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고 뛰는 가상통화 불법환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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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청 1765억 불법거래 적발

국내에 있는 A사는 2016년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은행보다 싼 수수료로 해외에 송금을 해주겠다며 고객을 모았다. 일명 ‘환치기’를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모인 돈은 17억6000만 원. A사는 종전과는 다른 ‘기술’이 들어간 환치기 수법을 선보였다. A사는 우선 17억6000만 원으로 한국에서 가상통화(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을 샀다. 이어 매입한 비트코인을 전자지갑을 통해 각 고객이 송금하기를 원하는 나라로 보냈다. 해당 국가에 있는 A사의 제휴업체는 송금 받은 비트코인을 현지 화폐로 바꿔 고객이 원하는 현지 계좌로 보내줬다.

이 같은 가상통화를 이용한 환치기 범죄가 처음으로 적발됐다.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 세계 곳곳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가상통화의 기술적 장점을 범죄자들이 악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31일 관세청은 ‘가상통화 이용 불법 환치기 단속 태스크포스(TF)’ 운영 결과 6375억 원의 불법 외환거래를 적발했고, 이 중 1765억 원어치의 거래에는 가상통화가 활용됐다고 밝혔다.

불법 환치기는 고객이 정부 허가를 받은 외국환은행이 아닌 불법 업체를 통해 다른 나라에 돈을 보내는 것이다. 보통 고객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돈을 보내려면 은행에 환전수수료와 송금수수료를 내야 하고 송금 목적도 정확히 밝혀야 한다. 그러나 불법 업체를 통하면 환전할 필요가 없고, 송금수수료도 은행보다 싸다. 무엇보다 송금 목적을 알리지 않아도 돼 불법 자금의 음성적 거래에 많이 이용된다.

가상통화는 당국이 추적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새로운 환치기 수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환치기 업자들은 불법 자금을 다른 나라로 보낼 때 화폐를 밀반출하거나 송금 목적을 허위로 적어 은행을 통해 송금하는 방식을 썼다. 이런 방식은 송금 자료가 남기 때문에 세관이 단속하기가 비교적 수월했다. 반면 가상통화 거래는 송금 자료가 전혀 없어 당국이 환치기를 적발하기가 어렵다.

이런 허점을 이용해 B사는 2013년 1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일본에서 한국으로 보내는 환치기용 자금 537억 원 중 98억 원을 가상통화를 이용해 넘겼다. 엔화로 일본에서 가상통화를 산 뒤 이 가상통화를 전자지갑으로 한국에 보낸 것이다. 한국 내 영업장은 가상통화를 원화로 바꿔 고객이 원하는 계좌에 넣어줬다. 한국과 호주를 연결하는 환치기 업자는 운영 자금 중 3억 원을 가상통화로 주고받기도 했다.

소프트웨어 제작 업체인 C사는 2015년 12월, 싱가포르에 자회사를 설립해 2년간 비트코인을 사려고 1647억 원을 보냈다. 하지만 거래 은행에는 소프트웨어 구매 계약서를 제출하며 송금 목적을 속였다.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한국에서 유독 가상통화가 비싸게 거래되는 점을 악용해 더 싼 값에 비트코인을 사려고 사기를 친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산 비트코인은 전자지갑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는 ‘해외 예금 미신고’에 해당하는 외국환거래법 위반 행위다. 관세청은 C사 관계자를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세종=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가상통화#불법거래#환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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