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숙련·저소득 ‘고졸의 덫’]<上> 제자리 맴맴… 힘겨운 ‘미래 찾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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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卒은 아직도 ‘소모품’…이곳저곳 공장 떠돌다 나이만 먹어

김복남 씨(26)는 20대 화물차 운전사다. 2005년 고교 졸업 후 세 번째로 얻은 일자리다. 벌이가 나쁘진 않은데 일이 너무 고되다. 그는 “5년만 죽어라 일하고 돈을 모아 식당을 차릴 생각”이라고 말한다.

생각해 보면 그는 옮긴 직장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졸업 직후 지방의 한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2년 일하다 “수도권으로 가면 좀 낫겠지”란 막연한 기대감에 그만뒀다. 경기 수원에 있는 사출 공장에서 두 번째 일자리를 잡았다. 월급은 170만 원으로 전보다 12만 원 올랐지만 생활비가 더 들어 결과적으로 손해였다. 다른 직장을 알아봤지만 졸업한 지 몇 년 지난 고졸 신분에 갈 곳이 없었다. 결국 화물차 운전을 시작했다. 김 씨에게 ‘고졸로 산다는 것’은 “아무데서나 열심히 하면 굶어죽진 않아도 남들보다 훨씬 힘들게 일해야 하는 것”이다.

○ 같은 자리 맴돌아

고졸자들은 첫 직장을 쉽게 그만두는 편이다. 작업 환경, 일거리가 성에 차지 않고 나이가 어려 기회가 아직 많다고 생각해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고졸 출신들은 첫 직장을 그만둔 이유로 △적성에 맞지 않아서(18.3%) △보수가 적어서(11.1%) △근무조건이 나빠서(10.3%) 등을 들었다.

하지만 직장을 옮겨도 크게 나아지진 않았다. 50∼60%가 중소기업에서 다른 중소기업으로 이동했고,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옮기는 사례는 10% 남짓에 그쳤다. 직장을 옮기는 횟수가 많을수록 대기업 일자리를 지키기는 어려웠다. 대기업에서 대기업으로 가는 비율은 첫 번째 이직할 때는 26.8%였지만 네 번째 이직 시에는 17.0%로 줄었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옮기는 비율도 10% 안팎에 이르렀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신분 상승’을 하는 것 역시 직장을 옮길수록 더 어려워졌다. 첫 번째 이직할 때는 12.3%였지만 네 번째에는 7.8%로 줄었다. 임금은 50∼60%가 “올랐다”고 답변했지만 31∼36%는 “오히려 줄었다”고 했다.

○ 퇴직후 알바하며 생계 유지

이처럼 취업조건이 점점 열악해지는 까닭은 고졸 출신들이 주로 저(低)숙련 직종에 취업하기 때문이다. 일하면서 전문성이 쌓이면 이를 토대로 좀 더 안정적이고 임금이 높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고졸들은 조건이 더 열악한 곳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최윤아(가명·22) 씨는 실업계고 졸업을 앞두고 LG디스플레이 협력업체에 생산직으로 취업했지만 6개월 만에 그만뒀다. 기숙사에서 먹고 자며 하루 종일 일해도 월급이 120만 원 정도로 성에 차지 않았고, 단순조립 업무라 전문성을 쌓을 수도 없었다. 퇴사 후 그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음식점 등에서 잠깐씩 일하며 지냈다.

최 씨처럼 대부분의 고졸자는 제조업 전기전자 관련직(19.1%)과 도·소매업 영업·판매직(14.2%), 숙박·음식점업 서비스직(13.3%) 등 저숙련 직업에서 일자리를 잡는다. 이직해도 저숙련 직업을 선택하게 된다. 이직자 절반은 “옮긴 회사에서 먼저 했던 일과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전문성이 생길 리 없다.

○ 체계적 직업훈련 기회 제공해야

답답한 현실을 빠져나올 방법으로 대부분의 고졸자는 대학 진학, 생계형 자영업을 선택하게 된다. 이도저도 아니면 결혼하면서 직장생활을 그만두는 이도 많다.

K여자정보고 취업담당 교사는 “졸업을 앞둔 300명 중 대학 진학이 55%, 취업이 35%인데 취업한 아이 중 상당수가 1년 내 회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일자리를 잡고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니 아이들이 선생님을 찾아오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취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특성화고가 대학 진학의 통로로 변질돼 특성화고 졸업생의 71.1%가 취업 대신 진학을 선택한다는 통계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박동렬 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많은 인사담당자가 고졸 인력을 소모인력 정도로 보는 게 문제”라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시키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흥미를 갖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에서 지속적인 향상훈련을 통해 ‘고졸이라도 성장할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며 “대기업은 물론이고 1∼2년 앞을 내다보기 쉽지 않은 중소기업이라도 고졸 직원이 직업훈련을 체계적으로 하도록 기반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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