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한진 겨누는 진짜 이유…4년간 대화·질의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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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월 21일 06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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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회항·물컵갑질’…장장 3년간 반복돼 시급성↑
“연금사회주의 해석말라…당장 경영참여는 힘들것”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땅콩 회항’ 사건 당시 모습. 뉴스1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땅콩 회항’ 사건 당시 모습. 뉴스1
국민연금이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 여부를 다음달 결정할 예정인 가운데 한진에 대한 경영참여 등 적극적 주주행동을 주장하는 기금운용위원들은 ‘한진이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임을 강조하고 있다.

2015년 땅콩회항 때부터 한진은 무려 4년간 유사 사건을 반복했으며 그때마다 국민연금이 서한발송 등의 조처에 나섰지만 개선은 없었다. 이번 의결권 행사를 적극적 주주행동을 본격화한 것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라 특정기업의 문제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21일 연금 전문가와 기금운영위원 등에 따르면 한진의 경우 ‘중점관리사안’과 ‘예상치 못한 우려’에 해당하는 일들이 4년간 반복해 사회적 문제가 됐다. 땅콩회항·물컵갑질부터 시작해 횡령과 배임 등 총수일가의 범죄 의혹까지 각종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국민연금기금 국내주식 수탁자 책임 활동 가이드라인’을 보면 국민연금은 앞으로 투자대상 기업과 관련한 중점관리사안 및 예상치 못한 우려에 대해 수탁자 책임 활동을 벌여 주주가치 제고와 기금의 장기적인 수익성을 제고한다.

중점관리사안은 Δ횡령·배임·부당지원행위(일감 몰아주기)·경영진 사익편취 등 법령상 위반 우려 Δ과도한 임원 보수 책정 Δ낮은 배당성향 Δ5년 내 2회 이상 반대의결권 행사에도 개선이 없는 사안 등이다.

가이드라인은 지분율 5% 이상 또는 보유비중 1% 이상 투자기업을 대상으로 수탁자 책임 활동을 크게 4단계로 추진하게 하고 있다.

1단계로는 투자위가 비공개대화 대상기업을 선정한 이후 사실관계 확인 및 입장 표명 등을 요청하는 서한을 기업에 보낸다. 또 조치사항을 확인해 개선대책 요구를 위한 질의서·의견서를 발송하는 등의 비공개 대화에도 나선다.

하지만 중점관리사안이 발생한 1년 뒤에도 개선이 없거나 아예 처음부터 개선 여지가 없는 경우 비공개 중점관리기업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때부터 국민연금은 이사 선임 안건 등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적극적인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로는 볼 수 없다.

비공개 중점관리기업으로 선정된 뒤부터는 2단계 비공개 대화·서한 발송이 이뤄지지만, 해당연도 말이 됐음에도 개선이 없다면 본격적인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3단계 ‘공개중점관리기업 선정’으로 접어들게 된다.

국민연금은 이후에도 또다시 비공개 면담과 서한 발송을 진행하나 공개중점관리기업으로 선정된 연말에도 개선이 없다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논의를 거쳐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의결에 따라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결국 경영참여는 첫 중점관리사안이 발생한 뒤부터 최소 2~3년이 걸리는 셈이다.

중점관리사안이 아닌 환경·사회·지배구조 등과 관련한 ‘예상하지 못한 우려’가 발생한 경우 경영참여까지 시간이 단축된다. 땅콩회항이나 물컵갑질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이 때에는 비공개대화 대상기업 선정 1년 이후 서한발송 등을 거쳐 바로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 여부를 검토한다. 예상치 못한 이슈의 중대성 평가는 정기 지배구조(ESG)평가 결과에 기초해 정성평가를 수행한다.

이러한 수탁자 책임 활동 기준은 아직 본격 시행되기 이전이다. 하지만 일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들은 한진이 장장 4년 동안이나 대화 요청과 서한 발송에 응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가이드라인이 명시한 2~3년을 훌쩍 뛰어넘는 기간동안 한진은 국민연금의 정당한 주주행동에 불응한 셈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국민연금은 물컵갑질 등에 따라 사상 최초로 경영진 면담까지 신청했으나 적절한 응답을 받지 못했다. 적어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자진 사임이나 책임있는 경영을 위한 움직임이 있어야 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여기에 오는 3월 대한항공·한진칼 주총에서 배임·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이사 연임이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시급성이 커졌다.

한 기금운용위원은 “노동계 위원들도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민간기업의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4년 동안이나 연금의 대화 요청에 불응하며 기금 운용에 피해를 끼친 점을 고려한다면 본격적인 수탁자 책임활동 시행 이전이라도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당장 3~4단계에 준용하는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를 검토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공적 연기금은 민간기업의 경영에 일절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적지않기 때문이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가에서 운용하는 공적연금이 개별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통로를 공식적으로 열어주면 정권이 바뀌는 5년마다 국내 기업환경은 급변할 것”이라며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한 조급증에 따라 이런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주요 투자대상을 국내기업에서 해외기업으로 바꾸는 등 아예 공적연금이 국내 기업환경에 관여할 수 없게 하는 근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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