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주의 쏠리는 佛 앵그리 영맨 “전쟁 나면 좋겠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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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대선 D-2… 심상찮은 ‘분노의 표심’

프랑스 파리의 상징, 에펠탑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청년직업정보센터(CIDJ). 스포츠 매장 판매원을 하다가 새 직장을 찾기 위해 이곳에 들른 그나르아 씨(31)는 “새 대통령은 무조건 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며 “많은 청년들이 매달 말만 되면 다음 달을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적성 검사, 취직 및 창업 상담, 무료 변호까지 취업 지원 원스톱 센터인 이곳은 매일 일자리에 목마른 청년 400여 명이 찾는다. 이런 센터가 전국에만 4000개가 넘게 있다. 4명 중 1명이 실업 상태인 프랑스 청년, 이른바 ‘앵그리 영맨’은 23일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문화 관련 직업을 갖고 싶어 이곳을 찾은 20대 파투 다보 씨는 “내 주변에는 실업자투성이고 일을 하더라도 모두가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며 “나는 (극좌 성향의) 장뤼크 멜랑숑 후보를 지지한다. 새롭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968년 기존 질서를 뒤엎는 사회변혁운동 ‘68혁명’을 이끌었던 프랑스의 ‘앵그리 영맨’들이 또다시 기존 정치 질서를 뒤엎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의 표심은 극단주의에 이끌리고 있다. 2012년 대선 때 극우 성향의 국민전선(FN) 마린 르펜 후보는 25세 미만 젊은층에서 15%를 얻었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40% 가까운 지지를 받고 있다. 2015년 지방선거에서 FN이 28%를 얻어 14곳의 지방자치단체장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둔 것도 분노한 젊은층의 몰표가 큰 힘이 됐다. 르펜은 당시 “우리 청년은 절망에 빠져 있다. 나는 목소리를 잃은 그들의 대변자가 될 것”이라며 10대와 20대를 대거 공천했다.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이 주원인이다. 지지율 3위를 달리고 있는 우파 공화당 프랑수아 피용의 지난달 18∼24세 유권자층 지지율은 1.8%에 불과하다. 직업교육을 비롯해 실업에 대해 가장 많은 공약을 내걸었고, 나이도 40세로 가장 젊은 중도 성향의 ‘앙마르슈(전진)’ 후보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도 청년층의 지지가 약하다. 엘리트 학교인 파리행정학교(ENA)를 나오고 거대 은행인 로스차일드은행에 근무한 경력 때문에 젊은층의 반감이 크다. 좌파 성향의 청년 표심은 사회당 브누아 아몽 후보가 아닌 극단주의로 비판받는 멜랑숑에게 쏠리고 있다.

지난해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11월 미국 대선에서는 젊은층이 포퓰리즘을 막는 첨병 역할을 했다. 당시 젊은층은 EU 잔류를 지지하고, 미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를 거쳐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지지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이탈리아 개헌 국민투표에선 기성 정치에 불만이 가득 찬 18∼24세 젊은층 80%가 개헌 반대표를 던져 마테오 렌치 후보를 물러나게 했다.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이 센 프랑스와 이탈리아, 두 나라의 공통점은 각각 24%, 39%에 달하는 높은 청년실업률이다.

‘68혁명’ 당시 학생들이 47일 동안 학교를 점거했던 파리정치대에도 최근 FN의 학생 지지 모임이 생겨났다. 청년들은 전 연령층 중 이민자에게 가장 배타적이다. FN 청년대표 가에탕 뒤소세(23)는 “내가 다니는 소르본대에서 난민 100명에게 숙식을 모두 제공하면서 정작 프랑스 학생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정부가 600만 명의 실업자와 1000만 명의 빈곤층이 있는데도 감당도 못 할 이민자를 계속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르펜은 이번 대선에서 수입세를 신설하고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의료, 교육 혜택을 뺏어 프랑스 청년을 채용하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19일 극우로 향하는 프랑스 청년들을 자세히 다룬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23세 마농 쿠드레는 이렇게 말했다. “제 할아버지, 할머니는 르펜을 두려워해요. 너무 극단적이고 그녀가 뽑히면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전쟁? 그거 일어나면 좋겠다고요.”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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