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이 낳은 20대 우울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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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감기’ 우울증 이기자]<中> 경제위기에 속으로 우는 20代
어릴때 외환위기 부모 보고 자라 실직-불경기에 대한 트라우마 커
우울장애 비율 70대이상 이어 2위… 사회적 낙인 우려에 병원 기피

5일 경기 성남시 가천대 정신건강클리닉에서 김선아 가천대 정신건강클리닉 초빙교수가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의 심리 상담을 하고 있다. 방학 중인데도 이날 정신건강클리닉은 상담을 기다리는 학생들로 붐볐다. 성남=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5일 경기 성남시 가천대 정신건강클리닉에서 김선아 가천대 정신건강클리닉 초빙교수가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의 심리 상담을 하고 있다. 방학 중인데도 이날 정신건강클리닉은 상담을 기다리는 학생들로 붐볐다. 성남=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014년 기준 중증 이상의 우울증을 가진 20대는 70세 이상 노인 다음으로 많았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우울증을 진료받은 20대는 10명 중 1명에도 못 미쳤다. 극심한 취업난과 불투명한 미래로 인한 스트레스가 젊은층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지만 대다수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사회적 편견 탓에 병을 방치하고 있다. 연애, 내 집 마련, 꿈까지 포기해 ‘N포 세대’로 불리는 20대의 우울증 실태를 들여다봤다.
 

▼ 실업-불안한 미래에 가슴앓이 청춘… 진료는 10명중 1명 그쳐 ▼


“엄마는 내가 가족 행사에 빠지는 걸 더 좋아해요.”

수도권 한 대학의 심리상담센터를 찾은 A 씨(23·여)는 상담사에게 조심스럽게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A 씨에게 가족은 늘 피하고 싶은 존재다. 부모는 언제나 자신보다 공부를 잘하는 여동생과 비교했다. 졸업을 미루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는 더욱 초라해 보였다. A 씨는 주말 외식, 가족 여행에도 일부러 참석하지 않으며 가족과 담을 쌓았다. 그 사이 A 씨의 마음에는 우울과 분노가 쌓였다. A 씨는 우울증 진단검사 결과 총점 15점에 14점으로 우울증이 심각한 상태였으며 편집증과 조현병 증상까지 나타났다. A 씨는 현재 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매주 상담도 받고 있다.

○ 마음이 아픈 20대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유행어가 괜한 말이 아니었다. 20대의 우울장애 비율은 70대 이상 노인 다음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장애는 우울증이 중증 이상(우울증 선별도구인 PHQ-9 진단 결과 총점 27점 중 10점 이상)으로 전문가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보건복지부의 ‘2014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우울장애가 있는 20대는 8200명으로 70세 이상 노인(1만1200명) 다음으로 많았다. 60대가 7300명, 30대가 6400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50대(6000명)와 40대(3800명)는 연령 전체 평균(6700명)을 밑돌았다.

하지만 20대 중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우울증 진료를 받은 비율은 10명 중 1명에도 못 미쳤다. 16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함께 2014년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환자 58만4482명의 나이를 분석한 결과 20대 우울증 환자는 인구 10만 명당 706명으로 전체 연령 중 가장 적었다. 우울장애가 있는 20대(8200명) 10명 중 9명 이상이 병원에 가지 않고 마음앓이만 하고 있는 셈이다.

○ 20대 10명 중 9명 이상 우울증 방치

20대 우울증 환자 진료 비율이 낮은 것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간단한 진료나 상담마저 꺼리는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 진료를 받으면 취업에 불이익을 받거나 주변에 알려졌을 경우 사회생활을 하는 데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불안감에 병원을 찾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20대가 다른 연령에 비해 우울증을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라고 여기지 않거나 자신의 정신력을 탓하며 혼자 참고 이겨 내려는 성향이 큰 것도 진료를 기피하는 요인이다. 월평균 6만∼8만 원인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비용도 뚜렷한 소득이 없는 20대에게는 적잖은 부담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기피하는 경향은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20대 남성 중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환자 비율은 인구 10만 명당 539명으로 20대 여성(894명)의 60% 수준이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정신적 고통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기피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이에 대학가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 병의원 대신 대학이 운영하는 심리상담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 대학 심리상담센터에서는 무료로 전문 상담사들의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이달 5일 방문한 경기 성남시 가천대 정신건강클리닉은 방학 중인데도 심리 상담을 기다리는 학생들로 붐볐다. 가천대 정신건강클리닉은 다른 대학 심리상담센터와 달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상주하며 학생 상담뿐만 아니라 진료, 약 처방까지 해주고 있다. 대기실에서 만난 학생들은 자신이 상담을 받으러 온 사실이 알려질까 봐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했다. 모자를 깊게 눌러 쓴 학생도 있었다. 김선아 가천대 정신건강클리닉 초빙교수는 “하루 평균 방문 학생은 5명이며 많을 때는 10명이 넘기도 한다”며 “상담 인력이 부족해 지난해 상담사를 새로 충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 취업난과 경제 위기가 낳은 20대 우울증

전문가들은 20대 우울증이 많은 주된 이유로 취업난과 경제 위기를 꼽았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극심한 취업난과 생활고, 불투명한 미래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가 젊은층의 정신 건강을 크게 해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20대가 다른 연령에 비해 경제 위기 상황에 민감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의 젊은층은 유년 시절 부모님이 외환위기를 직접 겪은 걸 보고 자란 세대라 실직이나 불경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크다”며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취직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심리적 압박과 좌절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매 순간 스스로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인간관계도 단절되어 가는 등 현대인의 전반적인 특성도 우울증을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강도형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젊은층 우울증의 근본 원인은 자신의 가치를 상실한 데 있다”며 “사회적으로 이들이 자신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호경 kimhk@donga.com·조건희 기자
신다은 인턴기자 연세대 국제학부 4학년
#우울증#취업난#청년#외환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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