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공공물량 대기업 입찰 제한… 외국계만 웃을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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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형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되면서 향후 공공분야 발주량의 80% 이상엔 대기업이 입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ESS는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시스템으로 고성장이 예상되는 미래 산업 먹거리 중 하나다. 하지만 중기 간 경쟁제품 지정으로 “외국산에 시장을 잠식당한 발광다이오드(LED) 사태와 동일한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달 5일 중소벤처기업부는 ESS를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했다. 다만 대기업의 피해를 줄인다며 전력변환장치(PCS) 용량이 250kW 이하인 제품만 중소기업이 맡고, 그보다 큰 제품은 대기업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중기부는 “2017년 조달청 및 한전이 조달한 PCS 중 250kW 이하는 금액 기준으로는 5%(32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며 “250kW 이하의 관수(官需) 물량이 적기 때문에 대기업의 피해는 미미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선 앞으로는 공공 시장에서도 250kW 이하 제품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3일 관련 업계와 한국에너지공단 등에 따르면 정부의 공공기관 의무설치 정책에 따라 2020년까지 ESS가 설치될 정부기관, 공기업 965개 중 811개(84%)가 PCS 용량 250kW 이하를 사용하게 될 것으로 나타났다.

건물 규모가 클수록 PCS 용량이 큰 ESS를 설치해야 하는데, 250kW가 넘는 제품을 설치할 만한 공공기관 건물이 154개(16%)에 불과한 것이다. 전력 수요가 많은 대형 청사나 병원, 대학, 운동경기장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반 사무용 공공건물은 PCS 용량 250kW 이하의 제품을 설치할 것으로 ESS 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내년부터 공공기관 대부분이 대기업의 제품을 구매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세계 전력시장에선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신재생에너지는 생산이 불규칙적이기 때문에 에너지를 저장해 두는 ESS의 중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ESS 발전량은 올해 6.9GWh(기가와트시)에서 2025년 90.4GWh로 연평균 45%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국내 공공시장 진입 제한으로 대기업들이 제대로 경쟁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ESS 업계 관계자는 “공공 물량을 통한 레퍼런스 축적이 해외시장 진출의 발판이 되는데 그 기회까지 꺾이게 되는 셈”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LED와 똑같은 꼴이 날 것”이라는 날 선 비판도 제기된다. 신산업으로 주목받았던 LED 조명사업은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에 의해 중기적합업종으로 선정되면서 레퍼런스를 확보하지 못한 삼성전자, LS산전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철수했다. 그 빈자리는 국내 중소기업이 아닌 필립스, 오스람 등 외국계 기업이 과점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정책이 오히려 중소기업 및 중견기업에 역피해로 이어질 소지도 있다. ESS에 들어가는 부품들은 중소, 중견기업에서 납품받는 경우가 많다. ESS 사업을 진행하는 국내 A기업은 2015∼2018년 ESS 부품 재료비에서 중소기업 공급비율이 91%에 달했다.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시공업체들의 불만도 크다. 1만7000여 개의 시공업체를 회원사로 둔 한국전기공사협회 관계자는 “중기 간 경쟁제품으로 선정되면 ESS 부품을 직접 생산하는 업체만 공공기관 입찰에 참여할 수 있어 ESS 설치사업을 하는 시공업체들은 입찰 참여 기회조차 없다”고 말했다.

김재희 jetti@donga.com·황태호 기자
#ess 공공물량#대기업 입찰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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