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조선업 발전 이끈 숨은 주역 한국 원자력발전의 ‘맏형’ 떠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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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고리1호기 1977∼2017
터빈 세우자 원자로 300도→ 90도… 발전기 출력 ‘0’ 되면서 사망 판정
2012년엔 12분간 전원차단 사고도

한국 원자력발전소의 맏형 격인 고리원전 1호기의 심장이 19일 0시에 멎었다. 원자로에서 만들어진 수증기로 발전기를 돌리는 터빈이 17일 오후 6시께 멈춰 서면서 원전의 심장 격인 원자로가 식어가기 시작했다. 섭씨 300도에 달하던 원자로 온도가 18일 90도까지 내려가면서 사망과 다름없는 영구정지 판정을 받았다. 향년 40세.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건설된 고리 1호기는 1977년 6월 18일 시험운전을 위해 원자로에 불을 붙이면서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당시 공사비로 한국 국가 예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억 달러가 투입되며 태어날 때부터 한국 산업 발전의 상징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미국, 영국 등의 차관 자금과 미국 원전회사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지원이 고리 1호기의 탄생에 힘을 보탰다. 이런 인연으로 웨스팅하우스는 고리 1호기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고리 1호기의 전성기는 단연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이었다. 급성장하던 남동해안의 중화학 공업 지대에 값싼 전기를 공급하는 중책을 맡았다. 노기경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장은 “지난해 고리 1호기가 전국 발전설비 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정도였지만 운영 초기에는 주변 산업단지에 값싼 전기를 공급하며 제철·조선산업 발전의 초석이 됐다”며 ‘고기(古機)’의 업적을 기렸다.

17일 발전기 출력 0%가 표시된 고리1호기 주제어실 계기판.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제공
17일 발전기 출력 0%가 표시된 고리1호기 주제어실 계기판.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제공
고리 1호기는 한국이 세계에서 6번째 규모의 원자력발전 용량을 갖춘 원자력 강국이 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산업화 속도에 비해 비교적 일찍 원전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높은 수준의 관리 노하우를 쌓았다. 직원들은 고리 1호기의 심장이 멎던 마지막 순간까지 발전소 3층 주제어실 벽면의 200여 개 제어반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상주(喪主)처럼 맥박과 안전을 살폈다.

박지태 고리1발전소장은 1979년 한국전력에 입사해 직장생활 대부분을 고리 1호기와 동고동락한 벗이다. 박 소장은 “예방 점검 때가 아니면 터빈을 멈춰 세울 일이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게 됐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영광스러운 나날이 컸지만 최근에는 안전성이 우려된다는 비판을 받으며 험한 말년을 보냈다. 특히 2012년에는 작업자 실수와 기기 결함으로 12분간 발전소 내 전원이 꺼지는 ‘심장마비’ 상태가 왔는데도 관리자들이 이를 은폐하면서 원전 안전 논란의 주범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방사성물질 누출과 피폭(被曝)에 대한 인근 주민들의 걱정도 가라앉지 않았다. 갑상샘암에 걸린 주변 주민 600여 명이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뇌혈관 파열 격인 원자로 폭발이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민적 우려는 더욱 커졌다.

유족으로는 고리 1호기에서 약 2km 떨어진 신고리 3·4호기 등이 있다. 이들은 1개 호기당 발전 용량이 1400MW로 아버지 격인 고리 1호기(587MW)의 갑절이 넘는다. 의학에 견줄 수 있는 각종 기술의 발전으로 설계수명이 60년에 이르는 등 아버지 세대를 훨씬 앞서는 성능을 갖췄다. 장례는 19일 오전 고리 1호기 현장에서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 퇴역식으로 치러진다.

기장=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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