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설정에 막장향기 스멀스멀… 그래도, 좋은걸 어떡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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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백일의 낭군님’ 쾌속 질주

기억상실증에 걸려 거지꼴이 된 왕세자 이율(도경수·오른쪽)과 부모의 원수 아들을 사랑하게 된 홍심(남지현). 이들의 사랑은 한국 드라마에서 마르고 닳도록 다룬 전개를 그대로 답습한다. 하지만 “내용이 뻔해 풋풋한 주인공들의 모습을 마음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tvN 제공
기억상실증에 걸려 거지꼴이 된 왕세자 이율(도경수·오른쪽)과 부모의 원수 아들을 사랑하게 된 홍심(남지현). 이들의 사랑은 한국 드라마에서 마르고 닳도록 다룬 전개를 그대로 답습한다. 하지만 “내용이 뻔해 풋풋한 주인공들의 모습을 마음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tvN 제공

문무(文武)에 두루 출중하며 용모까지 빼어난 왕세자 이율(도경수), 어느 날 궁중 암투에 휘말려 기억을 잃고 평민 ‘원득’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 앞에 나타난 여인 홍심(남지현)은 사실 그의 소꿉친구이자 첫사랑인 윤이서. 이율의 아버지가 역모를 저지르고 왕이 될 때 희생양이 돼 몰락한 집안의 딸이다.

tvN 월화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은 현재 방영하는 미니시리즈 중 유일하게 두 자릿수 시청률(13회 11.3%, 닐슨코리아 기준)을 올리고 있다.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풀어낸 ‘뻔함’이 매력이랄까. 신분 격차와 기억상실, ‘원수 가문의 아들딸’이라는 배경까지 주인공 커플의 관계는 상투적인 설정으로 가득하다.

여기에 정치 암투와 치정 요소까지 가미됐다. 호시탐탐 이율의 목숨을 노리는 장인 김차언(조성하)의 행보는 ‘마지막 회에 파멸하는 악당’이라는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를 철저히 따른다. 세자빈이 세자가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다는 대목에서는 자극성으로 승부하는 아침드라마의 ‘막장 향기’까지 난다.

이 드라마는 MBC ‘환상의 커플’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뒤섞어 조선시대에 떨어뜨려 놓은 듯하다. 둘의 인연이 이어지는 과정 역시 늘 봐 오던 우연의 연속이다. 하지만 MBC ‘해를 품은 달’의 이훤(김수현)과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의 이영(박보검)이 그랬듯 이율의 러브스토리도 해피엔딩이 될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미 종영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이어 시청률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흥미로운 건 아이돌 스타를 전면에 내세운 로맨틱코미디물인 이 드라마가 중장년층과 남성들에게도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 드라마는 성별·연령대별 시청률이 30대 남성을 제외한 전 부문에서 동시간대 1위(닐슨코리아 기준)를 달리고 있다.

트렌디한 로맨틱코미디 사극이라는 겉포장 속에 익숙한 한국 드라마의 공식이 들어 있어 기성세대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뻔한’ 스토리이지만 완성도까지 뻔하지는 않다. 첫 방송 전에 이미 촬영을 마친 완전 사전제작 드라마로 매 회 구성이 자연스럽고 영상미와 색감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도 어린 두 주연배우의 연기력이 베테랑 배우들 못지않게 출중하다. 이런 탄탄한 만듦새가 뒷받침됐기에 시청자들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요소만을 골라 담은 제작진의 영악한 의도를 ‘알면서도 속아 주는’ 게 아닐까.

오락성과 흥행은 TV 드라마의 기본 덕목이자 존재 이유다. 그렇기에 ‘백일의…’는 분명 눈길을 끈다. 하지만 한 편으론 기존 공식에서 벗어난 참신한 작품을 기다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온갖 클리셰를 깨부수고 주인공들이 수시로 죽어 나감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TV시리즈 중 하나가 된 HBO의 ‘왕좌의 게임’처럼 말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한류 팬들 사이에서도 ‘한국 드라마는 뻔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을 경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백일의 낭군님#도경수#남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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