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익명성-군중심리가 만들고 포털 통해 급속 확산

  • 입력 2008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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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선 자극적인 글일수록 인기… 유언비어 부추겨

포털들 모니터링하지만 여론 주도력 키우려 사실상 방조

포털 사이트 ‘다음’과 ‘네이버’ 등은 2일 자살한 최진실 씨 관련 기사에 대해 인권침해와 명예훼손 우려를 이유로 댓글 쓰기를 금지했다.

그러나 같은 시간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는 최 씨와 관련된 게시글이나 댓글이 아무런 제한 없이 올라왔다.

특히 아고라는 최 씨와 관련된 글을 ‘베스트’에 올렸고, 이 글 가운데 하나는 3일 오후 4시 현재 7만여 명이 읽고 800여 명이 댓글을 달았다.

최 씨 관련 글 중에는 애도하는 내용이 많지만, 사채 관련 의혹을 제기하거나 특정 교회의 배후설을 언급한 명예훼손 성격의 글도 여러 건 올라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한 아고라 이용자는 ‘(명박퇴진)#(경악) 최진실 자살과 사채 주인’이라는 게시글을 올려 “여의도 ○○교회가 사채를 굴리고 있으며, 이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살 강요 등 입막음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글은 게시글 순위 맨 윗자리에 한동안 올라 아고라에 접속한 누리꾼들이 쉽게 읽어볼 수 있게 노출돼 있었고, 이 내용은 다른 게시물로 퍼져나갔다.

아고라는 올해 5월 ‘광우병 괴담’ 유포 등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반대 시위 확산에 큰 영향을 미친 바 있다.

○ 포털 ‘악플’ 근절 의지 부족

인터넷의 고질적인 문제인 악성 댓글(악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이 같은 게시물의 부작용을 근절하겠다는 포털의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포털은 게시물이 활발히 올라올수록 경제적 이익과 함께 여론 주도력을 얻을 수 있어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알고도 방치하는 측면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에 대해 네이버와 다음 등은 모니터링 인력을 각각 430명, 200명 정도 동원해 허위사실이나 명예훼손 글로 인한 역기능을 막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하루에만 수십만 건이 올라오는 모든 게시물에 대응하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인정했다.

포털의 사회적 영향력은 2005년 제주 서귀포시 한 학교의 ‘저질 급식’을 고발한 사건과 같이 사회 감시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그러나 올해 6월 한 20대 여성이 전경에게 살해됐지만 경찰이 이를 은폐했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등 부정적 측면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악플이 사라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더욱 엽기적이고 자극적인 정보가 눈길을 끌고 대접을 받는 인터넷의 특성 때문이란 분석도 내놓는다. 익명성이 보장되므로 오프라인에서처럼 체면을 생각하는 일 없이 부정적인 정보를 퍼뜨리는 데서 오는 일종의 쾌감을 즐긴다는 시각이다.

군중심리로 인해 개인의 의견과 생각이 사라지는 ‘몰(沒)개인화’ 현상도 악플에 한몫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선 다수의 분위기에 반대하면 ‘알바’(돈을 받고 글을 쓰는 아르바이트생)라는 비난이 쏟아지기 일쑤다.

이에 따라 처음에 이성적으로 판단하던 사람들까지도 결국 여론몰이에 휘말려 사회 전반으로 유언비어가 빠르게 확산된다는 분석이다.

○ 논란으로 발목 잡힌 정부 대책

정부는 인터넷 역기능을 막기 위해 정보통신망법 등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포털 사업자가 인터넷 게시글과 댓글을 의무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명예훼손 우려가 있을 경우 삭제 요청 즉시 이를 블라인드 처리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방통위 당국자는 “지금까지는 포털이 인터넷 게시글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포털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고법도 올 7월 “포털이 악플을 방치해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포털에 배상금을 물리는 등 포털의 사회적 책임론이 힘을 얻고 있다.

정부는 또 인터넷의 익명성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지난해 7월 도입한 ‘제한적 본인 확인제’ 대상을 국내 37개 사이트에서 178개 사이트로 확대하기로 했으며, 모욕죄를 온라인 환경 변화에 맞게 적용해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좌파 성향 언론단체 등을 중심으로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포털을 길들이려고 한다”는 반발이 나와 국회에 이미 제출됐거나 제출될 예정인 각종 법안의 입법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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