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연혁]‘말뫼의 눈물’이 ‘말뫼의 웃음’이 된 사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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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스웨덴 쇠데르퇴른대 교수 정치학
최연혁 스웨덴 쇠데르퇴른대 교수 정치학
2002년 9월 25일 13시. 스웨덴 코쿰 조선소에서 크레인의 마지막 부분이 분해되어 운송선박에 실리자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눈물을 삼켰다. “이제 말뫼는 끝인가? 과연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

코쿰의 크레인은 198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리던 스웨덴 조선(造船) 산업의 상징이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았지만 값싼 노동력으로 압도하는 한국에 고전하면서 적자를 면치 못하자 막대한 해체비용을 부담한다는 조건으로 단 1달러에 판매된 이 크레인은 지금 울산 현대조선소의 얼굴이 된 지 10년이 되었다.

도시의 상징을 한국에 넘겨주기 전부터 말뫼는 절치부심했다. 파산한 산업도시로서의 실추된 이미지 제고와 말뫼 시민들의 자존심을 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말뫼의 새로운 랜드마크인 ‘터닝토르소’ 건물이다. 나선형으로 뒤틀린 형상으로 지어진 이 현대식 주상복합건물은 코쿰 크레인(138m)보다 52m가 높은 190m로 7층까지는 호텔 및 사무실로 쓰고 나머지 57층까지는 임대주택으로 사용한다. 가격이 저렴한 임대주택으로 환원한다는 것에 모든 시민이 환호했다. 입주가 시작된 2005년에서 8년이 지난 지금은 입주하려면 1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말뫼의 변신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터닝토르소 인근 부두 및 조선 시설들을 시에서 매입해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오랫동안 끌어온 외레순드 다리를 건설하기로 덴마크와 합의한 점도 작용했다. 스웨덴 정부는 1994년 환경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말뫼와 코펜하겐을 잇는 8㎞ 외레순드교와 4㎞ 터널로 구성된 토목건설을 위해 서명했다. 2000년 완공된 이 다리는 유럽의 대륙을 하나로 잇는 상징적 건축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지만 대륙에서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연결하는 관문인 말뫼는 그 이점을 활용하고자 했다.

말뫼 시장과 정책담당자들은 터닝토르소 주위를 세계 최고 주택단지로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코펜하겐과 말뫼를 연결하게 되면 두 도시 간 출퇴근 시간이 30분으로 단축되어 많은 주택이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문제는 엄청나게 소요되는 공사비용. 하지만 매립지 판매대금과 함께 건설비를 민간에 부담하게 하고 일정 기간 운영권을 제공해 해결했다. 2001년부터 7차에 걸쳐 이루어진 구간별 발전계획에 따라 순차적으로 주택지역을 조성해 나갔다. 결국 말뫼 시는 산업시설과 부두지역 매립지의 판매수익금과 기업자금 유입으로 흑자사업을 할 수 있었다.

신도시의 주요 개념으로 친인간, 친자연, 친환경을 정하고, 세계 최소탄소배출 도시의 청사진을 펼쳤다. 빗물 활용, 지열, 태양열, 그리고 바다와 인접한 이점을 살려 풍력발전시설을 설치하고, 가정의 쓰레기를 재활용 연료로 사용하여 가정용 전원을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지금은 100퍼센트 자가발전 시설을 갖춘 세계에서 가장 선도적인 저탄소 도시가 되어 기술자문과 공동투자를 통한 도시계획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성공모델은 스톡홀름 시의 함마르비 셰스타드 친환경 도시 건설에서도 볼 수 있다. 항만시설과 환경정화시설이 낡은 스톡홀름 동부산업지역을 개조한 이곳이 친환경 저탄소 에너지 도시로 거듭나면서 지금은 스톡홀름 시민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거주지역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근거리에 스키를 탈 수 있는 시설이 있고, 스톡홀름 시내까지 배로 출퇴근할 수 있으며, 협궤열차를 만들어 접근성을 좋게 하고, 도보 거리에 대형 쇼핑몰을 조성해 주민 편의성을 높인 결과 함마르비 셰스타드는 스톡홀름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친환경 도시지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말뫼와 함마르비 셰스타드의 도시 재건 모형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한국의 지역균형발전 및 신도시 개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말뫼의 경우 도시계획 청사진을 정치인, 관료 그리고 민간기업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안해냈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대단위 토목사업의 실패는 곧 국민 세금을 축낸다. 국가 혹은 지방정부 예산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민간이 함께 성공할 수 있는 모델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한국도 친인간 친미래적 저탄소 도시 건설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앞으로 화석 연료 없이 운영할 수 있는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절체절명의 난제이자 큰 도전이다. 자원의 재활용 측면을 잘 고려해 생활쓰레기 연료, 빗물 재활용, 태양열과 지열 사용 확대, 그리고 스마트그리드 도입으로 전기의 효율적 사용 등을 고려한다면 지금 겪고 있는 에너지난과 송전설비를 둘러싼 갈등 등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되지 않을까.

최연혁 스웨덴 쇠데르퇴른대 교수 정치학
#말뫼#코쿰의 크레인#주택단지#신도시#저탄소 도시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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