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둘기집 사람들'로 문학상 탄 은미희씨 인터뷰

  • 입력 2001년 10월 8일 18시 34분


작가 은미희(41)씨가 장편소설 ‘비둘기집 사람들’(문학사상사)을 냈다. 130여편 응모작을 제치고 상금 5000만원인 삼성문학상에 뽑힌 작품이다.

은씨는 지방(광주) 작가여서 그동안 평단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 신인은 아니다. 96년 전남일보, 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지금까지 스무편 남짓한 중 단편을 문예지에 발표했다. ‘비둘기집 사람들’은 은씨가 ‘무명 아닌 무명’을 탈출하는 전기가 됐다. 은씨가 벗어난 것은 그뿐 아니다.

“그동안 오빠집에 얹혀살았는데 곧 작은 집필실을 마련해서 독립합니다. 이제부터가 작가로서 진짜 시작인데….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두렵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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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집 사람들’은 허름한 ‘비둘기 여인숙’에 거주하는 비천한 인간상들을 담고 있다. 노름판에 빠진 남편을 대신해 악악거리며 살아온 40대 여자 열목이 주인인 이 여인숙에는 티켓다방 아가씨 청미가 월세로 살고 있다. 여기에 트럭에 싸구려 옷을 싣고 장사를 하는 성우, 살인의 죄책감으로 30년간 타향을 전전하다 고향 가는길에 여인숙에 들른 형만이 소설속에 등장한다.

“우리도 이들처럼 누구나 상처를 갖고 있어요. 흔히 말하듯이 악한에게도 선함은 있고, 창녀에게도 순정은 있는 법이죠.”

소설은 각자 품은 상처의 속살을 보여준다. 그 상처는 대개 온전치 못한 기구한 가족사에 기인한 것이다.

병의 뿌리가 깊으면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 법. 청미는 ‘기둥서방’에 의해 외딴섬으로 팔려가고, 청미에게 맘을 두었던 성우는 다른 섬으로 팔려버린 청미를 일부러 찾지 않는다. 남편 노름빚 대신에 여인숙을 ‘접수’하려는 불량배에게 저항하던 여인숙 여주인 열목 역시 체념한 듯 이삿짐을 꾸린다.

“결론이 너무 매몰찬게 아니냐구요? 어설픈 화해나 해피엔딩은 위선 같았어요.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여백으로 남겨두고 싶었죠.”

이 소설은 은씨가 선굵은 여성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인프라’를 잘 드러낸다. 풍부한 에피소드, 시를 연상시킬 정도로 농밀한 문장, 중성적인 문체, 국어사전을 다섯 번이나 외우며 체득한 풍요로운 어휘 구사력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탄탄한 기본기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에는 이르지 못한다. 특히 ‘가족’이나 ‘상처’ 같은 소재 편식이 자칫 자기복제의 함정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은씨 역시 이 점을 가장 경계하며 다양한 독서와 체험에 신경쓴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역사성과 사회성에 관심을 갖겠다”는 그의 의지가 어떤 결실을 맺을지 기대된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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