연수원 역량강화 사업은 대법원이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법관 교육역량을 강화하고 현지 사법부의 위상을 높이고자 용역 계약을 맺고 시작한 사업이다. 앞서 같은 사업의 일환으로 법원 연수원을 출범시켰는데 법관 교육시설이 베트남에 도입된 것은 처음이다. 오 부장판사는 올해 2월까지 3년간 베트남 현지 법관들을 상대로 한국 법제를 소개하고 법원 연수원의 운영과 관리 방법 등을 전수하고 돌아왔다.

그는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에 따라 사회규범을 규정하는 법제도도 달라진다”며 “새로운 법제도를 수용하려면 법관도 지속해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열의 있는 연수생도 많았지만 교육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공산당과 행정기관의 지침이 우선시돼 법을 통치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 한국의 좋은 법제를 당장 현실화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1986년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머이(베트남어로 쇄신)’ 이후 서구나 선진국의 좋은 법제를 수용했지만 기존의 법과 상충하는 규정들을 손질하지 못해 국민의 권리 구제는 물론 국가 운영도 매끄럽지 않은 상황이다.

오 부장판사는 베트남 최고인민법원(베트남 최고법원)과 협력해 현지 사법제도를 개선하고 입법을 지원하기도 했다. △데이터베이스화된 판례제도 △전자소송제도 △가정법원 운영안 등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법제 등을 중심으로 연수생들에게 소개했다고 전했다.

1992년 한국과 수교한 베트남은 올해 4월 기준으로 중국과 미국에 이어 한국의 무역량 3위를 차지하는 중요한 교역 파트너다. 하지만 외국인이 건물을 소유할 수 없다는 법 규정 등 베트남 법제를 잘 이해했다면 위험요소를 미리 피할 수 있음에도 분쟁이 발생해 현지에서 사업을 하고 있거나 상주하는 교민들이 법정으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오 부장판사는 “베트남의 통일 과정에서 세워진 법제를 연구하면 향후 통일 한국의 법제 정비에도 참고가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북베트남이 통일 이후 시행착오를 겪었던 부분이 북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양국의 다리가 될 후배 법관들의 많은 지원이 이뤄졌으면 하고 소망합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오병희 판사#베트남 법원연수원 역량강화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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