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V 포터상]‘시니어 희망’ 실어나르는 실버택배… 동반성장 성공 모델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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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이 개발한 전동카트 활용… 전국 150개 사업소 운영
㈜실버종합물류 세우고 지자체-정부와 협업, 일자리 창출 앞장

국내 최대 전통 시장인 부산광역시 부전마켓타운에서 한 실버택배원이 시장 상인들이 배송을 의뢰한 택배를 전동 카트로 운반하고 있다. CJ대한통운 제공
국내 최대 전통 시장인 부산광역시 부전마켓타운에서 한 실버택배원이 시장 상인들이 배송을 의뢰한 택배를 전동 카트로 운반하고 있다. CJ대한통운 제공
“자! 택배차 들어옵니다. 다들 파이팅합시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안으로 택배 박스를 가득 실은 택배차량이 들어오자 머리가 희끗한 노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차량이 멈추고 택배 기사가 차량에서 물건을 내려놓자 노인들이 택배 상자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각자 맡은 아파트 동별로 상자를 분류하기 위해서였다. 무거운 택배 상자를 들었다 놨다 해야 하는 노동 강도가 힘에 부칠 만도 한데 작업하는 내내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208동, 210동은 물량이 넘치는구먼. 동생들 오늘 일복이 터졌어.”

분류를 마친 이들은 자신의 이름표가 붙어 있는 친환경 전동 카트에 상품을 차례로 실은 후 카트를 끌고 배송을 시작했다. 각자 자신이 담당하는 동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일을 할수록 노하우도 생기고 주민들과도 친분을 쌓을 수 있다.

실버택배 배송원으로 근무하는 박재열 씨(70)는 “택배 작업을 하다 보니 나만의 노하우가 생겼다”며 “카트에 상자를 쌓을 때부터 1층에 갈 택배를 가장 아래에 놓고 꼭대기층에 갈 것을 가장 위에 놓은 뒤 꼭대기층부터 내려가면서 배달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도 익히게 됐다”고 말했다.

실버택배는 택배차량이 아파트 단지에 물건을 싣고 오면 인근에 사는 노인들이 물건을 동별로 분류하고 전동카트를 이용해 집 앞까지 배송하는 허브 앤드 스포크(Hub and Spoke)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CJ대한통운 택배터미널에서 택배차량에 특정 아파트 단지의 물량을 분류·적재하고, 택배기사가 아파트 단지 내 실버택배 거점까지 전달한다. 해당 거점의 실버 배송원들은 아파트 동별로 택배를 재분류하고, 친환경 전동 카트나 손수레 등을 이용해 각자 맡은 구역의 상품들을 집까지 배송하게 된다.

택배를 받는 고객들의 만족도 역시 높은 편이다. 실버택배로 물건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주부 김모 씨는 “항상 같은 분이 물건을 배달해 주시니 친숙하고 어르신이 직접 배달하시니 좀 더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이들 실버택배 배송원은 하루 4시간 정도 배송업무를 한다. 매일 일하는 것은 아니고 보통 월수금, 화목토로 조를 나눠 교대로 근무한다. 월급은 최저 시급을 적용해 한 달에 약 50만 원. 큰 금액은 아니지만 노년에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에 배송원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지자체와 협력 맺고 노인 일자리 문제 해결


실버택배는 한국사회의 평균 수명 증가와 이에 따른 시니어 세대의 재취업 문제, 노후 빈곤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 모델로 각광을 받고 있다. CJ대한통운은 2013년 보건복지부와 ‘시니어 일자리 창출 MOU’를 체결한 후 본격적으로 실버택배 사업을 시작했다.

CJ대한통운의 실버택배는 기업, 시군구 자치단체,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삼각 협업체제를 이루어 시니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CJ대한통운은 택배 물량 공급과 장비 제공 및 운영을 맡고, 지자체는 행정적·예산적 지원을,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시니어 인력 수급과 교육 등을 담당한다. 기업 활동으로 거둔 수익으로 자체 운영비와 인건비를 충당하는 선순환, 지속가능형 사업모델이라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실버택배는 부산 동구 좌현동에 위치한 거점에서 최초로 시작했다. 특히 CJ대한통운이 중소기업과 손잡고 개발한 친환경 전동 카트가 실버택배 모델을 가능케 한 일등 공신이다. 전동 카트 덕분에 노인들도 무거운 택배 상자를 큰 어려움 없이 옮길 수 있게 됐고 실버택배 서비스도 순조롭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실버택배 사업이 순항했던 것은 아니다. 시작 당시, 지역 주민들 가운데 택배원을 모집해보려 했지만 안정적으로 인력을 수급하기가 어려웠다. 일단 노인을 위한 일자리라는 개념이 잘 자리잡지 못했던 탓에 주민들이 생소해했고 택배 업무 자체에 대한 인식 때문인지 실버택배 배송원이 되겠다고 지원하는 시니어들이 많지 않았다. 또 지원자가 있더라도 이들 실버 인력을 교육 및 관리하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전문기관과의 협의와 교류에 힘쓴 결과 노인 일자리 전담 수행기관인 시니어클럽과 손을 잡을 수 있었다.

또한 보다 전문적인 노인인력 관리를 위해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협조도 구했다. 노인인력의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는 ‘고령자 친화기업’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된 것이다. 이에 CJ대한통운은 2013년 6월 고령자 친화기업인 ㈜실버종합물류를 설립했다.

㈜실버종합물류가 설립되고 기업·지방자치단체·국가기관이 삼각 협업체제를 구축하게 되면서 실버택배 사업은 성장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부산에서 시범지역 4개로 시작한 거점은 현재 서울, 부산, 경남 등 전국 각지에 150개로 늘어났고, 참여 인력 역시 41명에서 1100여 명으로 늘었다.

실버택배가 점차 활성화되면서 시니어 일자리 창출에 관심을 가져왔던 지방자치단체들의 문의가 쇄도했다. CJ대한통운의 고령자 친화기업을 통한 선순환형, 지속가능 사업모델은 그러한 자치단체들에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서울, 부산, 인천, 경기 파주시를 비롯한 지자체는 물론 SH공사, 국내 최대 노인단체인 대한노인회와 업무협약을 맺음으로써 전국 지역 확대의 교두보를 확보하기도 했다.

주민에게 택배를 전달하고 있는 실버택배원.
주민에게 택배를 전달하고 있는 실버택배원.



CJ대한통운의 실버택배는 기업과 사회가 동반성장할 수 있는 대표 사례로 자리매김하며 대내외적으로 큰 조명을 받고 있다. 2015년에 이어 올해에도 공유가치창출 효과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4회 CSV포터상 효과성 부문에서 수상했으며, 세계적 경제전문지 포천이 최근 발표한 ‘세상을 바꾸는 혁신기업(Change the World)’에 국내 기업 최초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기대 수명’을 주제로 한 리포트에서 실버택배 모델을 한국의 대표적 노인 일자리 창출 사례로 소개했으며, 유엔 산하 전문 기구인 UNGC가 발간하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사례집에 수록되기도 했다.

CJ대한통운은 성공적인 실버택배 CSV 모델을 기반으로 서울 노원구립 장애인 일자리센터와 함께 발달장애인 택배 사업을 시범적으로 진행 중이다. 서울시와 협력해 센터 내 택배 거점을 마련하면서 택배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됐다. CJ대한통운은 또한 택배 서비스에 수반되는 물류컨설팅, 영업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 서울시와 ‘발달장애인 일자리 확대를 위한 택배업무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민관협력을 통해 고안한 실버택배 모델은 양질의 노인 일자리를 창출하고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등 고령사회 대응에 필요한 실질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며 “앞으로 실버택배 모델을 발달장애인과 저소득층 등 사회적 취약 계층까지 확대해 지속적으로 동반성장을 도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실버택배#택배 박스#노인 일자리#㈜실버종합물류#cj대한통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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