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산업부, 전기차 충전기 보급정책 오락가락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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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전기차 급속충전기를 보급하겠다며 사업 공고를 내놓고선 막상 사업 신청이 시작된 후에 사업계획을 바꿔 혼란이 일고 있다. 자동차 산업 규모가 한국보다 작은 영국 노르웨이와 비교해도 전기차 보급이 뒤처지는 이유로 부족한 충전 인프라가 꼽히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미숙한 일처리로 충전기 보급이 늦어지고 기업도 피해를 보게 됐다.

20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 정보기술(IT) 및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산업부와 에너지공단은 지난달 7일 ‘전기차 충전서비스 산업 육성’ 사업 공고를 냈다.

주유소, 카페 등 프랜차이즈, 주차장 등의 신청을 받아 총 40억 원을 들여 급속충전기 설치비용의 절반(개당 최대 2000만 원)을 지원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급속충전기 약 200개를 추가로 설치하려는 것으로, 지난달 말 기준 1139개인 국내 급속충전기의 약 18%에 달하는 규모다. KT와 한국주유소협회는 이에 업무협약을 맺고 “올 상반기부터 주유소협회에 소속된 주유소에 전기차 급속충전기를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정부 공고에 따르면 개인 또는 민간사업자는 공단에서 지정한 충전설비 전문기업을 통해 급속충전기 설치를 신청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충전설비 전문기업은 KT처럼 지능형 전력망(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한 전력망) 운영 능력을 가진 곳을 말한다. KT는 충전기 설치를 희망하는 곳을 모집해 1일 사업을 신청하려 했다.

그러나 사업 신청을 하려던 KT와 주유소협회는 산업부와 에너지공단 측으로부터 갑자기 “사업계획이 곧 변경될 예정이니 신청을 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공고 후 산업부 내에서 사업계획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당초 사업 취지는 소규모 충전사업자를 지원하려는 것이었는데 대기업이 중간에 개입하는 것은 취지가 왜곡된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산업부는 각 사업자가 KT 등 충전설비기업을 통하지 않고 에너지공단에 직접 신청하는 것만 인정하는 쪽으로 공고 내용을 바꿀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3주가량 일정이 지체된 것이다.

원래 공고를 바탕으로 사업을 준비해 온 기업들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충전기를 만드는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외국에서 들여오는 일부 부품은 주문 후 2, 3개월이 걸려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달 1일부터 사업이 진행될 것으로 믿고 미리 주문해 놓았는데 황당하다. 지방 주유소를 돌아다니며 한 달간 현지실사도 하고, 인력도 뽑아놨는데 곤란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KT와 주유소협회 측은 “전기차 충전이 신산업인 만큼 개별 주유소 사업자는 전기차 충전기 운영 노하우가 거의 없어 사업 초기 고장수리·사후관리·콜센터 운영 등 KT의 운영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런 것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카페 등 프랜차이즈나 주차장 등 다양한 사업자에게 충전기를 보급하려던 원래 사업 취지를 살리려는 것”이라며 “중간에 대기업이 개입하면 각 사업자가 수수료를 부담해야 해서 충전 가격이 높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개별 주유소가 충전사업자로 등록하는 절차는 크게 까다롭지 않고, 다른 사업들도 보통 1, 2개월 정도 지연되는 일은 많다”고 밝혔다.

15일 테슬라는 ‘스타필드하남’에 국내 1호 매장을 열고 자체적으로 충전소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테슬라는 자사의 차량이 본격적으로 출고되는 6월에 맞춰 국내에 전용 급속충전기(슈퍼차저) 5개와 완속충전기(데스티네이션 차저) 25∼30개를 설치할 계획이다.

현재 국내 전기차 충전기는 급속충전기를 합쳐 총 2526개로, 일본의 2만2000여 개에 비해 경제 규모를 감안(일본 국내총생산은 한국의 3.5배)해도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전기차#충전기#보급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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