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영토’ 보호나선 EU… 美의 IT기업에 총공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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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디지털 단일시장’ 구축 앞두고 구글·페북 등 ‘실리콘밸리 옥죄기’

유럽연합(EU)이 최근 미국 정보기술(IT) 대기업인 구글을 상대로 반(反)독점 위반 조사를 확대하면서 ‘안티 아메리카’(반미·反美)를 내건 ‘보호무역주의’라는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럽 각국이 느려터진 인터넷 환경이나 위험을 회피하는 기업 문화는 혁신하지 않고 오로지 미국 IT기업 규제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EU 반독점위원회가 이달 20일 구글이 스마트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에 대해 시장지배력을 남용해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며 연매출의 10%에 해당하는 최대 74억5000만 달러(약 8조4535억 원)의 벌금을 매기면서 이런 논란에 불을 지폈다.

EU가 반독점법을 빌미로 미국 기업들을 옥죄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들어서다. 2004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PC 운영체제 ‘윈도’에 멀티미디어 소프트웨어 ‘미디어 플레이어’를 끼워 팔아 경쟁사 진입을 막았다며 EU는 4억9700만 유로(약 6397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당시 MS 윈도의 시장점유율은 90%를 웃돌았다. MS는 EU와 10년 넘게 분쟁을 벌인 끝에 총 25억 달러(약 2조8367억 원)의 벌금을 냈다.

EU는 또 지난해 6월 아마존의 전자책 판매 사업과 관련해 반독점 위반 혐의에 대한 공식 조사에 착수했다. 여기다 애플도 지난해 ‘애플뮤직’ 출시에 맞춰 음반사들이 스웨덴 스톡홀름에 기반을 둔 ‘스포티파이’에 음원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

EU의 반독점법 위반 칼날은 미국 IT 대기업만 겨냥한 게 아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공룡 IT기업뿐 아니라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와츠앱 등 메시지 앱, 숙박 공유업체 ‘에어비앤비’, 차량 공유업체 ‘우버’ 등 스타트업 기업까지도 조사 대상으로 거론된다.

EU의 미국 기업 반독점 조사는 소비자 피해보다는 EU 내 경쟁 IT기업의 고소로 이뤄지고 있어 미국과의 통상 마찰이 예상된다. 올 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구글과 페이스북에 대한 EU 측 제재가 EU 회원국 IT기업을 돕기 위한 상업적 목적으로 보인다”며 “유럽은 미국 기업과 경쟁할 수 없기 때문에 장애물을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EU에 따르면 전체 유럽 디지털 시장에서 미국 기반 서비스가 54%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구글의 검색엔진 점유율은 90% 이상으로 미국 본토(60%)보다 훨씬 높다. EU가 구글을 반독점법 위반으로 결론 내린 데 대해 유럽과 미국이 농산물, 항공기에 이어 ‘미래의 원유’로 불리는 인터넷을 놓고 ‘3차 무역 분쟁’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 마이클 모리츠는 22일자 신문에서 “EU의 구글에 대한 반독점 조사는 새로운 ‘마녀사냥’”이라며 “EU가 미국의 IT 산업에서 밀리고 있다면 EU의 결점부터 먼저 심도 있게 조사하라”고 비판했다. 그는 상위 20개 EU 대학의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전공자 박사학위 취득률을 조사하거나 지난 100년간 유럽 출신이 받은 노벨상 수상자 수를 조사해 볼 것을 권했다. 또 EU 회원국들의 고교에서 이뤄지고 있는 과학교육 수준을 중국 싱가포르 인도 미국 등과 비교해 보라고 지적했다.

현재 EU에서 국경을 넘어 온라인 구매를 하는 비율은 15%밖에 되지 않아 미국의 아마존 같은 전자상거래 강자가 나타나기 힘든 구조다. EU집행위원회는 5억 인구를 가진 유럽의 디지털 시장을 통합하면 28개 EU 회원국 국내총생산(GDP)이 4150억 유로(약 502조 원) 증가하고 일자리 380만 개가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EU는 또 지식재산권, 세제, 개인사생활 보호정책을 정비해 유럽 IT기업을 육성할 방침이다.

디지털 혁명에서 미국에 주도권을 빼앗긴 EU는 당장 자체 경쟁력 강화에 신경을 써야 할 판이다. 다음 달부터 모든 회원국의 디지털 관련 제도를 하나로 통일하는 ‘디지털 단일 시장’ 체계를 만들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경제 규모가 미국과 비슷한 EU가 디지털 시장에서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이유 중 하나로 28개국으로 ‘파편화’된 점을 꼽았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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