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터뷰]“맨손으로 북경오리…” 퍼뜨린 ‘육봉달’ 박휘순

  • 입력 2005년 12월 15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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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환 기자
홍진환 기자
만나자마자 안경알이 얼굴에 비해 좀 큰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개그맨 박휘순(28)은 “이 안경 쓴 지 몇 년 됐어요”라고 했다. 고개를 약간 숙이며 “얼굴도 안 작고요…”라고 한마디 보탰다.

박휘순은 요즘 아주 인기가 많다. 그는 KBS2 TV ‘개그콘서트’에서 9월 선보인 ‘제3세계’ 코너 중 육봉달이라는 캐릭터로 단숨에 떴다. 육봉달은 “맨손으로 북경오리를 때려잡고 떡볶이를 철근같이 씹어 먹으며 달리는 마을버스 2-1에서 뛰어내린” 사람이다. 그때그때 설정이 달라져서 대기업 회장도, 판사도 되지만 수식어구는 늘 같다. 요즘 송년 모임마다 이 긴 어구를 숨 가쁘게 따라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 나이는 서른도 안됐지만 중년이라고 해도 믿을 박휘순의 외모도 인기를 북돋우는 요인이다.

그가 바이러스처럼 퍼뜨린 유행어 “맨손으로 북경오리를 때려잡고…”는 사실 설움이 빚어낸 것이다. 북경오리는 무명 시절 먹어 보고 싶던 비싼 요리였고, 마을버스 2-1은 돈이 없어 못 타고 바라보기만 하던 동네버스다. 떡볶이를 철근같이 씹는다는 표현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맛보려고 계속 떡볶이를 잘근잘근 씹었던 기억에서 나왔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개그맨이 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 드렸더니 버럭 화를 내셨어요. 제가 장남이고 부모님 결혼 17년 만에 얻은 자식이거든요.”

박휘순은 초등학교 때 오락 프로그램 ‘유머 1번지’를 보면서 개그맨을 장래 희망으로 삼았다. “내가 생각해도 재미있더라” 할 정도로 자라면서 줄곧 입심을 인정받다보니 어린 날의 꿈을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대학 졸업 후 4년간 대학로 극단에서 연기 수업을 받는 한편 방청객으로 방송국을 들락날락했다. 개그콘서트 무대에 서 보는 게 꿈이었다. 올 3월 삼수 끝에 KBS 개그맨 공채시험에 합격하면서 꿈을 이뤘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울었어요. 평생 안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데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인기몰이를 하는 게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눈치다.

“잘 모르겠어요. 버스 타고 다녀도 사람들이 못 알아보던데…. 안경을 안 끼고 다녀서 그런가? 요즘 아버지가 좋아하시긴 해요. 통장에 돈 쌓인다고요.” 그만큼 두렵다고도 했다. “인기라는 게, 개그가 재미없다 싶으면 순식간에 식어 버리더라고요. 정신 바짝 차리고 계속 노력해야겠더라고요.” 그는 ‘떡볶이를 철근같이 씹던’ 날들을 쉽게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신세진 분이 많거든요. 선배들, 친구들, PD님…. 갚으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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