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오피스서 넥타이 풀고 일하니 신바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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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TF공간으로 인기몰이

9일 서울 위워크 역삼점에서 김정한 하나금융티아이 부사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DT랩 직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직원들은 
“일하는 공간이 편안한 분위기로 바뀌면서 업무 효율이 높아지고 동료 간 의사소통도 훨씬 잘 된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9일 서울 위워크 역삼점에서 김정한 하나금융티아이 부사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DT랩 직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직원들은 “일하는 공간이 편안한 분위기로 바뀌면서 업무 효율이 높아지고 동료 간 의사소통도 훨씬 잘 된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넥타이와 셔츠는 지난 20년 동안 정현섭 하나금융티아이(TI) 부장의 출근 ‘필수템’이었다. 한여름에도 벗지 못했던 넥타이와 셔츠를 벗게 된 건 정 부장이 속한 DT랩(LAB) 부서가 올해 초 공유오피스인 위워크(wework) 역삼점으로 사무실을 옮기면서다. DT랩은 하나금융지주 계열사인 하나금융티아이 소속으로 금융시장과 소비자의 패턴 등을 빅데이터로 분석하고 관련 인공지능(AI) 프로그램 등을 개발한다.

금융·증권사가 모인 여의도의 각진 사무실을 벗어나자 새로운 시도들을 하게 됐다. 출퇴근 시간과 복장을 자율에 맡겼다. 삭발을 해도, 슬리퍼를 신어도 모두 ‘오케이’다. 정해진 자리가 답답하게 느껴지면 위워크에서 근무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노트북만 들고 사무실을 나와 스낵바에 앉아 일을 해도 된다. 정 부장은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 경우도 더러 있다”며 웃었다. 김정한 하나금융티아이 부사장은 “최신 트렌드에 빠르게 적응하는 스타트업이나 금융 분야 젊은 전문가들과 소통하다 보면 더욱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아 이곳에 사무실을 꾸렸다”고 했다.

대기업이 딱딱한 기존 사무실을 벗어나 공유오피스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스타트업이나 프리랜서의 공간으로만 여겨졌던 공유오피스로 대형 기업이 눈을 돌리면서 오피스 시장의 판도도 바뀌고 있다. 공유오피스란 건물 한 층이나 한 채를 여러 회사 및 사람들이 나눠 쓰는 사무실을 말한다.

13일 미국계 공유오피스 회사인 위워크에 따르면 현재 위워크에는 하나금융티아이를 비롯해 삼성, SK홀딩스, 아모레퍼시픽 등의 대기업이 입주해 있다. 패스트파이브 같은 국산 공유오피스에도 스타트업보다 규모가 큰 다양한 기업들이 입주해 있으며 현대카드는 역삼동에 직접 건물을 임차해 운영하는 공유오피스 ‘스튜디오블랙’에 일부 직원이 근무하도록 하고 있다.

이들이 기존 오피스를 떠나 공유오피스로 자리 잡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관련 업계의 최신 트렌드와 기술을 빨리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위워크 관계자는 “단순 업무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 간 의사소통을 통해 보다 새로운 내용을 창출해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 위워크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대기업 내에서도 시장 연구부서나 태스크포스(TF) 등과 같이 창의력이 요구되거나 시장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야 하는 부서들이 주로 공유오피스에서 근무한다.

두 번째는 출장을 가거나 해외에 사무공간을 마련해야 할 때 공유오피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위워크의 경우 멤버십 회원으로 가입하면 전 세계 위워크 지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현대카드 역시 스튜디오블랙에 입주한 기업들이 원할 경우 현대카드의 해외 출장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해외 진출에 필요한 사무실 마련이나 장기 출장 등에 들어가는 비용과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다소 비싼 임대료에도 기업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위워크 역삼점의 경우 50개 좌석을 빌릴 경우 월 임대료는 최대 2800만 원 정도다. 하지만 지난해 전 세계 위워크 멤버십에 가입한 기업은 1000여 곳으로 연간 증가율이 370%에 달한다.

오피스 시장 판도도 꿈틀대고 있다. 업계에서는 공유오피스와 기존 오피스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업의 수요뿐만 아니라 공유오피스 공급 또한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말 6.3%였던 서울 오피스 공실률이 지난해 말 11.9%로 2배 가까이 뛰면서 건물주 입장에서는 건물을 쪼개서 임대하기보다는 위워크나 패스트파이브 같은 공유오피스 업체에 통째로 임대하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김정은 세빌스코리아 이사는 “기업들이 공유오피스에 입주하는 흐름은 세계적인 추세”라며 “‘공유오피스=스타트업 사무실’이라는 기존 공식이 사라지면서 기존 오피스 시장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했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공유오피스는 정해진 직원들만 오가는 기존 직원들보다 유동인구가 다양해 건물 내 다른 공간에 카페나 음식점을 세놓기에도 유리하다”며 “최근에는 공유오피스의 젊고 세련된 이미지를 이용해 건물 가치를 끌어올리려는 건물주도 늘고 있다”고 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공유오피스#넥타이#대기업#tf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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