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과 삶]‘애견 마니아’ 모나미 송하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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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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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종좋은 개 찾아 세계 어디든 가죠 문구도 새 품종 개발해야 살아남아”

송하경 모나미 대표는 업무가 끝난 후 틈틈이 옥상의 견사에서 개들을 돌본다. 송 대표는 “아무런 조건 없이 주인을 충직하게 따르는 점에서 개들이 좋다”고 말했다. 사진은 송 대표가 가장 아끼는 개 ‘포커스’를 훈련시키는 모습.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송하경 모나미 대표는 업무가 끝난 후 틈틈이 옥상의 견사에서 개들을 돌본다. 송 대표는 “아무런 조건 없이 주인을 충직하게 따르는 점에서 개들이 좋다”고 말했다. 사진은 송 대표가 가장 아끼는 개 ‘포커스’를 훈련시키는 모습.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모나미 본사는 좀 유별난 곳이다. 지난달 23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의 모나미 본사에 다가가자 멀리서부터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왕자크레파스, ‘국민볼펜’ 153을 만드는 우리나라의 대표 문구회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7층 사장 집무실로 올라갔다. 여기도 마찬가지. 집무실 한쪽에는 도자기로 만든 셰퍼드 조각상이 있고 책상에는 천으로 만든 개 인형이 놓여 있었다. 벽에는 잘생긴 복서 한 마리가 그려진 그림이 있고 그 옆에는 웬 꼬마가 자기 몸집보다 큰 셰퍼드를 안고 찍은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다.

“제가 세 살 때 아버지가 키우시던 셰퍼드랑 찍은 사진입니다.” 모나미가 문구회사가 아니라 애견회사였던가 헷갈릴 때쯤 동물 모양이 그려진 넥타이를 맨 송하경 대표(52)가 말을 걸어왔다.

○ 모나미 본사 옥상에는 견사가 있다?

직접 개 훈련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송 대표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를 따라 올라간 옥상에는 복서와 로트와이어, 셰퍼드 등 사람 몸집만 한 개들이 10마리 넘게 있었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던 개 짖는 소리의 정체는 옥상 견사였다.

“리비어!(짖어)” 송 대표가 크게 소리치자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다섯 살 로트와이어종 ‘포커스’가 명령에 따라 맹렬하게 짖기 시작했다. 포커스는 송 대표가 가장 아끼는 개. 도그쇼 7개국 챔피언이고 현재 세계적으로 로트와이어종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잘생겼다.

“이놈 참 잘 키웠죠? 저는 단순히 개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마니아입니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개도 마찬가지죠.”

실제 모나미는 경기 안성시 죽산면에 개 전문 훈련소인 ‘모나미랜드’를 운영한다. 송 대표가 직접 경비견을 훈련시키고 품종 개량을 하기 위해 1999년에 만들었는데 현재 70마리가 넘는 개들이 있다. 가까이 갈 엄두가 안 날 만큼 무서운 맹견이 대부분이다. 이달 중순에 안성시 일죽면에 모나미 애견훈련소를 하나 더 만들 예정이다.

송 대표는 1년에 한 번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규모의 셰퍼드 훈련 경기대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기르던 셰퍼드를 데리고 직접 참가한 적도 두 번이나 된다. 좋은 품종의 개가 있는 곳이라면 스페인이든 독일이든 가리지 않고 찾아간다. 재계의 소문난 애견가다웠다.

송 대표는 동물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다. 20년 전 눈이 펑펑 오던 어느 날, 키우던 고양이가 집 앞 마당에 배를 깔고 누워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집에서 함께 기르던 개가 다리에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자 고양이가 몸으로 보듬고 있었던 것이었다. “고양이 녀석이 개를 지켜주고 있었던 겁니다. 그때부터 짐승들이 말은 못해도 참 충직하고 따뜻한 존재라는 걸 느꼈습니다.” 송 대표 인생에 문구뿐만 아니라 애견 사업이 끼어들게 된 날이었다.

○ 미술작품과 개의 차이점

“미술작품과 개 브리딩(breeding·사육)의 차이를 아세요?” 송 대표가 말하는 정답은 이랬다. 미술품은 가만히 둬도 시간이 흐르면서 값어치가 오를 수 있지만 개는 끊임없이 공부를 하며 키워야만 좋은 개가 된다는 것.

송 대표는 세계적인 개 훈련사를 초청해 모나미랜드 훈련사들과 함께 3박 4일 세미나를 열기도 한다. 외국 유명 견사에서는 최근 어떤 개들끼리 교배시켜 새로운 품종의 새끼를 낳게 하는지 꼼꼼히 공부한다.

송 대표의 이런 파고드는 성격은 문구 신제품 개발에서도 엿볼 수 있다. 최근 모나미는 중고교생들 사이에서 ‘3초 펜’으로 불리는 신제품을 내놨다. ‘슈퍼겔Q’라는 제품인데 필기한 지 3초 만에 잉크가 말라 쉽게 번지지 않는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다. 부드럽고 매끈한 교과서나 노트에 필기하기 좋다. 3초 펜은 송 대표의 고집으로 일일이 중고교생을 찾아다니며 소비자 조사를 한 끝에 만든 제품. 개발기간이 보통 펜의 4배에 이르는 1년이나 됐다.

○ 유명한 견사의 비결

요즘처럼 컴퓨터 문서 작성이 많은 시대에 문구산업은 사양산업이 아니냐고 송 대표에게 물었더니 “셰퍼드가 인기가 있다고 백날 셰퍼드만 만들어내지 않는다”며 “세계적인 견사는 다양한 개들을 교배시켜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낸다”는 답이 돌아왔다. 앞서가는 견사는 변화를 통해 애견가들의 트렌드를 이끈다는 것이다.

문구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모나미는 유일한 생산라인이었던 안산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그 대신 유통브랜드인 오피스플러스와 사무용품 편의점 모나미스테이션 등 유통 분야를 크게 강화했다. 그 덕분에 모나미의 매출은 상승세다. 2008년 2052억 원의 매출이 2009년 2176억 원, 2010년 2197억 원으로 꾸준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송 대표는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문구의 가치는 줄지 않는다”고 말했다. “회장의 기업 인수합병 문서도, 각국 정상들의 협정문서도 반드시 펜으로 서명해야만 효력을 가집니다. 아무리 컴퓨터로 문서를 잘 만들어도 그것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결국 펜이 아닐까요.”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 송하경 대표는


―1959년생
―1984년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졸업, 모나미 입사
―1986년 미국 로체스터대 경영대학원 졸업
―1989년 모나미 상무
―1993년∼ 모나미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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