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의 마켓뷰]빅데이터와 만나 진화하는 ‘퀀트’ 투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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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혁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
안혁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
사법 시스템의 신뢰는 법치주의를 기반으로 한 판결의 일관성에서 나온다. 항상 같은 형량과 판결이 내려질 순 없지만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재판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상황을 최대한 줄이려는 것이다. 현대 사법 시스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정의의 여신 디케가 두 눈을 가리고 있는 이유 역시 편견 없이 오로지 법과 정의에 따라 판결하겠다는 의미다.

투자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어떤 종목이나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나은지 판단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금융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20세기 투자의 역사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 피터 린치, 버핏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 같은 스타 투자자를 중심으로 쓰였다면 21세기 투자는 퀀트 시스템에 바탕을 둔 르네상스테크놀로지, 블랙록,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운용사가 판을 짜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최대 운용사인 블랙록은 컴퓨터 모델을 기반으로 투자 종목을 선정하도록 조직을 개편했다. 인공지능(AI) 투자 분석 프로그램을 도입한 골드만삭스는 600명에 이르던 주식 매매 트레이더를 2명만 남기고 모두 해고했다. 르네상스테크놀로지는 경제·경영학 전공자보다 수학 물리학 통계학 전공자를 우대해 직원 상당수가 이공계 박사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20년 동안 연평균 30% 이상의 수익을 꾸준히 냈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투자 패러다임의 중심에 있는 퀀트란 무엇인가. 퀀트란 투자 매니저의 주관적인 판단이 아닌 객관적인 숫자를 기반으로 투자 판단을 하는 시스템 또는 투자 방법을 뜻한다. 전통적인 투자 역시 숫자로 이뤄진 재무제표 분석을 중요시하지만 최종 판단은 결국 사람의 몫으로 남긴다는 점에서 퀀트 투자와 다르다.

가치주 투자를 예로 들어보자. 기업의 재무제표를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투자하는 것이 전통적인 가치주 투자 방법이라면 주가수익비율(PER)이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종목을 포트폴리오에 담는 것이 퀀트적인 가치주 투자 방법이다. 숫자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개인의 편견이 미치는 영향이 적고 투자 방향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최근 퀀트 투자는 빅데이터, AI, 로보어드바이저 등과 결합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세계 주요 경제 및 금융 데이터에 접근이 쉬워지면서 투자 성과도 높아지고 있다. 퀀트 투자에 관심을 갖는 개인투자자도 많다. 투자자의 감정이나 편견에 휩쓸리지 않고 투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퀀트 운용 원리를 제대로 숙지하고 전략을 짜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안혁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
#빅데이터#퀀트#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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