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시냇물은 바다를 꿈꾸며 흐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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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크고 높고 깊은 데에 뜻을 둔 사람은 참으로 가깝고 작고 낮고 얕은 일에 종사해야 하고, 가깝고 작고 낮고 얕은 일을 하는 사람은 또 멀고 크고 높고 깊은 경지로 채워가지 않아서는 안 된다.

志遠大高深者 固當從事於近小卑淺 而爲近小卑淺者 又不可不充之於遠大高深也
(지원대고심자 고당종사어근소비천 이위근소비천자 우불가불충지어원대고심야)

―장현광, ‘여헌집(旅軒集)’》
 

지금이야 이동과 여행이 편리하지만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에는 사정이 달랐다. 또 이런저런 이유로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는 내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바다를 구경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선 중기의 학자 장현광도 47세가 돼서야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다고 한다. 큰물이라고 해봐야 연못이나 강물을 본 것이 고작이었던 상황에서 바다를 처음 본 중년의 학자는 “입으로 형용하고 붓으로 표현하려 한다면 비록 긴 깃대를 돌리는 필력에다가 천지를 구사할 수 있는 문장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실상에 걸맞게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커다란 새 세상을 보고 난 뒤에는 시야도 넓어지고, 또 그간 상상하지도 못했던 커다란 꿈을 새롭게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큰 꿈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고, 가까운 것들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장현광은 형언할 수 없이 큰 바다를 보면서 그 근원을 되짚어 생각했다. 작은 물줄기를 가리지 않고 모으고 모은 결과로 큰 바다를 이룬 것으로 결국 바다의 근원은 작은 시냇물이라고 했다.

해가 또 바뀌었다. 새로운 학교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되는 새내기들은 처음 보는 바다처럼 새롭고 넓은 세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새해의 시작에는 누구나 큰 꿈을 설계하지만, 넓은 바다 같은 세상을 처음 접하는 새내기들은 더욱더 원대한 뜻을 세울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면 저 먼 곳에 도달할 수 없고, 또 아무리 발걸음을 내딛더라고 목표를 정해서 가지 않으면 그저 정처 없이 떠돌다 말 것이다. 작고 가까운 것을 소중히 여기고, 또 한편으론 작고 가까운 것에만 머물지 말고 잘 축적해 크고 먼 곳까지 도달하기를 기원한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의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호는 여헌(旅軒)이다. 덕망이 높아 여러 차례 벼슬에 천거됐으나 번번이 사직하는 등 정치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일생 학문에 전념하여 성리학을 깊이 연구했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장현광#여헌집#교통#새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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