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차 ‘유리천장’ 깨기 시작한 신형 K9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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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THE K9’ 타보니

기아자동차가 디자인과 안전주행기술 역량을 집중해 만든 ‘THE K9’은 수입차와 국산차의 경계를 헐 만한 모델로 꼽힌다. 기아차의 ‘브랜드 고급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아자동차 제공
기아자동차가 디자인과 안전주행기술 역량을 집중해 만든 ‘THE K9’은 수입차와 국산차의 경계를 헐 만한 모델로 꼽힌다. 기아차의 ‘브랜드 고급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아자동차 제공
‘국산차의 유리천장을 허물기 시작했다.’

기아자동차가 이달 초 출시한 플래그십 세단 신형 K9(THE K9)을 타본 뒤 든 생각이다.

그간 K9 브랜드는 기아차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피터 슈라이어 현대기아차 디자인총괄사장이 세상에 내놓은 K 시리즈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2010년 출시된 중형세단 K5는 처음 도입된 ‘호랑이코 그릴’로 호평이 쏟아졌다. 중형세단 시장에서 현대자동차 쏘나타의 독주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준중형 K3도 아반떼의 맞수로 발전해 왔다. 준대형 K7은 ‘K시리즈 중 가장 정교하게 다듬어진 차’라는 평가를 받으며 그랜저IG와 경쟁 중이다.

K9 내부 인테리어 모습. 화려한 계기판과 일자로 뻗은 센터페이샤 그리고 고급스러운 시트까지 최고 국산차를 목표로 디자인됐다. 기아자동차 제공
K9 내부 인테리어 모습. 화려한 계기판과 일자로 뻗은 센터페이샤 그리고 고급스러운 시트까지 최고 국산차를 목표로 디자인됐다. 기아자동차 제공
문제는 K9이었다. 급으로 치면 제네시스 G80이나 EQ900과 동급으로 기아차의 ‘간판’ 역할을 해야 했지만 존재감이 미미했다.

그런 K9이 완전히 탈바꿈해 THE K9으로 돌아왔다. 17일 열린 시승 행사에서 직접 경험해본 THE K9은 놀라웠다. 시승차는 3.3T GDi 엔진을 장착한 그랜드 마스터즈 트림 풀옵션이었다. 가격은 8560만 원. 최고급 트림인 5.0 퀀텀의 바로 아래 모델이었다. 시승 구간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강원 춘천을 왕복하는 약 150km 구간이었다.

외관은 사진보다 더 고급스러웠다. THE K9의 디자인 콘셉트는 ‘위엄의 중력(Gravity of Prestige)’이다. 강하게 응축된 고급감과 품격의 무게를 표현했다는 것이 기아차의 설명이다. 구형 모델보다 한층 커진 차체는 웅장했다. 길이 5120mm, 너비 1915mm, 높이 1490mm, 축간 거리 3105mm로 이전 모델보다 높이 빼고는 다 조금씩 커졌다.

‘빛의 궤적’을 형상화했다는 주간주행등은 곡선이 미려했고 이중 곡면으로 디자인된 ‘쿼드릭 패턴 그릴’은 재미와 품위를 동시에 자아냈다. 기존 기아차 엠블럼과 달리 그러데이션과 입체 디자인이 들어간 새 엠블럼도 고급스러웠다.

시동을 켜자 화려한 계기판(클러스터) 화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속도와 분당 엔진 회전수(RPM), 주행 가능 거리, 시간, 차량 상태 등 각종 정보를 미려한 디자인으로 구현해냈다. 인테리어도 ‘국산차가 맞나’ 싶을 정도로 고급스러웠다. 탄탄한 시트와 정갈하게 일자로 뻗은 센터페이샤(내비게이션 등 각종 조작 버튼이 있는 부분)는 기아차의 플래그십 자리를 맡기에 손색없었다. 가운데 자리 잡은 스위스 브랜드 아날로그시계 ‘모리스 라크로와’도 고급스러웠다. 여타 차종이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 조잡한 아날로그시계를 넣었다가 종종 비판을 받곤 했는데 THE K9의 아날로그시계는 존재감이 충분했다.

주행 성능은 기대를 뛰어넘었다. 저속에서의 안정감, 고속에서의 폭발적인 스피드 어느 것 하나 아쉬운 부분이 없었다. 테스트를 위해 가속페달을 시속 150km를 넘길 때까지 확 밟아도 차는 매끄럽게 나갔고 내부는 조용했다. THE K9은 주행모드에 따라 인위적으로 만든 엔진음도 섞어서 들려준다.

급커브가 반복되는 구간에서도 롤링(차체가 좌우로 흔들리는 현상)이 적고 안정적으로 코너를 돌았다. BMW처럼 주행 성능이나 ‘운전하는 재미’를 내세운 모델은 아니었지만 모자람이 없었다. THE K9은 노면 상황을 1024개로 세분해 인식하고 대응한다.

주행 모드는 컴포트, 스포츠, 에코, 스마트 4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컴포트로 달리다가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스포츠로 바꿨다. 계기판 스크린도 붉은 톤으로 바뀌더니 차가 튕기듯 앞으로 달려 나갔다. 배기음도 달라졌다. 마치 직전까지 탔던 차와는 다른 차 같았다.

운전자를 돕는 첨단기능의 재미도 쏠쏠했다. 설정한 속도 이내에서 자율주행하는 기술인 스마트크루즈컨트롤(SCC)을 켜고 핸들에서 손을 놓자 헤드업디스플레이(HUD)에 녹색 표시가 뜨며 차가 자율주행을 시작했다. 차선이 아주 흐리거나 빛이 강한 구간을 제외하고는 꽤 안정적으로 스스로 주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차로유지보조(LFA),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크루즈컨트롤(NSCC)도 단순한 ‘장식용 기능’이 아니라 매우 실용적이었다.

새 기능은 몹시 인상적이었다. 왼쪽 차선으로 이동하기 위해 방향지시등을 켜자 운전석 클러스터 화면에 왼쪽 후방 풍경이 그대로 떴다. 사이드미러로 혹시 볼 수 없는 영역까지 카메라로 촬영해 운전자에게 전달하는 기능이다. 굳이 사이드미러 없이도 차선 변경을 안전하게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터널에 진입하면 자동으로 창문을 닫고 내기순환 모드로 바꿔주는 터널연동 자동제어 기능도 놀라웠다.

총평하면 THE K9은 기아차가 정말 권토중래(捲土重來·실패를 딛고 일어섬)의 심정으로 만든 모델이다. 더불어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고급 수입차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안락함, 감성, 주행 성능의 경지를 국산차도 따라잡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차였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THE K9이 합리적인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 올여름, 국내 고급 대형세단의 판매경쟁이 THE K9의 등장으로 후끈 달아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춘천=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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