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요리하는 자연의 발명품…光 결정구조

  • 입력 2004년 2월 8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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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도심 곳곳에서 열대곤충을 전시하는 행사가 한창이어서 눈길을 끈다. 각양각색의 곤충 가운데 특히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커다란 파란색 날개가 일품인 ‘몰포’나비다.

남미의 정글에 산다는 이 나비의 파란색은 너무 밝고 아름다워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화가 샤갈이나 마티스도 흉내 못 낼 이 빛깔의 비밀은 무엇일까.

“몰포나비의 날개에는 파란 색소가 전혀 없어요. 다만 날개의 표면구조가 독특해 파란색 파장의 빛만을 반사시켜 그렇게 보이죠.”

인하대 물리학과 황보창권 교수의 설명이다. 실제 나비의 색은 독특한 표면구조가 붙어있지 않은 몸통이나 날개 가장자리에서 보듯이 거무튀튀하다.

그렇다면 이 표면구조는 어떻게 생겼을까.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면 마치 벽돌을 쌓은 것처럼 규칙적인 배열이 나타난다. 이런 기하학적 구조를 광결정(photonic crystal)이라고 부른다. 광결정은 특정한 파장의 빛만을 반사시키고 나머지는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몰포나비의 광결정 구조는 파란빛만을 반사시키게 설계된 셈이다.

몰포나비 외에도 자연계에는 광결정 구조를 갖고 있는 생물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반짝이는 녹색 겉날개가 아름다운 비단벌레 같은 딱정벌레류나 유리새 같은 몇몇 새의 깃털에서도 발견된다.

광물에서도 이런 구조를 볼 수 있다. 무지갯빛으로 현란한 보석 오팔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작은 구슬이 일렬로 배치돼 있는 광결정 구조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자연의 사치’로만 여겨졌던 광결정 구조가 최근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재다능하지만 통제하기 어려운 빛을 길들이는 데 제격이기 때문이다.

빛은 1초에 30만km, 즉 지구를 일곱바퀴반이나 도는 엄청난 속도를 자랑한다. 따라서 광통신처럼 먼 곳에 정보를 전달할 때는 제격이지만 반도체칩처럼 손톱만 한 크기에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회로망에서 돌아다니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빛보다 느리지만 말을 잘 듣는 전자가 여전히 반도체의 주역인 이유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전자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집적도를 높이려고 칩의 크기를 줄이다 보니 덩치 큰 전자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서로 몸을 부딪쳐 정보전달에 실수를 연발하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과 이용희 교수는 “빛은 전자에 비해 정보처리의 양과 속도 면에서 월등히 우수하다”며 “만일 빛의 발생과 전달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면 광집적회로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현재 컴퓨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광컴퓨터가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바로 광결정이 이 일을 실현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이상적인 광결정은 특정 파장의 빛을 100% 반사한다. 역으로 생각하면 광결정 내부에 공간을 만들어 그 빛을 발생시키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가둘 수 있다. 이 공간에 여러 갈래의 길을 내면 빛이 그 통로를 따라 이동하는 광집적회로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아이디어를 갖고 있던 미국 벨연구소의 물리학자 엘리 야블로노비치는 1991년 세계 최초로 광결정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2002년에는 과학자들이 광결정에 통로를 만들어 빛이 꺾이며 이동하게 만들었다.

국내에서도 연구가 한창이다. 이 교수팀은 벌집 같은 구조의 관 가운데로 빛이 고스란히 이동하는 광결정 섬유 연구에 한창이다. 이 연구가 현실화되면 빛의 손실이 어느 정도 불가피한 현재의 광섬유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체가 오래 전에 만들어 놓은 자연의 발명품 광결정 구조가 과학자들의 손끝에서 화려하게 변신할 날도 머지않았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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