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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경제]‘주식시장의 꽃’ 애널리스트 왜 찬밥신세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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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경제]‘주식시장의 꽃’ 애널리스트 왜 찬밥신세 됐을까?

이건혁기자 입력 2016-04-16 03:00수정 2016-04-16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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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증권사 주식투자 분석가’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뜨거운 설전(舌戰)이 벌어졌다. 교보증권 애널리스트 A 씨가 투자분석 보고서를 통해 “면세점 사업이 실적으로 실현되기까지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하나투어 목표주가를 20만 원에서 11만 원으로 대폭 낮추고, 투자 의견을 한 단계 내린 것이 발단이었다.

하나투어 기업설명(IR) 담당자는 곧장 반격에 나섰다. 해당 애널리스트에게 “지표 해석에 오류가 있다”고 항의한 뒤 “기업 탐방과 정보 공개를 제한하겠다”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설전은 곧바로 기업과 증권사의 갈등, 상장사의 ‘갑질 논란’으로 비화했다.

이달 7일 국내 32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은 “증권사가 내는 보고서에 대해 상장사가 비판적 견해를 밝힐 수 있지만, 상장사에 대한 증권사의 합리적 비판도 가능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두 사례는 ‘기업에 더는 끌려다닐 수 없다’는 애널리스트들의 절박감과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일대 사건들이다. 한때 ‘주식시장의 꽃’, ‘억대 연봉 전문직의 대명사’로 불리며 선망의 대상이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이제 스스로를 ‘을(乙) 중의 을’이라고 부른다. 이들 대부분은 여전히 일반 회사원보다 고액 연봉을 받는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처우나 사회적 대우가 예전만 못하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들이 벌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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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몸값 금융위기로 된서리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주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고점을 찍었다. 당시에는 주가가 꾸준히 오르고 주식 거래가 크게 늘면서 애널리스트들을 찾는 증권사들이 넘쳐났다. 여의도에서는 ‘애널리스트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스타급 애널리스트 1명을 영입하려면 계약금으로 7억 원 정도는 줘야 한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터지자 상황은 급변했다. 주식 거래 대금이 줄고, 증권사 수익이 쪼그라들자 고액 연봉을 받는 애널리스트들이 구조조정 대상 1순위가 됐다. 15일 자본시장연구원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37개 증권사에서 일하는 애널리스트는 2010년 1286명에서 지난해 말 907명으로 5년 만에 30% 가까이 줄었다. 같은 기간 증권사 전체 직원은 12% 정도 감소에 그쳤다. 각 증권사마다 강도 높은 ‘애널리스트 솎아내기’가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수요가 줄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던 몸값은 기세가 꺾였다. 14년 경력의 팀장급 애널리스트 B 씨(44)는 “2008년 이후 연봉은 동결 혹은 5% 안팎으로 삭감됐다”고 말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때 직급은 올랐지만 수년 전 선배 애널리스트가 받았던 연봉보다 20% 정도 낮은 급여를 받는 셈이다. 구조조정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애널리스트들도 적지 않다. 애널리스트 C 씨(41)는 “회사가 고액 연봉 애널리스트를 상시 구조조정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다”며 “연봉이 높아도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인력이 줄어든 만큼 업무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2008년 애널리스트 한 명이 작성한 투자 보고서는 월평균 5건 정도였지만,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는 월평균 7건으로 늘었다. 여기에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고, IR 담당자나 기관투자가 등이 요청하는 업무까지 처리하다 보면 야근이 허다하다.

국내 중견 증권사의 과장급 애널리스트 D 씨(37)는 “기관투자가나 펀드매니저, 또는 IR 담당자들이 쏟아내는 ‘Request’(자료 수집이나 시장 조사 등 요청 사항)를 처리하는 데만 하루에 수시간이 걸린다”며 “평가와 실적에 영향을 끼치는 기업이나 기관, 펀드매니저들이 요구하면 거부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가 지난달에 처리한 요구사항만 대략 100건에 이른다. 한 달 평균 50여 회의 기업설명회까지 소화하다 보면 보고서 작성은 결국 야근을 통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잡일, ‘갑질’에 자부심은 바닥… 인공지능(AI) 등장에 긴장

애널리스트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게 과다한 업무나 쪼그라드는 연봉만은 아니다. 2012년 애널리스트를 그만두고 소규모 투자회사로 자리를 옮긴 E 씨(41)는 “애널리스트는 원래 야근과 술자리가 반복되는 직업이며, 연봉이 줄었다고 해도 비슷한 경력을 가진 직장인의 2배 가까운 연봉을 받는 고소득자”라고 소개한 뒤 “이보다는 일에 대한 만족도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애널리스트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고통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부터 미공개 정보 활용 등 시장질서 교란행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면서 애널리스트들이 기업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는 IR 부서로 사실상 제한됐다. 이에 기업들이 ‘탐방 중단, 정보 제공 거부’라는 카드를 내세워 애널리스트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국내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기업들이 이런 제도를 악의적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에는 국내 한 대형 유통업체 부사장이 신사업 전망을 부정적으로 작성한 애널리스트에게 협박성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애널리스트 F 씨(40)는 2년 전 한 제조업체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담은 투자 보고서를 작성했다가 몇 달간 이 회사 자료를 받지 못했다. 그는 IR 담당자에게 “자료를 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정보를 줘봤자 회사가 원하는 대로 보고서를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F 씨는 “평소 긍정적 전망을 내놓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만 골라 새로운 정보를 주는 방식으로 관리하는 회사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애널리스트들이 소신껏 “주식을 팔라”는 매도 의견 보고서를 작성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15일 금융정보회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증권사 33곳이 발간한 보고서 가운데 ‘매도(sell)’ 또는 ‘비중 축소’ 의견은 100건으로, 전체 3만1908건 중 0.3%에 그쳤다. 외국계 증권사가 지난해 내놓은 보고서 중 17.7%가 ‘매도’ 의견을 보인 것과 크게 비교된다. 문제는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국내 증권사 보고서 8328건 가운데 ‘매도’는 1건이었고, ‘비중 축소’는 26건에 불과했다.

애널리스트 인기도 예전만 못하다. 최근 증권사 리서치센터마다 보조연구원(리서치 어시스턴트·RA)조차 구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대형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2014년 RA로 3명을 뽑았는데 모두 RA를 그만뒀다. 1명은 아예 회사를 퇴직했고, 2명은 리서치와 상관없는 부서로 옮겼다. 중견 증권사에서 RA로 2년째 생활하고 있는 G 씨(31)는 “억대 연봉은 매력적이지만, 살인적인 업무 강도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안고 산다”고 말했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로보어드바이저의 등장은 큰 악재다.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로 애널리스트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증권사 골드만삭스는 애널리스트가 40시간 넘게 걸리는 일을 단 몇 분 내에 처리해 주는 금융 분석 프로그램 ‘켄쇼’ 등을 도입했다.

실력 키워야 살아남는다

증권가의 ‘애널리스트 전성시대’가 저물고 있다. 치열한 경쟁과 구조조정 압력,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직업적 자부심을 잃어 가는 애널리스트가 적지 않다. 동아일보DB
애널리스트들의 위상 추락은 자초한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얼마 전 논란이 된 교보증권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는 하나투어 측이 주장한 대로 수치 해석상 오류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부분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애널리스트를 상대로 ‘갑질’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은 기업 IR 담당자들도 애널리스트의 실력이 예전만 못하다고 주장한다. 한 상장사의 IR 담당인 H 과장(34)은 “회사가 내놓은 의견과 전망을 마치 자신의 의견인 양 가져다가 베끼거나, 회사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나 이해조차 안 된 자료를 내놓는 증권사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장사의 IR 담당 I 임원(53)은 “일부 애널리스트는 보고서 수준이 소규모 투자자문사가 내놓는 투자 의견이나 온라인 투자자 카페 등에서 나온 글보다 못한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애널리스트들 스스로도 ‘실력 저하’에 대한 지적에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다. 적은 인력으로 다양한 분야의 여러 종목을 한꺼번에 맡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애널리스트 J 씨(41)는 “유통, 소비재 담당 애널리스트가 엔터테인먼트와 바이오까지 동시에 맡는 경우도 있다”며 “깊이 있는 분석을 할 만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모자라게 된다”고 실토했다. 특히 최근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는 바이오, 헬스케어, 엔터테인먼트 등은 그동안 애널리스트들이 소홀했던 분야로 전문성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회사가 요구한 업무량에 맞추기 위해 기계적으로 찍어내는 보고서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기업 실적이 나오기 직전 예상 보고서 1건, 나온 직후 결과 보고서 1건 등 동일한 자료를 놓고 재탕하는 식으로 보고서 할당량을 채우는 식이다.

이런 문제들의 해결책에 대해 애널리스트들은 냉철한 분석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투자 의견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기업과 투자자의 신뢰를 되찾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업들도 투자와 관련된 정보 제공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기업이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애널리스트의 활동이 위축되거나 불법적으로 정보를 얻는 일이 벌어질 수 있고, 이는 투자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 가치도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자본시장에서 투자의 길을 밝히는 애널리스트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라며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면 애널리스트는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증권사도 간판 애널리스트 육성을 위한 투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애널리스트들이 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고 보고서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는 지적도 적잖다. 김규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매도 의견 보고서를 쓰려면 해당 기업을 제대로 알고 회사 측과의 논리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만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며 “지금의 업무량과 인력 구조로는 제대로 된 보고서를 작성하기 힘든 만큼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애널리스트#금융위기#인공지능#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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