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가상세계 통하는 문 ‘활짝’

  • Array
  • 입력 2010년 10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원거리서 환자 만지는 의료기 등, 시각 이어 촉각 증강현실도 등장

《물컹한 촉감 사이로 딱딱한 멍울이 만져졌다. ‘설마 암은 아니겠지?’ 혹시 하는 마음에 근처 병원을 찾아갔지만 병원은 기다리는 환자들로 가득했다. 돌아 나오려는데 간호사가 작은 깔때기 모양의 검진기를 건넸다. 검진기를 가슴에 대니 무언가가 쿡쿡 누르는 느낌이 났다. 잠시 뒤 간호사는 “다 됐고요. 검진 결과는 e메일로 보낼게요”라고 말한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지도를 비추면 지도 위에 로봇 캐릭터가 겹쳐 보인다. 3, 4년 뒤에는 이처럼 QR코드가 필요 없는 증강현실이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 제공 퀄컴
스마트폰 카메라로 지도를 비추면 지도 위에 로봇 캐릭터가 겹쳐 보인다. 3, 4년 뒤에는 이처럼 QR코드가 필요 없는 증강현실이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 제공 퀄컴
측정된 데이터는 암 전문가에게 전해지고 이것을 암 전문가들이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 기술을 이용해 ‘촉진’을 직접 하면서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이 몇 년 뒤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달 1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폐막한 ‘국제 혼합증강현실 심포지엄(ISMAR) 2010’에서는 몇 년 뒤면 일상에서 쓰일 법한 증강현실(AR) 기술이 소개됐다. 증강현실은 실제로 존재하는 콘텐츠와 가상의 콘텐츠를 혼합하는 기술이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3차원 바코드인 ‘QR 코드’를 보면 광고나 지도가 실제 사물에 겹쳐 보이는 기술이다. 이처럼 증강현실은 스마트폰을 더 ‘스마트’하게 만들어주면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과학기술자들은 “지금까지의 증강현실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영상이나 사진에 정보 콘텐츠를 덧입혀 보여주는 수준을 넘어서 오감을 활용하고 물체와 소통하는 기술로 변하고 있다고 말이다.

○ 촉각 AR, 만지면 실제처럼 느껴

포스텍 최승문 교수팀이 개발한 유방암 촉진 증강 현실 시스템. 햅틱 장치로 유방 모형을 누르면 실제 유방의 촉감이 느껴진다. 사진 제공 최승문 교수
포스텍 최승문 교수팀이 개발한 유방암 촉진 증강 현실 시스템. 햅틱 장치로 유방 모형을 누르면 실제 유방의 촉감이 느껴진다. 사진 제공 최승문 교수
포스텍 컴퓨터공학과 최승문 교수팀이 개발한 ‘유방암 촉진 증강현실 시스템’은 촉각 AR 기술이다. 최 교수팀은 종양이 있는 유방의 촉감을 측정해 정보를 만든 뒤 이것을 가짜 유방 모형 촉감과 혼합했다. 연구팀은 먼저 종양의 위치와 단단한 정도를 알려주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펜처럼 생긴 ‘햅틱(haptic)’ 장치 끝에는 위치추적센서와 힘센서를 장착했다. 의사가 햅틱 장치로 인공 유방의 한 부분을 누르면, 그 정보가 컴퓨터로 전해진다. 컴퓨터는 그 위치에 해당하는 실제 유방의 촉감을 의사에게 전한다. 실리콘 유방 모형을 누르고 있지만 느낌은 환자의 유방을 누르는 것과 동일하며, 이를 통해 종양을 찾을 수 있다.

최 교수는 “촉각 AR는 촉감 정보를 실제 사물에 구현한다는 점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느끼게 하는 가상현실과는 다르다”며 “촉각 AR가 증강현실의 사실감을 한 차원 더 높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 그림 인식해 배경 자동제공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려서 컴퓨터와 연결된 카메라에 비추면 그림과 어울리는 배경이 나타난다. 그림을 임의로 변형해도 컴퓨터가 그림을 읽어낸다. 이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 yhlee@donga.com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려서 컴퓨터와 연결된 카메라에 비추면 그림과 어울리는 배경이 나타난다. 그림을 임의로 변형해도 컴퓨터가 그림을 읽어낸다. 이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 yhlee@donga.com
QR코드 같은 바코드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없이 작동하는 ‘스마트’한 기술도 등장했다. 서강대 영상대학원 한주현 씨가 개발한 ‘AR 스케치북’은 사용자가 화이트보드 위에 그림을 그리면 컴퓨터가 알아서 배경을 찾아준다. 로켓을 그리면 3차원(3D) 우주를 배경으로 보여주고 배를 그리면 바다를 배경으로 보여준다. 나로호 같은 로켓이 아니라 비행기처럼 생긴 우주왕복선을 그려도 비행기가 아니라 로켓으로 간주하고 우주 배경을 제공한다. 한 씨는 “컴퓨터에 사물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만 있으면 카메라에 촬영된 영상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며 이것이 로켓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QR코드나 GPS장치로부터 단순히 정보를 받아서 보여주는 기술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증강현실”이라고 평가했다.

○ “물체 기본정보 DB화 우선”

제이 라이트 퀄컴 기술연구소 이사는 “3∼4년 뒤에는 이런 ‘참조가 필요 없는(reference free)’ 스마트한 증강현실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현재 바코드 대신 특정 그림을 인식하거나 배경을 인식하는 증강현실은 개발에 성공했다”며 “QR코드가 필요 없는 증강현실을 구현하려면 물체의 기본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포스텍 최 교수는 “최근 촉각이나 청각 같은 오감을 자극하는 증강현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며 “5년 뒤쯤에는 증강현실에 대한 개념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 yhlee@donga.com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

실제로 존재하는 콘텐츠와 가상의 콘텐츠를 혼합하는 기술. 실제 물체에 가상의 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