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애가 말을 할 수 있다면… 풀벌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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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묘 ‘풀벌’ 일대기로 유튜버 입문한 방송인 이홍렬씨

유튜브에 반려묘 풀벌(아래쪽 사진)과 함께한 추억을 담은 영상을 올리고 있는‘초보 유튜버’ 이홍렬 씨. 그는 “구독자1만 명을 
달성하면 ‘귀곡산장’ 할머니분장을 하고 감사인사 영상을 찍겠다”고 다소 귀여운(?) 약속을 했다. 유튜브 제공
유튜브에 반려묘 풀벌(아래쪽 사진)과 함께한 추억을 담은 영상을 올리고 있는‘초보 유튜버’ 이홍렬 씨. 그는 “구독자1만 명을 달성하면 ‘귀곡산장’ 할머니분장을 하고 감사인사 영상을 찍겠다”고 다소 귀여운(?) 약속을 했다. 유튜브 제공
“풀벌, 나 출장 갔다 올 동안 죽지 마! 알았지?”

영상 속 회색 고양이는 한쪽 눈으로 힘없이 주인을 응시한다. ‘나 아픈데 어디 가’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 다른 한쪽 눈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이 고양이 ‘풀벌’은 안타깝게도 7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 동영상을 올리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개그맨 이홍렬 씨(64)다.

6월부터 유튜브 ‘이홍렬TV’를 운영하고 있는 그를 17일 서울 강남구 구글캠퍼스에서 만났다. 40년 차 베테랑 방송인인 그가 왜 낯선 유튜버가 되려 한 걸까.

“나이가 많은 풀벌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어요. 저 애가 사람 말을 할 수 있다면, 내게 할 말이 얼마나 많을까? ‘풀벌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죠.”

풀벌은 올해 17세, 사람 나이로는 여든이 넘은 고령이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고 난 뒤, 괴로워하던 이 씨는 가족과도 같은 반려묘와의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죽지 마’라는 제목으로 첫 영상을 올렸고, 풀벌은 보름 만에 이 씨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현재 풀벌 이야기는 고양이가 어릴 때부터 이 씨가 차곡차곡 모아뒀던 영상을 편집해서 올리고 있다. 영상마다 ‘떠나보낸 강아지가 생각났다’ ‘울컥해서 펑펑 울었다’며 공감 댓글이 줄을 잇는다.

“반려동물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은 아픈 강아지나 고양이 이야기가 나오면 시청률이 뚝 떨어진단 얘길 들었습니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먼저 떠나보내는 날은 반드시 옵니다. 사람들이 그걸 잊지 말아 줬으면 해요.”

풀벌은 ‘이 집사’를 두고 떠났지만 그에게 유튜브라는 새로운 세상을 선물로 남겼다. 평생 그의 터전이었던 TV와 달리, SNS 세상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자유로운 놀이터였다. 최근엔 ‘강화 아재’란 제목으로 친구들과의 일상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단다. 이 씨는 “3분짜리 영상 하나 만드는 데 5, 6시간이 걸리지만 ‘ㅋㅋㅋ’ 댓글 하나만 봐도 힘이 난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이런 쪽이 어렵고 생소합니다. 허참 선배는 ‘유튜브 하려면 스튜디오는 어떻게 차리냐’고 물어보실 정도였어요. 근데 막상 해보니까, 60대 이상도 충분히 할 수 있더라고요. 저도 스마트폰 하나만 갖고 하고 있잖아요?”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이홍렬#풀벌#반려묘#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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