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ECH]“월급보다 삶의 질”…기업에 ‘워라밸’ 바람이 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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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는 조직 문화

SK이노베이션은 에너지·화학 업계에서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올해 2월에는 기업 광고 제작을 한 터키 아티스트 가립 아이(Garip Ay)를 초청해 터키 전통예술인 에브루(Ebru) 기법 시연회를 열었다. 이 행사에 참여한 취업준비생들이 SK이노베이션 광고 및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SK이노베이션은 에너지·화학 업계에서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올해 2월에는 기업 광고 제작을 한 터키 아티스트 가립 아이(Garip Ay)를 초청해 터키 전통예술인 에브루(Ebru) 기법 시연회를 열었다. 이 행사에 참여한 취업준비생들이 SK이노베이션 광고 및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

취업준비생 및 직장인 사이에서 최근 가장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단어다. 월급보다 ‘일과 삶의 균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회사의 가축처럼 일하는 직장인을 뜻하는 ‘사축’, 하루가 멀다 하고 야근을 반복하는 ‘프로야근러’ 등 직장인의 삶을 자조(自嘲)하는 표현이 늘어가는 만큼 반대로 일(월급)보다 삶의 질을 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인재 확보를 위해 각 기업들도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조직 내 수평적 문화 확산을 위해 직급 체계를 개편하거나 대면보고나 회의를 최소화해 업무 효율을 높이기도 한다. 또 특정 요일에는 캐주얼 복장으로 출근하게 하고, 조직 내 불만을 듣는 채널도 확장하고 있다.

이 같은 트렌드는 조직구성원이 많아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호하는 대기업, 상대적으로 보수적 분위기가 강하다고 알려진 에너지·화학 산업 분야, 밤샘작업이 많은 정보기술(IT) 업계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워라밸이란 키워드가 국내 모든 기업에게 ‘숙제’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조직문화 개선이 혁신의 시작

SK이노베이션 김준 사장은 15일 사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최고경영자(CEO) 및 임직원의 시간 관리를 위해 모든 업무를 이메일로 보고받기로 했다. 꼭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만 대면 보고를 받겠다고 약속했다. 관습적인 절차를 없애겠다는 뜻이다.

김 사장의 이번 결정은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전사적으로 품의서·통보서를 폐지한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4월 품의서·통보서를 폐지하고 모든 의사소통을 이메일을 통해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CEO 대면 보고나 품의서·통보서 작성과 같이 관습적인 업무 절차를 폐지하고, 이들을 이메일 보고로 대체하며 업무 속도가 눈에 띄게 향상됐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또 회사 구성원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는 문제들에 대해 답을 내려주는 ‘애정통’이란 사내게시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애정통이란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통(通)’을 뜻한다. 조직 내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판단하기 애매한 상황’들에 대해서 전 구성원이 함께 이야기하고 그 나름의 행동 기준을 정하기 위해서 기획됐다.

애정통 온라인 게시판은 연중, 수시, 익명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임원 분은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시키셨습니다. 저는 스테이크를 시켜도 될까요?’라는 질문이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며 “규정은 아니나 ‘사회적 통념’으로 여겨지던 부분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김 사장은 ‘일하기 좋은 기업’을 만들기 위해 △당당한 소통 △워킹맘을 위한 가족친화경영 △워라밸을 전사적인 조직문화 개선의 핵심 키워드로 정했다. 취임 이후 매월 한두 차례 사내 구성원들과 점심 또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고충도 듣고 있다. 이 자리에서는 구성원들의 가정이나 업무 외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도 오간다. 김 사장은 이때 들은 이야기들을 직접 실행에 옮겨 사내 문화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김 사장은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실행동력도 떨어진다. 당당하게 많은 생각을 하고 표현해야 이런 과정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고 가치도 높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젊은층에서부터 시작된 워라밸 중시 문화가 전사적인 분위기를 바꿔놓고 있다. 절대적인 근무 시간의 증가가 아닌 업무 능률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삼성SDI 구미사업장 전자재료사업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주임은 2010년 에너지관리기능사 자격증을 시작으로 위험물기능장, 가스기능장, 배관기능장 등 5년간 10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삼성SDI 제공
삼성SDI 구미사업장 전자재료사업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주임은 2010년 에너지관리기능사 자격증을 시작으로 위험물기능장, 가스기능장, 배관기능장 등 5년간 10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삼성SDI 제공
일과 배움을 동시에

삼성SDI는 2013년부터 ‘삼성SDI 기술 마이스터’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임직원들의 업무 전문성을 높이고 자발적인 학습문화를 정착하기 위해서 시작한 제도다. 삼성SDI 관계자는 “취업준비생이나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일과 배움을 병행하고 싶어 하는 요구가 커 이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시작한 제도”라고 말했다. 이른바 ‘샐러던트(샐러리맨+스튜던트의 합성어)’ 트렌드다.

2013년 구미사업장에 처음 도입한 ‘기술 마이스터’ 제도는 이미 조직 내에서 호응이 좋다. 지난해 말까지 총 36명의 기술 마이스터가 탄생했고, 올해는 상반기(1∼6월)에만 17명이 새롭게 기술 마이스터로 등재됐다. 울산, 청주, 천안 등 다른 사업장으로도 기술 마이스터 제도가 확산되고 있다.

삼성SDI는 기능장 3개 혹은 기능장 2개, 기사 1개를 취득한 임직원에게 ‘기술 마이스터’라는 명칭을 수여한다. 기술 마이스터가 되면 자격수당과 인사가점이 주어지고, 기술 마이스터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조직 내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현재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는 ‘예비 마이스터’는 구미사업장만 해도 150명이 넘는다.

삼성SDI 전영현 사장은 “본인에게는 자기계발의 기회, 회사로서는 학습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술 마이스터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제도”라고 말했다.

복장은 편하게, 직급은 단순화

LG그룹에서는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이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조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CEO에 오른 후 월요일을 ‘회의 없는 날’로 정했다. 또 금요일은 자유로운 복장으로 근무하는 ‘캐주얼 데이’로 운영하고 있다. 수평적 조직문화 정착을 위해 7월부터는 부장, 차장, 과장, 대리, 사원으로 나뉘는 5단계 직급 체계를 책임, 선임, 사원의 3단계로 단순화하기로 했다.

조 부회장은 CEO에 오른 후 “일을 위한 일, 효율보단 형식을 갖춘 문화를 없애보자”고 꾸준히 강조해 왔다. ‘스마트 워킹 문화’ 정착을 위해 다양한 실험도 진행하고 있다. 박철용 LG전자 최고인사책임자(CHO)는 “LG전자 직원들이 창의적이고 수평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보다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car&tech#워라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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