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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버티기 버거운 ‘산업의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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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버티기 버거운 ‘산업의 쌀’

강지남 기자 입력 2018-12-08 10:59수정 2018-12-08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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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위기의 한국 제조업, 대책은?
● 中 물량 공세, 美 보호무역, 내수침체로 ‘사면초가’
● ‘철강도시’ 포항엔 문 닫은 공장, 빈 점포 수두룩
● 일부 구조조정 피할 수 없지만 산학연 연계 연구개발(R&D) 지원 절실
● 철강은 사 오면 된다? “신제품·신산업 기획 단계부터 철강 기술 논의해야”
경북 포항 남구 형산강 건너로 바라보이는 포스코 포항제철소(왼쪽)와 충남 당진군 현대제철소. [박해윤 기자, 동아일보]
경북 포항 시내를 지나 남쪽 형산강변에 이르면 강 건너로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거대한 위용을 드러낸다. 검게 그을린 거대한 구조물 사이에 높다란 굴뚝이 여럿 서 있고, 그 굴뚝들에서 새하얀 연기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와 하늘로 피어오른다. 이러한 장관을 뒤로하고 형산대교를 건너 남동쪽으로 방향을 틀면 이내 포항철강산업단지(포항산단)에 들어서게 된다.

포항산단은 1973년 포스코와 나란히 준공돼 한국 철강산업 발전에 일조해왔다. 포스코는 철강을 생산하고, 포항산단은 그 철강을 ‘자르고 붙이고 말아’ 철강 제품을 만든다. 건물에 들어가는 철근, 자동차나 선박용 강판, 원유 생산에 필요한 강관 등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산업의 쌀’ 철강이 산업에 유용하게 쓰이도록 여러 형태로 가공하는 ‘철강 정미소’인 셈이다. 전체 면적은 1112만㎡으로 서울 여의도의 3배다.

그러한 포항산단에 최근 빨간불이 켜졌다. 문 닫은 공장이 여럿이고, 일자리도 슬금슬금 줄어들고 있다. 중국 철강의 여전한 물량 공세, 보호무역주의 확산, 건설·자동차·조선 등 내수시장 부진 탓이다. 포항산단의 ‘맏형’이라 할 현대제철의 우유철 부회장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이러한 철강업계의 처지를 ‘내우외환(內憂外患)’에 비유했다.

非가동 공장 비율, 처음으로 10%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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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남구 포항철강산업단지 내 한 야적장에 포스코 후판을 운반하는 대형 트레일러가 오가고 있다. [박해윤 기자]
“한창 잘나갈 땐 코일(Coil)이 하루에 20개씩 들어갔어요. 이 앞으로 코일을 하나씩 실은 대형 트레일러가 길게 줄을 서 공장으로 들어가곤 했죠. 지금 보세요. (트레일러가) 다 놀고 있잖아요. 어제는 항만으로 유정(油井)용 강관을 좀 실어 날랐다는데, 오늘은 또 일이 없으니까….”

12월 4일 포항산단 넥스틸 공장 앞에서 만난 화물기사 이모 씨의 말이다. 유정용 강관 생산업체 넥스틸은 미국의 철강 수입재 쿼터(할당) 적용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으로 꼽힌다. 그의 말대로 공장 앞 도로변에는 대형 트레일러 예닐곱 대가 시동을 끈 채 주차돼 있었다. 이 트레일러들은 강관 생산에 필요한 코일을 포스코로부터 가져오고, 미국으로 수출되는 강관을 항만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한다. 넥스틸의 내수용 제품 원자재를 실어다 주러 왔다는 이씨는 “넥스틸의 강관은 미국에서도 높게 평가하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때문에 수출이 어렵게 돼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포항의 명동’으로 불리는 포항 북구 중앙상가 실개천거리에서는 빈 점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박해윤 기자]
포항산단에서 10km가량 떨어진 포항 북구 대흥동의 중앙상가 실개천거리는 ‘포항의 명동’으로 불린다. 차량 통행이 금지된 널찍한 거리 양쪽으로 2~4층의 상가가 즐비하게 서 있다. 하지만 이 거리에서 빈 점포를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때는 카페였고, 옷가게였고, 호프집이던 가게들이 ‘임대 문의’ 종이를 써 붙인 채 불을 꺼뒀다. 후광 효과를 누릴 수 있어 자영업자들이 선호한다는 커피프랜차이즈 ‘스타벅스’ 바로 옆 가게도 문이 잠겨 있었다. 실개천거리 한가운데 자리한 2층짜리 상가는 유명 패스트푸드점이 사업을 접은 지 1년이 넘도록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근 부동산공인중개업소 안모 소장은 “2년 전부터 상권이 죽기 시작했다”며 “도심 외곽으로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그쪽으로 빠져나간 탓도 있지만, 철강 쪽 사정이 나빠진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포항은 제조업의 도시고, 제조업의 90% 이상을 철강 및 철강 유관 산업이 차지한다. 안 소장은 “3~4년 전 권리금 1억~1억5000만 원을 내고 장사를 시작했던 사람들이 권리금을 포기하고 내놓은 점포도 여럿”이라고 전했다. 인근 죽도시장의 한 유명 곰탕집 아주머니는 “제철소 사람들이 거하게 회식하던 것은 이제 옛날얘기”라며 “요즘엔 한둘씩 와서 점심만 후딱 먹고 간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우리 식당은 방송에 소개된 적 있어 외지 사람이 많이 찾아오지만, 다른 식당들은 갈수록 사정이 어렵다”고도 했다.

포항은 2016년 위기에 빠진 ‘조선업의 도시’ 거제와는 사정이 다르다. 거제는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조선업 일자리가 10만 개에서 7만 개로 단숨에 3만 개가 사라지는 고통을 겪었지만, 포항은 ‘도시의 중추’ 포스코가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포스코는 중국 철강회사들의 추격으로 한때 세계 2위였던 생산능력 순위가 지난해 5위로 내려앉았지만, 비(非)철강 부문 강화, 기가스틸(giga steel??·??차량용 고경량 강판) 등 고부가가치 철강 제품 생산, 미국 이외에 다양한 판로 개척 등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2005년 이후 하락 추세였던 영업이익률도 2015년부터 회복세로 돌아서 올해 삼사분기(7~9월) 13.8%를 기록했다. 4분기 연속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달성한 것이다.

문제는 포스코를 제외한 포항지역 중견·중소 철강업체의 실적이 날로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포항산단에는 273개사 347개 공장이 입주해 있는데, 이들 업체의 올해 1~10월 누계 생산액은 11조4125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0.6%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수출액은 26억5596만 달러(약 2조9710억 원)로 5.7% 감소했다. 고용 인원은 1만4395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1만4602명)보다 207명 줄었다. 포항산단 한 관계자는 “위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서서히 체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포항산단 347개 공장 가운데 현재 가동 중인 곳은 300개이며, 나머지 47개는 절반 이상이 휴업하거나 폐업 후 매물로 나와 있는 상태다(10월 말 기준). 50년 가까운 포항산단 역사에서 가동되지 않는 공장 비율이 10%를 넘어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또 다른 포항산단 관계자는 “철강 공장이 영업이익을 내려면 가동률이 최소 80%를 넘어서야 하는데, 상당수 공장의 가동률이 그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며 “간신히 버티고 있는 회사가 꽤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준공 앞뒀는데 아무도 안 찾는 ‘블루밸리산단’


올해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철강업종은 대미(對美) 수출 의존도가 높은 강관업계다. 미국 상무부는 자국 철강산업 재건을 위해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동하고 수입 철강에 25% 관세를 매기기 시작했다. 한국산 철강에 대해서는 이 관세를 면제해주기로 한 대신, 관제 면세 대상을 2015~2017년 평균 물량의 70%로 제한했다. 이에 국내 업체들은 한국철강협회를 통해 회사별 대미 수출 물량을 할당해 대응하고 있다.

쿼터제 적용은 5월 1일 발표됐는데, 쿼터 적용 기산일이 당초 예상과 달리 올해 1월 1일로 잡혔다는 점이 문제다. 한 강관업계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등 우리 정부가 기산일을 5월 1일로 잡도록 애쓰겠다고 해 그럴 것으로 예상했다”며 “통상 강관은 연초에 많이 수출되기 때문에 올해 상반기에 이미 연간 대미 수출액 쿼터를 모두 채운 셈이 됐고, 많은 회사가 삼사분기에 수출 물량이 거의 끊겨 어려움이 컸다”고 전했다. 11월부터는 내년 물량으로 잡히는 강관을 조금씩 미국으로 내보내고 있어 업황이 다소 개선됐지만, 내년 물량을 다 채우고 나면 형편이 다시 어려워질 수 있다.

12월 1일 미·중 정상이 내년 1월 1일로 예정됐던 관세 추가 부가를 90일간 유예하기로 합의했고, 미국 주요 제조업체들이 관세로 인한 비용 증가 및 수익성 악화를 토로하기 시작하자 미국 철강 보호무역주의가 완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이상학 포스코경영연구원 철강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은 “미국 중간선거 결과 민주당이 하원 주도권을 확보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경기부양책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또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심화돼 여론이 움직일 경우 보호무역 기조의 강도와 기간이 조정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미국 철강 보호주의의 빛과 그림자’, 2018년 11월 29일). 그러나 포항산단에 위치한 한 강관업체 관계자는 “상황이 계속 바뀌고 있어 희망을 품기에는 아직 섣부르다”며 “미국 시장만 쳐다볼 수는 없고 내수시장 확대 등 대안을 강구해야 하는데, 내수를 뚫기가 녹록지 않은 것이 또 하나의 어려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철강을 가장 많이 가져다 쓰는 산업은 자동차도, 조선도 아닙니다. 건설 산업이에요. 그런데 요즘 건설 수요가 너무 없어요. 철강업계에 미국 등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보다 더 큰 타격은 건설업 불황입니다.(그래프1 참조).”

포항산단을 관리하는 포항철강산업관리공단의 김영헌 관리팀장은 철강업 보릿고개의 주요 원인으로 ‘건설업 불황’을 꼽았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삼사분기 건설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6.7% 감소해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일사분기(-9.7%) 이래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아파트, 상가는 물론 철도, 도로 등 토목 분야 투자가 고루 감소한 결과다. 김 팀장은 “국내 대기업들이 설비투자에 나서지 않는 것도 주요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대기업 공장 증설이나 개·보수 등이 철강기업의 주요 먹거리인데, 이러한 설비투자가 크게 줄어 포항산단 기업들이 일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많은 업체가 적은 물량이라도 수주해 어떻게든 공장을 가동시키며 버텨보자는 분위기”라면서 “내년 전망 역시 좋지 않기 때문에 2019~2020년 쓰러지는 철강업체가 여럿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올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19조 원으로 지난해보다 3조 원 적었고, 내년 예산도 18조5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5000억 원이 더 줄어든다. 9·13 부동산대책 이후 주택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택건축시장도 위축되는 분위기다. 몇몇 건설회사는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올해 국내 자동차 생산량도 9년 만에 400만 대를 밑돌 것으로 예상되는데, 내년에는 그마저도 더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그래프2 참조). 유일하게 조선업이 부활 조짐을 나타내고 있으나, 저가 수주 여파로 철강업계에 단가 인하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그래프3 참조). 해양플랜트 건설 분야 역시 철강 수요가 큰 전방산업이지만, 저유가로 여전히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포항산단에서 근무하는 한 철강업체 직원은 “수출이 어려워 내수시장에 건설용 자재를 납품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수요가 별로 없는 데다 저렴한 중국산 철강 자재가 여전히 시장을 지배하고 있어 고충이 크다”고 말했다.

포항 남구 포항철강산업단지에 자리한 스틸플라워는 5월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공장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번번이 입찰이 무산되고 있다. [박해윤 기자]
김영헌 팀장은 “매물로 나온 공장들이 팔리지 않는 것을 보면 철강업 전망이 매우 어둡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2012~2013년만 해도 포항산단에서는 공장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지금은 사겠다고 나서는 기업이 없다고 한다. 그는 “2000년대 조성된 4단지에 가면 팔리지 않은 공장이 여럿 있다”고 했다. 그중 하나인 ‘스틸플라워’는 10월과 11월 공장 매각에 나섰으나 단 한 곳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경매에 넘기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심지어 매입하겠다고 밝혔던 투자자가 이후 매입 의사를 철회했다고도 한다. 해양플랜트에 사용되는 산업용 파이프를 생산하던 스틸플라워는 2011년 포스코로부터 170억 원을 투자받고, 2012년 연매출 3000억 원에 육박할 정도로 주목받는 업체였다. 그러나 2014년 국제유가가 크게 떨어지고 해양플랜트시장이 위축되면서 사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일본 철강산업처럼 부활하려면


[동아일보]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새로 조성되는 포항블루밸리국가산업단지(블루밸리산단)에 들어오겠다는 기업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블루밸리산단 조성은 타이타늄, 철강, 자동차, 선박, 에너지·IT(정보기술) 분야의 첨단 부품·소재 기업을 유치하려는 사업으로 2008년부터 추진돼왔다. 포스코 및 포항산단과 동남쪽으로 15km 떨어진 포항 남구 동해면 일대에 611만8000㎡ 규모로 조성될 예정. 하지만 포항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내년 3월 1구역 준공을 앞두고도 아직 입주할 기업을 단 한 곳도 구하지 못한 형편이다. 포항산단 한 관계자는 “위치가 멀고 경기도 나빠 관심 갖는 기업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내수는 부진하고, 중국은 쫓아오고, 미국 등 주요 시장의 진출은 어려워지는 ‘내우외환’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정부 및 철강업계는 ‘기술 연구개발(R&D)을 통한 경쟁력 확보’를 그 답으로 제시한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은 “포항지역 중견·중소 철강업체는 그동안 포스코라는 우산 아래서 단순 가공 제품을 생산해 가격 경쟁력으로 버텨왔다”며 “2007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된 중국 철강의 추격을 이겨내려면 기술개발로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쪽으로 체질 개선을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현 철강업 위기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과 일본의 주요 철강 소재 세계시장 점유율을 비교해보면 한일 간 격차를 짐작할 수 있다(2012년 기준). 고장력강(high tensile steel)은 자동차 차체의 강성(强性)과 안전성을 높이고 무게를 줄이는 차세대 철강 소재다. 일본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45%인 반면, 한국은 3%에 불과하다. 교량, 선박, 열차 등에 사용되는 탄소강(carbon steel)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일본이 9%, 한국은 4%로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김 부국장은 “현재는 고장력강 점유율이 다소 올라갔을 것으로 보이지만 탄소강 점유율은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일본 철강산업처럼 기술개발로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국내 철강산업을 되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고부가·경량금속 소재의 집중 개발로 철강산업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생각이다. 11월 22일 산업부는 국회에서 열린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대토론회’에서 그 추진 전략으로 △‘고부가’ 금속 소재의 집중 개발과 사업화 지원 △‘경량금속·특수합금 소재’ 강소전문기업 육성 △‘대·중소기업 상생형 스마트제철소’ 확산 △통상 등 현안 대응 강화 등을 언급했다.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 기업 등 ‘산학연’ 협업체제를 구축해 상생형 혁신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청사진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방향이 맞다고 본다. 자체적인 R&D 역량이 부족한 중견·중소기업과 대학, 연구소가 끈끈하게 연결돼 있어야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준호 고려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기업이 대학이나 연구소의 도움 없이 혼자 R&D에 나서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며, 대학이나 연구소가 기업 얘기를 듣지 않고 시장이 수용할 수 없는 너무 앞선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문제”라며 “세 주체가 합심해 ‘지금보다 좀 더 좋은’ 기술을 제품에 적용해 시장을 개척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또한 “철강을 단순히 ‘사다 쓰면 되는’ 소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도 덧붙였다. 완제품이나 신사업의 기획 단계부터 철강업계와 함께 논의해 필요한 철강 소재 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 먹거리로 스마트시티를 추진하고 있는데, 스마트시티에는 IT뿐 아니라 최첨단 철강 소재도 필요하다. 스마트시티 기획 단계부터 어떠한 철강 소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어떤 기술을 연구개발해야 하는지 논의한다면 스마트시티 프로젝트가 한국 철강산업을 발전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지만 알찬 철강사 많아지기를”

포스코 및 포항철강산업단지와 15km가량 떨어진 지역에 조성 중인 포항블루밸리국가산업단지 현장. 내년 3월 1구역 준공을 앞뒀지만 입주할 기업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위). 세아제강이 주로 미국에 수출하는 유정용 강관. 유정용 강관은 미국의 철강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큰 타격을 입은 대표적 철강 품목이다. [박해윤 기자, 뉴스1]
김진홍 부국장은 2015년 일본 정부가 개시한 ‘금속소재 산업경쟁력 강화 플랜’을 예로 들었다. 자동차 회사 닛산이 이 플랜에 참여해 철강회사들과 함께 고경량 자동차 강판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정부의 노력이 주무부처 장관이나 정권이 교체돼도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추진돼야 철강산업을 환골탈태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형산강 건너로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보이는 포항 남구 해도동에서 만난 나모(52) 씨는 동국제강이 자동차용 후판 생산 공장을 포항에서 충남 당진으로 옮기기 전까지 동국제강 후판을 울산 현대자동차로 실어 나르는 일을 했다. 그는 “지금도 종종 추레라(트레일러) 동료들을 만나면 그 시절이 좋았다고, 지금 포항은 일감이 너무 줄어 살기 어려워졌다고 한탄하곤 한다”면서 “포항이 예전처럼 철강도시로 다시 부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포항산단의 한 철강업체 중견 간부인 김모 씨는 ‘특정 제품만 고수하다, 일부 시장에만 매달리다’ 망한 회사 두어 곳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지금 다니는 회사는 미국 이외에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에도 활발하게 수출하고 있고, 기술개발로 좋은 제품을 생산해 일본 도요타 협력업체에도 납품 중이다. 규모는 작지만 알찬데, 포항산단에 이런 회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피력했다.

포항=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67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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