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영화 본 후 ‘자가 진단’해 보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인셉션
“최고”라고 칭찬했다면 ‘유식 아니면 무식’
가슴 뜨끔했다면 아내 몰래 ‘여친’과 봤나?

스플라이스
“끝장 에로영화” 분개했다면 매우 정상
“메시지 의미심장” 감탄한다면 ‘썰렁맨’

인간과 조류와 어류와 파충류와 갑각류의 DNA에 결합된 신생명체가 다다르는 재앙 이야기를 다룬 영화 ‘스플라이스’. 당신은 이 영화를 보고 소중한 교훈을 얻었는가, 아니면 ‘이거 끝장 에로영화 아니야?’ 하며 분개했는가.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인간과 조류와 어류와 파충류와 갑각류의 DNA에 결합된 신생명체가 다다르는 재앙 이야기를 다룬 영화 ‘스플라이스’. 당신은 이 영화를 보고 소중한 교훈을 얻었는가, 아니면 ‘이거 끝장 에로영화 아니야?’ 하며 분개했는가. 동아일보 자료 사진
영화는 감성 상품이다. 그래서 동일한 영화라도 보는 이의 취향에 따라 서로 다른 반응이 나온다. 영화를 본 뒤 내가 어떤 필링(feeling)을 받았는지 가늠해보면, 거꾸로 나의 취향과 인간형을 자가진단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첫 번째는 ‘인셉션’.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영화다. 두 번이나 봤지만, 불현듯 “왜 내가 아까운 내 돈 내고 이렇게 고문을 당하고 있는 거지?” 하고 신경질 뻗쳤던 영화다. 주인공이 다른 사람의 꿈속으로 들어가 꿈을 조작한다는 내용인데, 이게 장난 아니다. 상대의 꿈속으로 들어간 뒤, 그 안에서 또 꿈속으로 들어가고, 그 안에서 또 꿈속으로 들어가고, 그것도 모자라 무슨 자기 무의식의 밑바닥까지 가보겠다는 유식한 대사와 더불어 또 꿈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보면 이게 현실인지 꿈속인지 헷갈리는 건 기본이고, 몇 번째 꿈속인지도 알쏭달쏭한 것이다.

만약 이 영화를 보고난 당신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최고의 영화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면?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일 공산이 크다. 당신은 정말 지성적인 풍모의 21세기형 글로벌 인재이거나, 사귄 지 딱 2주 된 예쁜 여자친구와 함께 보고 난 뒤라 무식한 거 티내고 싶지 않은 상황이거나, ‘아이고, 영화 속 저 녀석(리어나도 디캐프리오)도 나만큼이나 인생 꼬여서 복잡하게 사는구나’ 하고 완전히 감정이입한 상태이거나….

특히 가슴이 ‘뜨끔’했다면, 당신은 유부남으로 ‘외간여자’와 함께 이 영화를 보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주인공의 ‘꿈속의 꿈속의 꿈속의 꿈’까지 마누라가 식칼을 들고 쫓아오는(이걸 두고 유식한 말로 ‘아내에 얽힌 트라우마’라고도 한다. 무식한 말로는 그냥 ‘악몽’ 또는 ‘개꿈’이다) 이 영화 속 장면을 보고서 그 어느 유부남이 식겁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인생은 심플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 안 보는 게 좋다. 덥고 짜증날 때 동부인해 관람하기엔 ‘방자전’이 최고!

두 번째 문제의 영화는 ‘스플라이스’. ‘큐브’라는 논리적이고 지적인 영화를 만든 빈센조 나탈리 감독이 연출한 영화란 소리에 혹하여 이 영화를 보았지만, 올해 내가 본 영화 중 최고의 ‘끝장 드라마’(요즘 ‘막장 드라마’ ‘막장 영화’란 표현이 많으나 광업에 종사하는 분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잘못된 표현이다. 그래서 나는 ‘끝장’이란 단어를 사용한다)였다. 왜냐? 도덕성을 상실한 한 여성 생명공학자가 자신의 DNA를 조류, 어류, 파충류, 갑각류의 유전자와 결합(이를 유식한 말로는 ‘칵테일’이라 하며 무식한 말로는 ‘짬뽕’이라 한다)하여 사람 닮은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것’이란 뜻의 인터넷 은어) 생명체를 만들어내는데, 암컷으로 태어난 이놈이 발정기가 되어 여성 생명공학자의 연구실 동료이자 애인인 남자를 유혹해 ‘교미’를 하고 나서 다시 스스로 성전환을 하여 수컷이 된 뒤 자신의 ‘엄마’ 격인 여성 생명공학자와도 성관계를 시도한다는 내용이니까 말이다. 멀쩡한 여자 ‘구은재’가 눈 밑에 점 하나 찍고 ‘민소희’로 변신하는 드라마 ‘아내의 유혹’보다 훨씬 더 갈 데까지 가는 드라마 아닌가 말이다.



만약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당신이 “아, 도덕성이 결여된 과학기술이 어떤 재앙으로 귀결될 수 있는지를 우리 인류에게 경고하는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담겼군”이라며 감탄한다면? 당신은 ‘범생이(모범생)’였거나 지금껏 주위 사람들을 단 한 번도 웃겨본 적이 없는 ‘썰렁한’ 인간일 공산이 크다.

또 당신이 ‘이거 참 난감한 얘기네. 영화 속 이 해괴망측한 생명체를 만약 여성 생명공학자의 호적에 올린다면 딸로 올려야 되나 아들로 올려야 되나 아니면 남편으로 올려야 되나’ 혹은 ‘앞으로 과학이 더 발달해 아내의 복제인간과 내가 바람을 피우면 그건 바람을 피운 건가 안 피운 건가’라는 고민을 했다면, 당신은 인생 복잡하게 사는 거 좋아하고 주위 사람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치밀한 논리와 이성의 소유자일 수 있다. 반면 “아유, 더러워. 이건 알고 보니 끝장 에로영화 아니야?”라고 분개했다면? 당신은 매우 정상이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