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를 넘어 일상 밖으로… ‘신춘대길’ 젊은 상상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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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들의 함성… ‘Arrival’전&‘혼합현실’전

갤러리 시몬의 ‘Arrival’전에 나온 김지은 씨의 설치작품. 갤러리 시몬 제공
갤러리 시몬의 ‘Arrival’전에 나온 김지은 씨의 설치작품. 갤러리 시몬 제공
화랑계가 불황으로 인해 긴 겨울잠에 빠져들면서 시장이 선호하는 작가들의 전시도 덩달아 뜸해졌다. 그 대신 젊은 작가들의 패기와 열정을 접할 기회가 늘었다. 서울의 서촌에서 만난 갤러리 시몬의 ‘Arrival’전, 북촌에 자리한 공근혜갤러리의 ‘혼합현실’전은 신진들의 참신한 목소리를 소개하는 자리다.

‘시작’의 의미를 담은 ‘Arrival’전은 이창원(41) 김지은(36) 윤가림 씨(33)의 작품을 모은 옴니버스 형식의 전시다. 4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갤러리 시몬에서 열린다(02-720-3031). ‘혼합현실’전은 강이연 씨(31)의 개인전으로 청와대 춘추관 옆 공근혜갤러리에서 3월 3일까지 이어진다(02-738-7776).

두 전시는 국내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유학생활과 창작 스튜디오 활동으로 국제 경험을 쌓은 역량 있는 미술가들의 내공을 가늠하게 한다. 이들은 미술관 그룹전과 갤러리 전시에 참여하면서 영역을 차근차근 확장해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각자 개성과 표현 매체는 달라도 작품에 스며든 손의 흔적, 철학과 미학의 치밀한 교직,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조형어법이 돋보인다. 장르를 가로지르는 작업을 내세운 것 역시 공통분모다.
○ 박제된 고정관념을 의심하기

밤하늘을 담은 사진에서 북두칠성이 빛을 발한다. 실제 별이 아닌, 탁자에 놓인 램프와 10원짜리 동전으로 만든 환영적 이미지다. 지난해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의 MAM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창원 씨의 작품이다. 서울대 조소과 출신으로 단단한 물질의 세계에서 이미지와 빛, 그림자 같은 허상의 세계로 관심을 옮겼다. 거울에 자화상을 음화로 그린 뒤 이를 보도블록과 아스팔트 등에 자연광으로 비친 모습을 찍은 연작이 인상적이다. 원본은 하나지만 주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드러난 작품은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대상 자체도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멀리서 보면 뿌연 빛으로 아른거리지만 가까이서 보면 블라인드 형태의 패널 위에 광고 전단이 놓여 있다. 관객의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이는 작품으로 우리가 진실처럼 받아들이는 박제된 가치관에 의문을 제기한다.

조각을 전공한 윤가림 씨는 오래된 동물도감에 금실 은실로 손자수를 놓은 섬세한 작품을 통해 실제와 상상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담아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자수에서 기억과 감정의 흔적을 발견한 작가는 노동과 정성이 축적된 수작업으로 관객의 시각뿐 아니라 촉각적 감각을 자극한다.
○ 일상적 공간을 낯설게 바라보기

강이연 씨의 ‘혼합현실’전에 나온 디지털 프린트. 컴퓨터 마우스로 만든 데이터 덩어리로 이뤄진 이미지다. 공근혜갤러리 제공
강이연 씨의 ‘혼합현실’전에 나온 디지털 프린트. 컴퓨터 마우스로 만든 데이터 덩어리로 이뤄진 이미지다. 공근혜갤러리 제공
서양화를 전공한 김지은 씨와 강이연 씨는 건축과 공간에 대한 관심을 장르 혼합의 설치작품으로 표현했다. 한국 미국 대만 등 국내외 레지던스를 두루 섭렵한 김 씨는 공간에 새겨진 역사와 이야기를 주목했다. 물감 대신 무늬목 시트지를 사용해 평면 위에 건축물을 지은 작품, 버려진 목재로 만든 임시구조물을 선보였다. 개발과 재개발이 일상화한 도시의 욕망을 주목한 작가는 폐허에서 태어나 다시 폐허로 돌아가는 아파트가 그 누구를 위한 공간도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폐허를 만들면서도 폐허를 받아들이지 않는 서울의 양면성을 성찰한 작업이다.

전시장 구석, 그 너머에 뭔가 숨겨진 공간이 있을 듯한 환영을 만드는 빛의 마법, 일상 속 공간을 유유히 떠다니는 낯선 물체를 담은 3D 영상, 몸의 흔적이 새겨진 소파와 문을 통해 누군가의 부재를 일깨운 디지털 프린트. ‘혼합현실’전의 모든 작품은 붓이 아닌 컴퓨터 마우스로 창조한 데이터 덩어리이자 허상이지만 실제 같다. 미디어 아티스트 강 씨는 “극단적 이분법은 유효하지 않다”며 “현실과 가상현실,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 자리한 모호한 긴장감”을 관객 앞에 끄집어낸다. 기술적 정교함과 회화적 섬세함을 결합해 공간에 새로운 상상력을 덧입힌 작품의 완성도가 높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Arrival#혼합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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