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천봉쇄 대신 ‘거품’제거… 시장은 ‘양성화’로 보고 다시 들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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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가상화폐 긴급대책 발표]실명제 강화-투자수익 과세 추진

이곳이 가상화폐 채굴장 13일 경기 화성시 마도면 가상화폐 채굴전문업체 알코(ALCO)의 채굴사업장에서
 직원이 작업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이곳에선 여러 개의 그래픽카드를 연결한 채굴기(일종의 컴퓨터)들이 끊임없이 복잡한 연산을 
푼다. 연산을 풀 때마다 일정량의 가상화폐를 얻을 수 있다. 화성=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곳이 가상화폐 채굴장 13일 경기 화성시 마도면 가상화폐 채굴전문업체 알코(ALCO)의 채굴사업장에서 직원이 작업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이곳에선 여러 개의 그래픽카드를 연결한 채굴기(일종의 컴퓨터)들이 끊임없이 복잡한 연산을 푼다. 연산을 풀 때마다 일정량의 가상화폐를 얻을 수 있다. 화성=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정부가 13일 내놓은 긴급 대책에 따라 앞으로 가상통화 투자 열풍이 조금이라도 진정될지는 미지수다. 가상통화의 실명제가 강화되고 투자수익에 대한 과세가 시작되면 지금처럼 단기차익을 위한 무리한 투자는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하지만 정부가 ‘거래소 전면 폐쇄’ 등 최악의 카드를 접고 사실상 가상통화를 허용한 것이라는 해석에 따라 오히려 투자가 계속 과열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이날 정부 대책을 담은 보도자료가 온라인에 사전 유출됨에 따라 논란이 생겼다. 오전 중에는 가상통화 규제 소식에 매도 물량이 많았지만 유출된 자료에서는 대책의 강도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일부 매수세가 유입됐다. 정부 당국자는 “일단 실무선에서 유출된 것 같지만 아직은 뚜렷한 피해가 확인되지 않아 구체적인 경위는 아직 파악하지 않은 단계”라고 말했다.

○ “투기 수요 서서히 잠재우려는 의도”

정부가 이날 발표한 대책을 살펴보면 가상통화 투자를 원천 봉쇄하지는 않되 시장의 ‘버블(거품)’을 제거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정부는 ‘가상통화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고 △미성년자 외국인 계좌개설 금지 △은행 본인확인 의무 강화 △투자수익 과세 검토 △금융기관의 가상통화 투자 금지 등을 뼈대로 한 대책을 발표했다.

우선 가상통화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신규 투자자가 시장에 한꺼번에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은행이 거래자금 입출금 과정에서 이용자 본인 확인을 철저히 하도록 했다. 은행들의 본인 확인 절차가 강화되면 향후 가상통화 매매에 걸리는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입출금에 걸리는 시간이 짧다 보니 일반 투자자는 분초 단위로 시세차익을 노리는 ‘단타’ 투자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가상통화 투자 수익을 과세하는 것에 대해서는 투자자들의 반응이 엇갈린다. “가상통화 투자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 ‘비과세’가 사라진다”며 아쉬워하는 측도 있지만 “수익에 세금을 물린다는 건 정부가 가상통화를 불법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해석도 만만치 않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규 가입을 최대한 억제하고 전체적으로 거래 과정을 불편하게 해 투자 수요를 잠재우려는 의도가 보인다”며 “과세를 한다는 이유로 이용자들의 거래를 전면 허용한 것처럼 생각하는 건 잘못된 해석”이라고 말했다.

○ 금융사 통한 우회 제재 분석도

정부는 가상통화 투자로 반사이익을 보는 거래소들도 집중 관리하기로 했다. 앞으로 거래소를 운영하기 위해선 고객자산을 별도로 안전한 곳에 예치하고, 가상통화의 매도매수 호가와 주문량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했다. 빗썸 등 대형 거래소는 하루 평균 10억 원 이상을 가상통화 수수료로 벌어들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중은행들도 잇달아 가상계좌 발급을 중단하면서 거래소를 압박하고 있다. 우리은행과 KDB산업은행이 올해 안에 가상통화 거래를 위한 가상계좌를 폐쇄하기로 했고 13일 신한은행도 가상계좌 추가 개설을 중단했다. 은행이 가상계좌를 내주지 않으면 투자자들은 거래소에 입출금을 할 수 없어 사실상 국내 투자자의 가상통화 투자는 불가능해진다. 지금은 NH농협은행 한 곳만 가상계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은행을 우회적으로 압박해 가상통화 투자를 규제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거래 전면 제한’ 같은 초강수를 둬 가상통화 투자를 막는다면 블록체인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의 발전을 정부가 나서서 막는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최근 거래소와 가상계좌 발급 계약을 끊은 한 금융사 관계자는 “정부가 계속 가상통화 투자를 규제한다고 하는 와중에 은행이 계속 거래소에 가상계좌를 내줄 수는 없다”고 귀띔했다. 정부 관계자도 “제도권 금융이 아닌 영역에 대해 정부가 은행에 공식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순 없다”며 “다만 나중에 가상통화로 인한 범죄 등이 발생할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은행들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기훈 홍익대 교수는 “오늘 발표된 정부 대책만으로는 시장에 브레이크를 걸기에 부족해 보인다”며 “한국 투자자들이 정부 규제가 생각보다 세지 않다고 생각하면 국내에서 가상통화 수요가 늘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해외 시장보다 가상통화 가격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병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전 세계 가상화폐 거래소가 7000개가 넘는 만큼 어차피 젊은 세대는 국내에서 막혀도 해외 거래소를 통해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다”며 “블록체인을 통해 4차 산업혁명에 올라타려면 가상통화를 미국처럼 제도권으로 끌어들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충현 balgun@donga.com·김성모 기자
#가상화폐#긴급대책#비트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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