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靑이나 국회나 과연 ‘87년 체제’ 청산 의지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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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은 국회가 동의하고 국민이 지지하는 최소분모를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며 “최소분모 속에는 지방분권은 너무나 당연하고 국민 기본권 확대 개헌도 당연하다”고 말했다. 국회가 개헌안을 내놓지 않으면 대통령이 개헌안을 내놓겠다고 공식 선언한 셈이다. 다만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서는 “(정당 간) 이견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이라며 “만약 합의를 이룰 수 없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개헌을 다음으로 미루는 방안도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권력구조 개편에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고 국회 1, 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동의가 필요하다. 대선 때 각 정당 후보가 약속한 대로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려면 국회가 2월까지는 개헌안에 합의해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은 그때까지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폭넓은 합의를 국회에 요구하면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대통령이 할 수 있는 현실적 범위 내에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언급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4년 중임제 개헌을 내걸었고 어제도 “개인적으로 4년 중임제의 권력구조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제의 개헌 관련 발언을 종합하면 국회가 권력구조 개편안에 합의하지 않는 이상 대통령 스스로 권력구조 개편안을 낼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여기에는 대통령이 권력구조 개편안을 낸다 해도 국회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없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개헌안을 국회가 발의하든 대통령이 발의하든 개헌을 좌지우지하는 길목은 통과를 결정하는 국회일 수밖에 없다.

집권 초 대통령이 스스로 개헌 의지를 밝힌 지금이야말로 개헌의 호기다.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6월 개헌은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집권당인 민주당은 권력구조 개편을 서두를 이유가 없고 제1야당인 한국당은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에 반대하고 있다. 1차적으로 지방선거와 함께 지방분권 강화 개헌을 하고 차후에 권력구조 개편 개헌을 할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단계적 개헌론은 일종의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헌 논의는 1987년 헌법이 제왕적 대통령제로 귀결되고 말았다는 인식하에 권력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에서 출발했다. 원래 고치기로 한 것은 놔두고 엉뚱한 것만 고친다면 그런 개헌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수긍할지 모르겠다. 국회가 먼저 분발해서 권력구조 개편에 합의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길이다.
#문재인#문재인 신년 기자회견#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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