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들은 학생 절반 “창업하겠다” 진로 바꿔…처음엔 겁이 덜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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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8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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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KAIST 석좌교수 “한국의 스티브 잡스 키우는게 내 할 일”

처음부터 그를 존경했다.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사가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프로그래머로 변신하다니…. 그 독특한 삶의 궤적이 중학생의 마음을 매혹시켰다.

어른이 되고 기자가 된 뒤에는 존경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5년 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기자와 인터뷰를 한다는 사실에 긴장하고 상기된 얼굴을 하던 숙맥 같은 최고경영자(CEO)였다. 내 어린 시절의 영웅의 모습은 닳고 닳은 비즈니스 판의 냉혹한 승부사들과 달라도 한참 달랐다. 그 다름이 나를 더욱 매혹시켰다.

지금은 그를 조금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게 됐다. 5년 전만 해도 '안철수'라는 이름은 '기업가'였고 정보기술(IT) 업계의 '벤처 신화'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벤처업계에서 아는 사람들만 아는 골목대장이란 뜻이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뒤 그는 존경할 사람이 드문 이 시대에 존경을 받는 유명 인사가 돼 있었다. 그는 이제 골목대장이 아니라 사령관이다.

2007년 우연한 기회로 그의 삶에 대한 책을 쓰게 됐다. 내 첫 저서였다. 책으로 묶인 것을 읽고는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부끄러웠다. 그때 '안 박사'(안 교수, 안 의장 등은 영 어색해서 그렇게 부른다. 그도 좋다고 했다)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책은 머리로 낳은 자식입니다. 아무리 모자란 점이 있어도 결국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지난해에는 스티브 잡스에 대한 책을 썼다. 새 책에 서명을 해서 그에게 선물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안철수연구소 사무실로 찾아갔다.

마침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맞아준 안 박사에게 나는 그저 요즘 뭐하고 지내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몇 개 던졌다. 하지만 그는 현명한 답변을 길게 해줬다. 인터뷰를 하려고 만난 게 아니었는데, 대화를 끝내고 보니 인터뷰처럼 돼 버렸다.

우문현답을 독자들께 소개하고 싶었다. 그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므로 이 기사는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가 동아일보 독자 여러분께 보내는, 약간 늦게 도착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키우다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 벤처캐피탈리스트가 돼 후배 기업가를 돕겠다고 했다. 그런데 교수가 됐다. 좀 실망스럽다. 기업인을 키우는 걸 포기한 것인가.

"그때 벤처캐피탈리스트가 아니면 교육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교육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업인을 키우는 걸 포기한 건 아니다. 안철수연구소에서 '고슴도치플러스'라는 사내 벤처를 운영한다. 이 회사는 조직과 구성은 그냥 사내 팀인데 기존 업무에선 완전히 손을 떼고 다른 일을 한다. 고슴도치플러스의 모든 중요한 결정에 나도 함께 참여해 논의한다. 그동안 한국의 벤처기업인들이 실패의 경험을 배우지 않고 무조건 해보는 식으로 사업을 한 경우가 많다. 이런 방식은 성공률만 떨어뜨린다. 난 그런 의미에서 사내 벤처를 키우며 그들에게 내가 실패한 경험을 알려준다. 초기에 겪는 실수는 사실 책에서 배운 지식대로만 해도 겪을 필요 없는 사소한 게 대부분이다. 이론이 곧 현실에 적용되니까. 그런데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고 지레 생각하고 배운 지식과 반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걸 바로잡아주려는 것이다."

―벤처캐피탈리스트가 바로 그런 일을 하는 거라고 말했었는데….

"벤처캐피탈을 하려고 했더니 많은 분들께서 한국에는 벤처에 투자할 '돈'은 있는데 '투자할 벤처기업'이 없다고 하시더라. 기업이 없는데 돈만 있으면 어디에 투자하겠나. 그래서 벤처캐피탈보다 기업인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매주 한 번씩 내가 있는 대전(카이스트)과 서울(안철수연구소)을 연결해 고슴도치플러스와 화상회의를 한다. 두세 가지 사내 벤처를 더 만들려고 진행 중이다. 카이스트에서 기업가정신 과목을 담당한 것도 이런 이유다."

―카이스트 수업이 인기가 좋다고 들었다.

"그렇다. 나도 놀랐다. 아마도 토론식 수업과 다양한 방식 덕분일 거다. 전통적인 방식의 강의를 하는 교수님들과 내 강의가 차이가 좀 있으니까. 예를 들면 난 내 강의에서 꼭 스티브 잡스 애플 CEO의 스탠포드대 졸업식 축사를 들려준다.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고도 다시 복귀해 그 회사를 1위로 만드는 기업가정신에 대해 토론하는 식이다. 그랬더니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 가운데 절반이 갑자기 창업을 하겠다고 진로를 바꾸더라. 처음엔 겁도 났다. '내가 뭔데 저들의 인생을 바꾸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달리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방향을 진심으로 학생들에게 얘기했다. 그리고 내 학생들이 내 진심에 영향을 받아 변화해 준 것이다. 이건 고마워 할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난 내가 한국 사회가 더 좋은 사회로 바뀌려면 이렇게 했으면 한다는 생각을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그들이 그렇게 바뀐다면 한국 사회도 좋아질 거라 믿는다."

―안철수연구소에서 CLO(Chief Learning Officer)라는 직함도 갖고 있다던데.

"교재도 내가 만들고 강의도 내가 하는 일종의 사내대학이다. 모든 사원들을 다 불러 모아 1년에 한 번 3박4일 정도 집중 교육하는 코스다. 지난해 8월에는 '전략'을 주제로 사내대학을 열었다. 기업이 얘기하는 전략이란 건 일반인들이 쓰는 전략이란 말과 다른 개념인데 이걸 전혀 모르고 혼동해 사용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그래서 기본적인 전략 개념에 대해 강의했다. 2010년에는 마케팅을 다뤄볼 예정이다. 회사원이라면 알아야 할 기본 개념이니까."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전화가 왔다. 전화기를 호주머니에서 꺼내 전원을 껐는데 안 교수가 이를 보더니 한국과 미국의 비즈니스 방식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기자의 전화기는 애플의 '아이폰'이다.

"아이폰은 단순히 경쟁력 있는 외국 제품 하나가 들어온 게 아니라 한국의 비즈니스 문화가 미국의 비즈니스 문화와 정면충돌한 큰 사건이다. 내가 알고 배워왔던 미국의 비즈니스 문화는 수평 네트워크다(안철수 교수는 미국 유학 시절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에서 직접 일을 하기도 했다). 미국에선 작은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주변에 몰려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한다. 대기업은 이런 작은 기업들의 모험과 혁신에서 미래의 성장 동력을 찾고, 이들이 더 모험적이고 혁신적인 기술에 도전할 수 있도록 이들의 큰 고객이 되어준다. 이 과정에서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이 대기업이 되기도 한다."

―한국의 비즈니스 문화와 많이 다른 것 같다.

"한국의 비즈니스 문화는 수직적 문화다. 대기업이 하청기업을 거느리고 하청기업에서 가치를 쥐어짜 자신들의 부를 축적한다. 그동안의 압축 성장에는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론 어려울 것 같다. 그동안 아이폰이 들어올 수 없게 막고 또 막았던 데는 이유가 있다. 소프트웨어 업체의 살 길을 만들어주며 더 큰 돈을 벌어들이는 애플과 같은 사업 모델을 국내 대기업은 못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문화가 갑자기 '쾅' 하고 정면충돌해 버렸다. 결국 이건 한국 기업에게 엄청난 충격이 될 것이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성공한 건 수많은 게임업체가 소니를 위해,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게임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한국엔 이런 모델이 없고 뭐든 한국 대기업이 다 하려 한다. 그렇게 해서 성공하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기업에서 의사 결정하는 높은 분들이 워낙 수직 구조에만 익숙해서 수평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실까 걱정이다."

● 계속 기업인을 키울 것

―활동이 많다보니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요새 부쩍 그런 말 많지만 절대 아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걱정이다. 지금까지는 선거 시즌에 외국에 나갈 일이 많아서 핑계를 댈 수 있었다. 그런데 2010년 6월은 학기 중이라 외국도 못 나가는데 하필 딱 선거 시즌이다. 어떻게 정치 입문 권유를 뿌리쳐야 권하시는 분들 마음이 상하지 않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그래도 특정 정당을 편들어 본 적은 없다. 지금 대통령직속위원회 활동과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함께 하는 걸 보라. 난 정치적으로 편이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후 책은 안 쓰나.

"새 책을 쓰고 있다. 5년 만이다. 그런데 바쁘다보니 진도가 도무지 나가질 않는다. 하지만 조만간 마무리할 계획이다."

―TV 프로그램인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사실이 화제가 됐다.

"그게 참 재미있다. 나를 아는 분들이 방송을 보고 나서 늘 하던 얘기를 지겹게 또 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게 인기다. 내가 깨달은 건 그동안 나나 내 주위 사람들이 IT 업계라는 좁은 우물 안에만 갇혀 있었던 거다."

―(기업인으로서) 좋은 역할을 하셨다는 평가가 많다.

"기업인의 역할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요즘 미국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하면서 강조하는 분야가 커뮤니케이션이다. 기업 내부와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지만 사회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역할도 늘고 있다. 나도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기업인들도 그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 주셨으면 싶다."

약속했던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다음 약속이 있다는데 얘기가 그치질 않았다. 옆에서 안철수연구소 박근우 홍보팀장이 눈짓을 했다. 나도 다른 사람의 시간을 뺏는 걸 알고 있고 안 박사 자신도 다음 약속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쉽지만 악수를 하고 일어섰다.

안 박사는 '무릎팍 도사' 촬영 때에도 한 시간 방영 분량을 찍기 위해 네 시간을 쉼 없이 녹화했다고 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게 인생의 전부인. 이렇게 최선을 다한 순간들이 쌓여 의사가 되고, 프로그래머가 되고, 사장이 되고, 교수가 됐다.

그 모든 게 그냥 '안철수'였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안철수는::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고 의대생 시절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백신을 만들어 '컴퓨터 의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군의관으로 입대하는 날 새벽까지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다가 가족들에게 군대에 간다는 말조차 못하고 입대한 일도 있다. 1995년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를 세우고 기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경영에 대해 전혀 몰랐던 터라 미국 유학을 떠나 낮에는 경영학을 공부하고 밤에는 e메일로 회사 일을 챙겼다. 2005년 안철수연구소가 자리를 잡자 성공한 벤처기업가의 자리를 내던지고 다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2008년 한국에 돌아온 뒤 KAIST 석좌교수를 맡아 학생들에게 기업가정신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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