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눈]혁신 시대의 ‘측정표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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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박상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사회적으로 합의된 ‘표준’의 개념이 처음 등장한 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 시절이다. 표준은 그만큼 오래되고 중요한 사회적 기초 인프라다. 확고한 표준이 확립되지 않은 사회는 격랑의 소용돌이에 빠지기도 했다. 프랑스 대혁명의 혁명 구호 중 하나가 ‘공정한 표준의 제정’이었다. 이 프랑스혁명은 1875년 17개국이 체결한 미터협약으로 귀결됐다는 걸 생각하면 국가적, 세계적인 표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유척’을 지니고 다니며 전국 지방관아의 표준을 엄격히 감찰한 바 있다.

현대에는 표준을 수립하고 유지하는 데 고도의 과학기술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측정과학’이라는 개념이 물리, 화학, 생물 분야 전반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 측정의 기준이 되는 ‘측정원기’는 현대과학기술의 결정체로 불리며 다른 과학기술 발전의 기틀이 된다. 측정과학을 만난 표준, 즉 ‘측정표준’은 인류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로 구현한 사회적 기준시스템인 셈이다.

고도의 측정표준은 실제 우리 경제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을까. 일례로 시간표준은 우리의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발전에 꼭 필요한 요소다. 높은 주파수 신호로 이루어지는 통신 분야에서 시간표준이 부정확하면 큰 오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국가 시간표준 원기 ‘세슘원자분수시계’를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1억 년간 1초 이하의 오차를 갖고 있을 만큼 정확하다. 이렇게 확립한 시간표준은 ICT 산업뿐 아니라 국내 과학기술 및 산업계 전 분야에 쓰는 핵심 기준이 됐다.

산업체는 시간은 물론이고 길이, 무게, 온도, 전류 등 우리 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기준을 이용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든다. 이럴 때 정확한 표준을 유지하기 위해 쓰는 ‘측정기기’는 반드시 공신력 있는 인증기관에서 교정을 받아야 한다. 측정과학 역량을 보유하지 못한 국가는 외국의 선진기관으로부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측정기기들을 교정받기도 하지만 국내 산업체는 우리 손으로 개발한 국가표준을 활용해 저비용으로 편리하게 교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측정표준은 첨단산업은 물론이고 의료, 환경, 식품 등 중요한 국가정책의 설립 과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명백한 표준을 제공함으로써 정책의 오류를 방지할 수 있고, 그 성과 역시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측정기술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를테면 의료 진단의 정확성 역시 측정표준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의료검진기기를 교정할 측정기술이 부정확하면 환자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가 부담하는 의료재정에도 큰 낭비를 가져올 수 있다. 진단의 오류를 줄여야만 중복진단, 과잉진료, 잘못된 치료시기 결정 등에 따른 진료비 부담 증대도 막을 수 있다.

측정표준은 선진사회와 선진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국가 인프라이다. 첨단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정부와 산업계도 이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국가측정표준체계가 세계적인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는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다가올 혁신의 시대를 맞아 첨단 국가측정표준시스템 구축에 국민적 관심과 성원이 한층 더 요구되는 이유다.

박상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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