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켜요 착한운전]사이렌 울리면 차량 좌우측 이동… 도로위 ‘모세의 기적’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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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초 양보로 5분 골든타임 지키자

“화재 출동 중입니다. 모두 좌우측으로 비켜 주십시오!”

13일 오전 9시 38분 서울 종로구 신영동 삼거리.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다급한 확성기 방송이 도로에 울려 퍼졌다. 신호에 걸려 앞에 늘어선 자동차들은 꼼짝하지 않았다. 편도 4차로의 넓은 도로였지만 소방차 앞 차량 운전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화재 신고 접수 이후 5분이 지났다. 불이 난 곳은 서울 종로구의 한 교회. 소방차 13대와 구급차 2대 등 총 15대의 앞길이 막혔다. 출동하던 종로소방서 소방관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구조대 차량 운전을 맡은 이주원 소방교(38)는 “소방차 앞을 막고 있는 차만 줄어도 출동시간을 훨씬 줄일 수 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일부 차량은 차로를 바꿔 양보해 주기는커녕 소방차 앞에서 맹렬히 속도를 내며 달렸다. 소방차가 길을 헤집고 달리자 바로 뒤에 따라오며 ‘속도’를 즐기는 차량까지 있었다.

진짜 난관은 골목길에서 시작됐다. 골목길에 들어서자마자 벤츠 BMW 등 고급 차량이 불법 주차돼 있었다. 폭이 5m가 채 되지 않는 좁은 골목길에서 소방차 행렬은 불법주차 차량을 만날 때마다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종로소방서에서 출동해 6.8km 떨어진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11분. 화재 초기 진압의 ‘골든타임’인 5분은 그렇게 훌쩍 지나가고 말았다.

○ 소방차 오면 일단 오른쪽 차로로

본보 취재진이 화재 현장에 출동하는 종로소방서 소방대원들과 동행해 본 결과 상당수 자동차 운전자는 소방차 등 긴급자동차가 출동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우왕좌왕하거나 오히려 소방차 앞을 달리며 속도를 높이는 경우도 많았다.

긴급차량 출동 때 운전자가 해야 할 행동은 간단하다. 뒤에 소방차 등이 긴급 업무를 위해 사이렌을 켜고 따라오면 도로의 우측 차로로 피해 일시 정지하면 된다. 도로교통법에도 규정되어 있는 내용이지만 국내 도로에서는 좀처럼 실현되지 않고 있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과거에 비해 긴급자동차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진 편이긴 하지만 아직도 소방차가 올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피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주행 중인 도로에 따라 양보 요령에도 차이가 있다. 만약 편도 1차로나 일방통행로에서 운전하다가 소방차가 따라붙으면 무조건 최대한 우측 가장자리로 이동해 일시 정지해야 한다. 편도 2차로에서는 소방차 등 긴급차량이 통상 1차로로 이동하기 때문에 일반 운전자는 2차로로 붙어서 양보하면 된다. 편도 3차로 이상인 도로에서는 소방차의 좌우로 차로 변경을 하면 된다. 긴급자동차를 위해 양보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앙선 침범이나 신호 위반 등 교통법규 위반을 하거나 사고 위험에 노출될 정도로 무리해선 안 된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양보를 하지 않았다면 처벌받지 않는다.

○ 좁은 골목길 불법 주·정차 차량도 문제

전문가들은 화재 진압의 ‘골든타임’이 화재 발생 후 5분 이내라고 말한다. 통상 불이 난 이후 5분이 지나면 화재의 확산 속도 및 피해 면적이 급격히 늘어난다. 지난해 전국 소방서의 현장 도착 결과를 분석해 보면 ‘출동시간 5분’을 지킨 경우는 60.9%에 불과했다. 의정부가 속한 경기 북부지역의 ‘5분 준수율’은 36.7%에 그쳤다.

소방당국이 소방차 길 터주기 훈련 및 단속 활동도 펼치고 있지만 아직 효과는 크지 않다. 국내에서 긴급자동차에 길을 양보하지 않으면 운전자에게 2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2012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서울에서는 4만∼6만 원 수준으로 부과하는 데다 그나마 이 명목의 과태료가 부과된 건수는 44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의미다. 소방차나 구급차의 진로를 막는 불법 주정차 역시 마찬가지로 처벌 대상이다. 현행법상 △소화전 등 소화용수시설 5m 이내 △황색 주차금지선 △좁은 골목이나 길모퉁이 △아파트 내 소방차 전용주차구역 등에는 주정차를 할 수 없다.

해외에서는 엄격한 단속으로 소방차의 진로를 확보하고 있다. 미국은 긴급자동차에 진로를 양보하지 않은 운전자에게 주(州)에 따라 50∼200달러의 벌금을 내게 하거나 최대 15일 구류에 처한다. 김상옥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반 운전자들이 긴급자동차가 출동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 만큼 대국민 교육을 해야 한다”며 “상습적으로 적발되는 운전자는 지금보다 가중 처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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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차 양보 Q&A


그저 빨리 달린다는 이유로 견인차가 긴급자동차에 포함된다고 잘못 알고 있는 운전자도 적지 않다. 복잡한 도로에서 긴급자동차가 뒤에서 달려오면 어떻게 비켜줘야 할지 정확히 알아야 다른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수 있다.

Q. 경광등 단 견인차는 긴급자동차?

A. 그렇지 않다. 견인차를 긴급자동차로 착각하는 운전자가 많다. 긴급자동차와 유사하게 꾸미거나 경광등(사이렌)을 달아놓은 경우가 많아서다. 도로교통법상 견인차는 긴급자동차에 해당하지 않아 다른 차량처럼 신호와 속도 등 규정을 지켜야 한다. 현실적으론 경찰이 제대로 단속하지 않는 데다 워낙 난폭하게 달리기 때문에 견인차를 보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법적인 긴급자동차는 소방차, 구급차, 혈액 공급차, 경찰차, 군대수송차, 수사기관차량 등이다.

Q. 긴급자동차에 양보하다가 신호를 위반했다면?

A. 모든 자동차는 긴급자동차에 진로를 양보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긴급자동차는 교통법규를 위반해도 특례 조항에 따라 처벌되지 않지만 양보해준 일반자동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양보한다면서 일부러 신호를 위반하거나 무리한 끼어들기를 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분명하게 긴급자동차에 양보하다 법규를 위반했다면 차량 운전자가 이의를 제기해 그 사실이 확인되면 과태료 부과는 무효가 된다.

Q. 출동 중인 긴급자동차와 부딪치면 누구 과실?

A. 교통 선진국과 차이가 큰 대목이다. 주요 교통선진국에선 긴급자동차에 잘못을 묻지 않는다. 그래서 선진국 긴급자동차는 한국 긴급자동차보다 훨씬 거칠게 질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제대로 양보해주었는데도 피해를 입었다면 국가가 피해 차량 운전자에게 손실을 보상해주긴 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신호를 무시하고 교차로를 지나가던 긴급자동차가 사고를 내면 고스란히 긴급자동차에 책임을 물린다. 전문가들은 이런 규정부터 선진국 수준으로 고쳐야 긴급자동차에 양보하는 운전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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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혁 hyuk@donga.com·김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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