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사우디, 예멘서 ‘대리전쟁’

  • 입력 2009년 9월 4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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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파 반군 - 수니파 정부군 3주째 격렬 교전
故 엄영선 씨 피랍 살해 지역… 주민 15만 피란

중동의 최빈국(最貧國) 예멘이 시아파 이슬람국가의 맹주 이란과 수니파의 패자 사우디아라비아의 대리전쟁 터로 변하고 있다.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북쪽으로 200km 떨어진 사다 계곡에서는 지난달 11일부터 시아파 알후티 반군과 정부군의 격렬한 교전이 3주째 계속되고 있다. 탱크와 전투기를 동원한 정부군의 공격으로 100명 이상의 반군이 사망했고, 반군이 카튜샤 로켓포로 반격에 나서면서 전투가 치열해지자 15만 명의 주민이 피란길에 나섰다고 AFP통신이 2일 보도했다.

사우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사다 계곡은 평균해발이 1800m에 이르는 험준한 산악지대로 예멘 중앙정부의 통치력이 잘 미치지 못하는 지역. 올해 6월 한국인 엄영선 씨가 납치 살해된 지역도 이곳이다. 알후티 반군은 1960년대 붕괴된 시아파 자치정부를 다시 세워 이슬람 교리에 따른 통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멘 정부와 시아파 반군이 전투를 벌인 것은 2005년 이후 6번째. 처음엔 작은 규모의 내전이었으나 주변 국가의 개입으로 전투기, 로켓포까지 동원되는 대규모 국제전으로 비화하고 있다.

전쟁이 커지고 길어지면서 지역 주민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안드레이 마헤치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대변인은 2일 “현재 사다 지역은 구호요원도 들어갈 수 없다”며 “현지 주민의 삶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유엔 측은 이에 따라 2350만 달러를 긴급 지원해 주민들에게 물과 식량, 약품을 제공키로 했다.

예멘 정부는 지난달 31일 이란 대사를 소환해 “이란이 2005년 이후 시아파 반군에 무기뿐 아니라 재정과 정치적 지원을 하며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며 강력 항의했다. 또 사우디 정부는 “그동안 레바논 이라크 등지에서 시아파 이슬람 무장단체를 지원해 왔던 이란이 홍해 지역의 해상 영향력 확보를 위해 예멘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반면 이란 관영 프레스TV는 “예멘 정부의 시아파 반군 소탕 작전에 사우디 공군 소속 제트기가 동참했다”며 “사우디 군대가 개입해 시아파 교도를 탄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사우디와 이란은 서로 “군사 개입은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양국은 핵개발을 염두에 둔 경쟁에도 돌입했다. 사우디는 지난달 31일 첫 원자력발전소를 건설 중이라고 밝혔다. 이란은 이미 핵개발에 착수한 지 오래다. 아랍 맹주를 향한 양국의 경쟁이 갈수록 격화되는 상황이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핵개발과 대리전이라는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행태를 이제는 이란과 사우디가 중동에서 재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아파는 이슬람의 교조 마호메트의 후계를 둘러싸고 정통 수니파와 대립하면서 갈라져 나온 이슬람 분파다. 현재 시아파 교도는 3000만∼4000만 명, 수니파 교도는 약 4억 명이다. 최근 중동의 ‘시아파 벨트’로 불리는 이란 이라크 시리아가 협력을 강화하자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예멘 등 수니파 국가들이 바짝 경계 중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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