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지휘봉 때문에 죽은 작곡가 ‘륄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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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티스트 륄리.
장바티스트 륄리.
음악가들은 각기 자신의 악기(Instrument)를 가지고 있죠. 지휘자도 도구를 갖고 있지만 그것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없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지휘봉(Baton)이 그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지휘봉은 대체로 1810년에서 1840년 사이에 확산되었습니다. 낭만주의 초기 시대죠. 작곡가이자 지휘자로도 이름이 높았던 멘델스존이 이 지휘봉의 보급에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휘봉을 쓰면 지휘자의 박자 및 강약 지시가 크게 잘 보이고, 어두운 조명 아래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손가락의 섬세한 표정을 살릴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지휘봉을 사용하지 않는 지휘자도 많습니다.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총감독이자 영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인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딱 이쑤시개만 한 크기의 지휘봉을 들고 지휘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지휘봉은 낭만주의 시대보다 훨씬 이전인 바로크 시대에도 쓰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악단의 합주 자체가 정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박자가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악단의 큰 과제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휘자는 크고 무거운 나무봉으로 연주회장의 바닥을 쿵쿵 찧어 박자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독려했습니다. 이 때문에 음악사상 유명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1687년,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궁정음악가였던 작곡가 장바티스트 륄리가 자신의 찬미가(Te Deum)를 지휘하다가 그만 이 크고 무거운 지휘봉에 발가락을 찧어버린 것입니다. 상처는 곪아 패혈증으로 이어졌고, 프랑스 고전가극과 발레의 개척자였던 륄리는 결국 지휘봉에 생명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륄리처럼 ‘음악의 아버지’ 바흐나 ‘음악의 어머니’로 불린 헨델 이전의 음악가들의 작품을 들을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 개막 이후 여러 나라의 초중기 바로크 음악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 재발견되어 오늘날에는 그를 죽음으로 이끈 ‘테 데움’을 비롯해 음반도 여러 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내일(22일)은 ‘태양왕의 남자’였던 륄리가 지휘봉 때문에 사망한 지 33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멘델스존#지휘봉#장바티스트 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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