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의 법과 영화사이]'뉘른베르크 재판'

  • 입력 2000년 5월 31일 19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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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뉘른베르크 재판(Judgment at Nuremberg.1961)' 감독: 스탠리 크래머(Stanley Kramer) 감독: Stanley Kramer 출연: 스펜서 트레이시, 리처드 위드마크, 버트 랭카스터, 마를렌느 디트리히, 막스밀리언 셀, 몽고메리 클리프트, 주디 갈랑▼

국제간의 갈등을 전쟁을 통해 해결하던 시대에는 승자의 법이 곧바로 정의였다.

'국제법'이라는 국가 사이의 법이 등장한 이후에도 한동안 양상은 마찬가지였다. '전쟁과 평화의 법'이라는 국제법은 사실상 전쟁의 법이나 마찬가지였다. 평화는 전쟁과 전쟁 사이를 막간을 잇는 짧은 이음새에 불과했다. 20세기에 들어와 인류는 두 차례의 대규모 전쟁을 치렀다.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세계가 편을 갈라 벌인 싸움인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으레 배상 책임이 논의되고 승자는 패자에게 가혹한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그 책임이란 대체로 정부의 책임이지 개인의 책임은 아니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은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이 주체가 되어 패전국 독

일이 "제 3제국"의 이름으로 저지른 반인도적 행위에 대해 개인적 책임을 추궁한 역사

적 사건이다. 전쟁마다 평화시에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비인도적인 행위가 자행되기 마

련이다. 그러나 나치 독일이 저지른 유대인의 조직적인 학살은 인류의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재판이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이유는 이 도시가 힛틀러의 제 3제국이 대규모의 군중집회를 위해 애용하던 도시였기 때문이다. 흔히 뉘른베르크재판으로 불리는 전범재판은 1945년 11월 10일에 시작하여 이듬해 10월 1일 11개월만에 종결된 한 사건을 말한다. 이 재판에서 1급의 나치전범 24명이 기소되었고 이중 선전상 괴벨스를 비롯한 13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1945년 8월 미, 소, 영, 불을 포함한 23개국의 연합국이 합의한 런던협정에 기초하여 설치된 이 법정의 재판장은 영국의 제프리 로렌스(Geffrey Lawrence)경이, 수석검사는 미국의 로버트 잭슨(Robert Jackson) 대법관이 맡았다. 이 재판에서 "반인도죄" (crime against humanity)라는 새로운 유형의 범죄가 적용된 것이다. 아무리 비인도적인 행위일지라도 독립된 주권국가의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행해진 행위를 사후에 처벌하는 것은 종래의 법이론으로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인류의 보편적 양심에 기초하여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인륜에 반하는 죄'인 것이다.

이어서 제 2차 뉘른베르크 재판이 열렸다. 1946년 12월부터 1949년 3월에 이르기까지 열두 개의 법정에서 총 185명의 독일인이 재판을 받았다. 열 두 개 재판부 모두 미국인으로 구성되었다. 독일의 통치를 위해 설립된 연합군 정부가 근거 법령을 마련한 것이다. 각료, 의사, 법률가 등 제 3제국의 유대인의 조직적 학살에 가담한 185명의 핵심인사가 재판에 회부되어 이들 중 25명에게 사형이, 20명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영화 〈뉘른베르크재판〉(Judgment at Nuremberg)는 승자의 재판이 인류의 이름으로 악을 응징한 것이란 점을 설득하는 영화이다. 단순한 집단살인사건에 대한 재판이 아니라, 인류의 이름으로 내리는 심판의 성격을 띤다. 영화의 제목으로 단순한 재판

(trial)이 아니라 심판의 의미를 함께 가진 "judgment"라는 단어를 택한 이유도 감지

할 수 있다. 그것은 미국법원이 한 나라의 사법정의에 기초하여 내린 판결이 아니라 인류의 양심에 근거하여 나치독일이 범한 죄악에 대해 단죄하는 심판이라는 뜻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미국의 사법정의가 세계의 정의로 수용될 정도로 실체적,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었다는 것을 은연중에 설득하는 헐리우드 영화이기도 하다. 미국이 무력으로 세계의 질서를 바로 잡았고, 이제 자신의 법체계로 세계의 질서로 바로 잡는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천명하는 선언문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개봉된 1961년 아카데미 11개 부문에서 후보로 지명되었고 강력한 작품상 후보로 떠올랐으나 전대미문의 대형영화 〈벤허〉(Benhur)에게 영광의 자리를 내주었다고 한다. 전례 없는 호화배역 중 피고인의 젊은 변호사역을 맡았던 오스트리아의 지식인 배우, 막스 밀리언 셀에게 남우주연상이 수여되었다. 나치의 인종우생학 정책에 희생물로 거세의 수모를 겪은 청년의 역으로 출연한 몽고메리 클리프트는 중요한 역사의 모습을 재생시키는 작업에 동참하기 위해 한 푼도 받지 않고 출연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이 영화는 엄정한 의미에서 실제의 재판을 재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1, 2차 뉘른베르크 재판을 종합하여 하나의 사건으로 재구성해냄으로써 여러 유형의 독일지식인의 행적을 시대적 상황과 관련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 작품이다. 네 사람의 피고인을 모두 법률가로 설정함으로써 절대권력 아래에서의 법률가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나치독일의 반인도적 행위를 집행한 법률가의 직업윤리와 개인적 양심의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기 위해 네 사람의 전형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다면 넓은 의미에서 시대적 기록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흑백영화가 주는 진지함을 극도로 활용한 이 영화는 그 자체가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는 하나의 전쟁을 연상시킨다. 시종일관 치밀한 논리와 더불어 계산된 심리전이 동원된 전쟁이다.

법정에 선 4인의 피고는 제각기 자신의 행위에 대한 법률가로서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피고, 한(Hahn)은 일말의 뉘우침도 없이 당당하다. 조국 독일을 위해서 서방의 문화적 전통에 따라 국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진술한다. 제2의 피고는 "판사는 법을 집행할 뿐이지 정의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司法觀으로 법의 역할을 한정지움과 동시에 '역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 제3의 피고는 울먹일 뿐 아무런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피고인 어니스트 야니히는 (Burt Lancaster분) 당대 최대의 법학자이자 법정책자였다. 판사와 법무장관의 경력을 거친 그는 나치와 독일법학의 중간에 선 지식인의 모습을 극화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의 법리 논쟁은 야니히의 행적에 대한 평가와 심경을 추적하면서 전개된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캄캄한 화면에 '서주'(Overture)라는 흰 글자의 자막만이 3분 이상 비춘다. 화면의 절반을 차지한 흑과 백의 적막한 대조를 배경음악이 가른다. 나치의 행진곡들이다.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자막이 열리면서 행진곡은 더욱 템포가 빨라진다. 나치본부의 건물 꼭대기에 선 스와스티카가 비친다. 뭉게구름을 동반한 폭탄이 스와스티카를 날려 버린다. 총 6분간의 '서주'이다.

서주에 이어 열린 첫 장면은 폐허의 도시, 앙상한 건물 잔해의 숲 사이로 고급 승용차가 달린다. "1948년 뉘른베르크"라는 낮은 자막이 자동차의 아랫배를 따라 이동한다. 뒷자리에 앉은 세 사람의 미국인이 이야기를 나눈다. 이따금씩 운행 방향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는 자전거가 승용차의 쾌속을 방해한다. 운전대를 잡은 청년이 연신 경적을 눌러대며 신경질을 낸다. 뒷자리의 손님을 의식한 제스처도 다분히 가미되어 있다.

"피해가 이 정도로 심각한지는 몰랐다."라며 복잡한 표정을 짓는 순진하게 생긴 미국노인의 허망한 표정과 도시의 역사를 묻는 이방인에게 1219년까지 소급한다는 독일청년의 건조한 대답, 부자연스럽고도 경직된 미국과 독일의 관계를 전해 주는 듯하다. 자동차는 대저택 현관 앞에 선다. 전범으로 사형이 집행된 독일장군으로부터 연합군 정부가 징발한 집으로 재판장 다니엘 헤이워드가 기거할 임시관사이다.

영화는 법정 밖에서도 시종일관 독일인과 미국인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은근하게 부각시킨다. 서투른 정복자로서의 미국인의 능력에 회의를 토로하는 장교클럽에서의 군인들, 웨스트 포인트 출신 젊은 대위의 독일 여자친구, 자신은 나치 인종정책의 피해자였지만 동포에게 죄를 지우는 재판에 증인으로 나설 수 없다는 여인과 남편을 설득하는 미국검찰관 사이의 대립, 이 작은 사건들이 모두 승자와 패자, 미국인과 독일인 사이의 묘한 심리적 긴장을 끌고 간다. "정치"와는 무관함을 강조하면서 힛틀러도 고속도로를 건설하여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마련하는 등 좋은 일을 더러는 했다면서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소박한 평결을 내리는 하녀부부의 입을 통해 '보통' 독일인의 정서를 전달한다.

헤이워드 판사와 장군의 미망인(마를렌느 디트리히) 사이의 묘한 로맨스가 가미되면서 그 대립은 극복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창고에 보관한 허접스런 물건을 가지러 왔다가 점령군의 판사를 마주친 귀부인은 순진한 미국노인의 가슴에 꿈틀대는 인도애의 불길을 점화한다. 장군의 딸이자 아내로 쌓은 절제와 인내와 교양이 머리칼 한 올마다 뿌리 박혀 있는 매력의 중년여인은 "정치적 살인"을 선고받은 남편이 명예롭게 죽을 군인의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잡범처럼 목 졸려 죽은 수모를 지우지 못해 애잔한 한을 호소한다. 판사가 국민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다는 사실을 기이하게 여기는 관료사법국가의 상류사회 여인과 몸소 샌드위치라는 음식 같지도 않은 음식을 만들어 먹겠다며 전속 조리사를 당황케 하는 미국의 시골 노인, 두 사람 사이의 묘한 긴장과 이완은 명배우의 기막힌 연기에 힙 입어 영화 전반에 탄탄한 배경을 깔아준다. 『노인과 바다』(1958)의 그 스펜스 트레이시를 다시 만난다. 중년에 접어든 마레느 디트리히의 냉소적 관능은 황새처럼 긴 다리의 노출 없이도 빛을 뿜어낸다. 황급히

두 손에 하이힐을 벗어 들고 맨발로 뽀얀 먼지를 뿜으며 사라지는 애인을 태운 트럭의 뒤를 따라 뜀박질하던 그 디트리히의 현신을 보는 즐거움은 궁핍과 낭만의 시대를 되돌아보며 물러서는 흑백 영화 세대의 특권이다.

재판은 전형적인 미국의 형사재판 절차에 따라 진행되나 배심은 없다. 미국의 증거법은 배심재판을 전제로 하여 발전된 것인 만큼 배심이 없는 재판에서는 엄정한 증거법이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이 재판 전반을 통해 증거법을 둘러싸고 검사와 변호사가 제기하는 각종 '이의신청'(objection)과 이에 대한 재판장의 결정은 관중을 가상적 배심으로 하여 문명사회의 판단을 구하기 위한 자료의 제공으로 볼 수 있다.

야니히는 인정심문단계에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함으로써 미국법정의 권위 자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판사는 이를 무죄의 주장으로 수용한다. 대령 군복을 입은 검사의 개정진술은 公憤을 대변하는 인류에 대한, 인간성에 대한 죄임을 강조한다. 이들의 행위는 제 3제국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독일의 (자연)법에 위반한 것이면서 형벌불소급의 원칙 등 이른바 '죄형법정주의'의 제약을 극복하려는 이론적 시도를 보인다. 이에 맞서는 독일인 젊은 청년 변호사는 재판의 정치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진정한 피고는 독일 국민임을 주장한다. 승전국이 아니라 인류의 이름으로 응징하는 '심판'임을 강조하는 검사와 패전국의 국민에 대해 승자가 내리는 '재판'으로 의미를 한정 지우려는 변호인의 논쟁은 전편을 통해 치밀하고 박진감 있게 전개된다. 범죄 성격의 특수함과 피고인 야니히의 인간성을 부각시키면서 변호사는 미국사법의 거성인 올리버 웬델 홈스(Oliver W. Holmes Jr.)를 두 번이나 인용함으로써 미국인 재판

관들에게 은근한 설득과 비판을 동시에 시도한다.

헤이워드 판사는 바이마르헌법(1919)과 피고인 야니히의 법학 저술을 읽는다. "법의 의미"라는 저술에서 바이마르헌법 아래 희망에 찬 인간의 공화국을 건설하는 꿈에 부풀던 이상을 펴던 이상주의 법률가가 어찌 독재의 하수인이 되었는지 의아해 한다. 아직도 우리 나라 법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칼 슈미트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검사측 증인으로 나선 비크 박사는 야니히가 택했던 길이 불가피하게 강요된 것만은 아님을 반증하려 한다. 야니히의 교수였던 비크는 나치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독립된 지위에서 국가를 보호하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던 사법부가 1933년 나치의 등장과 함께 정권의 시녀로 전락하게 된 오욕의 과정을 진술한다. 1934년 판사를 포함한 모든 공무원에게 '충성선서' 가 강요되었으며 이듬해부터는 모든 판사가 법정에서 나치의 스와스티카를 착용할 것이 강제되었고 법조문 속에 '인종'의 개념이 공식적으로 등장함으써 노골적인 유대인 박해의 도구가 되었다. 비크 자신은 이러한 부정의로운 법조에 몸을 담는 대신 판사직을 사임했다는 것이다. 사임에 대한 적극적인 보복은 뒤따르지 않았던 사실을 보면 불의에 협조한 나치법률가의 행적은 독일 형법이 규정하는 결코 항거할 수 없는 이른바 "강요된 행위"가 아니었음을 주장한다.

'인종'개념을 적용하여 '열등한 부류'의 사람을 인위적으로 도태시킨 악행을 입증하기 위해 두 사람의 증인이 소환된다. 정치적 성향과 유전적 요인을 이유로 거세당한 한 노동자와 타 인종간의 신체적 접촉을 금하는 특별법의 제물이 된 어린 독일 소녀가 그들이다. 공산당원 아버지를 둔 무식한 노동자(몽고메리 클리프트)는 스투트가르트 지방법원 판사가 내린 열등인 판정에 의해 치욕스럽게 거세당한다. 그의 열등성을 판정하기 위해 판사가 던진 질문은 히틀러 총통과 나치의 인종정책을 주도한 닥터 베베의 생일이 언제냐는 것이었다.

페터슨의 대답은 "잘 모를 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다"였다. 그 판사가 이제 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서있다.

변호인의 반대심문 기술은 탁월하다. 흔히 미국의 법정영화에서 보듯이 얄밉도록 정교하고도 도발적인 질문으로 증인의 정신적으로 정상인이 아니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거세제도를 규정한 버지니아 주법을 합헌이라고 선언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문, 그것도 미국사법의 거성, 위대한 홈스 판사가 쓴 판결문을 상기시킴으로써 나치독일의 죄과가 승자의 법제 속에도 내재되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주장한다.

검찰이 집요한 추적과 설득 끝에 법정에 세운 아일린 호프만(쥬디 갈란)은 당시 16세의 소녀로 65세의 유대인 노인과 함께 인종간의 신체접촉을 금지하는 1935년 "인종오염방지법(racial pollution law)을 위반한 혐의로 특별법원에 기소되었다. 유대인 노인은 사형에 처해졌고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한 소녀는 위증죄로 2년을 선고받았다. 그 재판의 재판장이 바로 다름 아닌 야니히였다.

문제의 재판이 지극히 예외적인 사건임을 주장하는 변호사는 실제로 두 사람의 불륜의 현장을 목격했다는 청소부의 증언을 얻어낸다. 이에 대해 청소부가 나치당원이었음을 밝혀내는 검사의 반대심문은 인종의 문제가 곧바로 정치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동일한 인종오염방지법(anti-miscegination law)은 미국에서도 오래 동안 존재했던 것이다.

영화의 종반에 검찰 측 증거로 기록영화가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된다. 다카우 캠프의 해방에 직접 참여한 검사는 당시 영국군이 촬영한 자료를 생생하게 재생시키면서 지구상의 전체 유대인의 3분의 2, 나치의 통계로 6백만 이상의 다윗의 자손이 '청소'의 대상으로 목숨을 잃었다면서 전대미문의 죄악에 대한 인류의 공분을 대변한다. 변호인의 이의신청은 예상된 것이다. 이 증거는 피고인에 대한 것이 아니다. 피고인들은 대량학살을 몰랐다. 피고인 중에서도 특히 야니히에게 유리한 증거가 산적되어 있다. 야니히를 옹호하는 각종 청원서가 쇄도하고 있다. 오히려 그는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 그가 사임하지 않은 이유는 직책을 지키면서 더욱 큰 악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변호인의 결사적인 변론이 허공을 맴돌고 있을 때 야니히가 발언을 요청한다.

차분한 어조로 당시의 절박한 심리적 상황을 술회한다. 히틀러 독일민족주의는 국가에 대한 사랑을 위해 유령이 필요했다. 그 유령 찾기 아래서 재판은 재판이 아니라 희생양을 찾는 의식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다카우 수용소의 존재를 알았다고 고백한다. 양심선언이다. 변호사의 최후변론은 정복자의 윤리의 정당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재판이 과거가 아니라 장래를 향한 가치 판단이어야 함을 역설한다. 이 죄악이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한때 독일과 동맹을 맺었던 러시아는 과연 무고한가? 이를 묵인한 바티칸은? 1938년 히틀러에게 찬사를 보낸 처칠은? 미국의 산업자본가들은? 따지고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인류 모두가 죄인이 아닌가?

2대1의 결정으로 법원은 피고인 전원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이들이 저지른 공권력을 이용한 조직적이고도 비인도적인 행위는 인간성에 대한 죄, 문명에 대한 죄이며 이러한 행위는 독일법 아래서도 죄이자 죄악이었다 라고 선언한다.

재판의 진행 중에 러시아가 체코를 침공하였고 베를린에 철의 장벽이 구축되었다. 앞으로 미국이 러시아의 팽창을 막고 유럽이 공산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독일 국민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치가와 군사전략가들의 은근한 압력과 회유가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미치지 않았다.

재판이 끝난 후 야니히와 헤이워드가 마지막으로 만나는 장면은 이 재판과 영화가 미완의 것임을 말해준다. 수치스런 과거의 역사를 청산하는 작업은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남겨진 과제임을 암시해 준다. 야니히는 헤이워드에게 자신과 독일을 위해 보관하고 있던 사적 기록을 모두 넘겨준다. 그러면서 진정으로 자신은 대량학살의 사실을 몰랐었다고 고백한다. 헤이워드의 대답인즉 "당신이 한사람에게 죽음을 선고했을 때 이미 그럴 위험을 알았어야 했다."라면서 권력의 가운데 서 있던 지식인의 책임을 묻는다.

탁월한 변론을 편 젊은 독일 변호사에게 노판사는 격려를 보낸다. 변호사는 볼멘 소리로 불만의 투정을 던진다. "피고인 중에 5년 후에도 복역하고 있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판사는 찬찬히 답한다. "대단히 논리적인 분석과 예견이다. 그러나 논리는 결코 정의를 대신하지 못하는 법이오."

변호사의 논리적인 예견이 입증되었음을 알리는 자막과 함께 3시간의 역사적 영화는 막을 접는다. "1949년 7월 14일 까지 미국이 재판권을 행사한 전범은 모두 99인. 그 중 5년 이상 복역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직의 명령을 받은 개인이 그 조직이 내린 불법적인 결정에 대해 어떻게 저항할 수 있으며, 어느 범위에서 책임을 지울 수 있는가? 세계 인류가 모두 공범이며 "대학살은 모든 인류의 책임"이라고 주장한 변호사 역을 맡았던 배우에게 오스카 주연상을 수여되었다. 마치 인류 전체의 양심에 중대한 의문표를 새겨두려는 이 영화의 메시지에 공인 도장을 찍어 주었다.

안경환(서울대 법대 교수)ah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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