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등 공산권까지… 北 1968년 군사적 도발 비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5일 0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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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68년 1월21일 북한의 청와대 기습 사건과 그 이틀후 벌어진 미국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은 중국의 호의적 반응과는 대조적으로 소련이나 다수 사회주의권 국가들로부터는 비판을 받았던 것으로 24일(현지시간) 공개된 외교문서에서 드러났다.

미 우드로윌슨센터 '북한국제문서 연구사업'(NKIDP) 프로젝트팀이 발굴한 옛 공산권국가 외교 전문은 북한과 소련의 관계가 이미 쇠퇴의 길을 걸었고, 특히 1968년1월 북한의 연쇄적인 도발적 행동으로 양국 관계가 더욱 악화되는 양상으로 가게 되는 점을 보여준다.

N. 포파 주 북한 루마니아 대사는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직후 본국에 보낸 전문에서 소련측이 북한의 도발적 행동 자체는 물론이고 사태 조기 수습을 위한 자국의 제안이 김일성 주석에 의해 수용되지 않고 있는데 대해 불쾌감을 피력했다고 보고했다.

포파 대사는 푸에블로 사건 이튿날인 24일 주 북한 소련 대사관측과 면담한 후 "소련 외교관은 통제불가능한 북한의 한국과 미국에 대한 도발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고, 이 사건이 한반도의 전면전으로까지 발전할 가능성도 심각하게 우려했다"고 전했다.

소련측은 "우리가 전쟁도발적 상황을 완화시키려 노력할 때 우리의 태도는 고려되지 않았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포파 대사는 또 "소련 측은 북한이 무력을 통한 통일 시도에 소련이 비판적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어, 그러한 움직임에 대해 사전 상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고 보고했다.

특히 소련 대사관측은 면담에서 "이 같이 우려스러운 상황은 현재 북한과 중국의 관계 움직임을 잘 모르고 있고, 북한의 행동에 대한 중국의 태도를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사실에서도 더욱 촉발되고 있다"고 일련의 도발행위와 중국의 연관성에 대해서 걱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특히 푸에블로호 사건 직후 모스크바를 방문한 북한 김창봉 인민무력부장이 한반도 전면전 발발시 소련의 개입 확약을 요청했으나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이를 거부한 점에서도 양국 관계의 악화가 드러나고 있다.

3월17일 루마니아 대사관의 본국 보고 전문에 따르면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김창봉 부장의 3시간에 걸친 모스크바 면담에서 브레즈네프는 한반도의 전쟁을 막으려 북한을 설득했고, 설사 전쟁을 감행하더라도 이기기가 매우 어려운 전쟁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김 부장은 소련측으로부터 최소한의 전쟁 개입 약속이라도 이끌어내려 시도했지만,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오히려 "북한이 나의 제안을 무시할 경우 북한의 지원 요청에 대해 긍정적으로 호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응했다.

주평양 소련 대사관 외교관은 이 면담에 대해 "만약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김 부장의 요청에 호응하는 신호를 보냈거나 모호하게라도 보증하는 답변을 줬을 경우 전쟁이 발발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포파 대사는 보고했다.

북한의 청와대 기습 사건과 푸에블로 나포 감행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공산권 형제국은 소련만이 아니었다.

포파 루마니아 주북한 대사는 1·21 사태 이튿날 본국에 보낸 전문에서 "이번 행동은 대단히 무모하고 편협한 것이며, 북한에 의해 주도되는 강경 정책 노선중 심각하게 우려스러운 징후"라고 평가했다.

심지어 북한의 도발이 당시 베트남전 대응에 골몰하던 미국의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는 행동으로 보고 좋아할 것으로 여겨졌던 북베트남마저도 북한의 행동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포파 대사는 전문에서 "청와대 공격 사건과 푸에블로호 나포 이후 평양에 주재하는 베트남 외교단은 북한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차가운 태도를 나타냈다"고 보고했다.

두 사건 직후 포파 대사를 면담한 평양의 베트남 민족해방전선(NLF) 대표부 대표는 남베트남과 남한의 상황은 다르며, 한국내 적절한 혁명적 기반이나 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국제적 이목을 모으려는 북한의 행동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고 포파 대사는 평가했다.

포파 대사는 "베트남측은 북한의 인식과 사고를 혁명적 상황에 대한 독창성이 없는 사고라며 베트남 혁명과 한반도 상황을 비슷하게 보는 점을 비판했고, 오히려 푸에블로호 사건과 청와대 공격 사건이 양쪽 관계를 악화시키는데 기여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적었다.

비슷한 시기에 포파 대사를 면담한 평양 주재 베트남 대사 르 데 훙도 "남한과 남베트남의 혁명과 전쟁에서 유사성을 찾으려는 시도는 근거가 없고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한반도에서 대규모 전쟁을 감행할 시기가 아니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포파 대사는 양국의 관계가 불편해진 것을 반영해 두 사건 직후 있었던 북한 인민군 창건일 행사에 베트남측은 대사나 민족해방전선(NLF) 대표부 대표 2명이 모두 불참하고 대신 하위직인 1등 서기관급의 외교관을 형식적으로 보냈다고 보고했다.

미첼 러너 미 오하이오주립대 역사학부 교수는 "푸에블로호 사건 이후 북한과 소련의 관계 악화는 미국 정책당국자들에게도 놀라울 지경"이라며 "당시 많은 당국자들은 북한이 소련과 사전에 상의를 거쳐 행동을 감행했을 것으로 보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이번에 발굴한 외교문서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러너 교수는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그해 4월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북한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푸에블로호 문제를 놓고 미국과 전쟁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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