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명의로 뭉칫돈 넣어둔 부자들 은행에 찾아와 부랴부랴 현금 인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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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거래 금지 D-3… 은행 PB센터 문의전화 빗발
금융실명법 개정안 국무회의 의결



불법 차명거래를 금지하는 내용의 금융실명거래법 개정안 시행(29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은행 창구 등 일선 현장에서는 이로 인한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 지금까지 세금 회피를 위해 돈을 분산해 가족 명의 계좌에 넣어뒀던 고액 자산가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부랴부랴 현금을 인출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개정안 시행을 코앞에 두고도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은 금융당국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혼란이 가중되자 정부는 25일 국무회의에서 실명법 개정안을 의결한 뒤 뒤늦게 Q&A 자료를 만들어 공개했다.

은행권에 따르면 최근 시중은행 PB센터와 세무팀을 통해 차명거래에 관한 일반 고객 및 자산가의 문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한 시중은행 세무팀 관계자는 “금융실명법 때문에 요즘 전화통에 불이 날 지경”이라며 “수억 원을 자녀 명의로 넣어둔 고액 자산가들의 경우 29일 이전에 도로 찾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만기가 올 때까지 보유해도 되는지 가장 많이 묻는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원종훈 WM사업부 세무팀장은 “경제력이 있는 사람은 세금 회피를 위해, 서민들은 자산 증식을 위해 차명계좌를 많이 이용해온 만큼 이 문제는 소득계층을 막론하고 모든 국민의 관심사”라고 전했다.

차명계좌로 자산을 굴리는 게 사실상 어렵게 되자 자산가들은 은행에서 돈을 빼면서 다른 비과세상품 투자나 현금 보유 쪽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실제 일선 시중은행의 10억 원 이상 고액예금 총액이 하반기 들어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일선 상담창구에서는 어디까지가 불법이고, 어느 부분은 합법인지에 대해 정부가 일찌감치 명확한 유권해석을 내리지 않은 것에 대한 성토도 이어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PB는 “법 시행이 일주일도 안 남은 상황에서 분명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보니 고객이 뭘 물어봐도 제대로 알려줄 수가 없었다”며 “고객이 우리도 알 수 없는 부분을 물어보면 일단 기다려봐야 한다는 대답만 되풀이했다”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채권자의 강제집행 회피 △불법 도박자금 은닉 △금융소득종합과세 또는 증여세 납부 회피 등을 위해 차명계좌에 예금하는 행위는 법으로 완전히 금지된다. 또 불법 차명거래 사실을 알면서 이름을 빌려준 명의대여자도 공범으로 처벌되고 이에 연루된 금융사 직원도 책임을 피하기 힘들어진다. 만약 은행 직원이 불법 차명거래를 알선하거나 중개하면 최대 300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또 앞으로는 고객이 계좌를 트고 있지 않은 은행에서도 증권사 계좌를 개설할 수 있게 된다. 이번 금융실명법 개정안은 금융사들이 고객의 실명 확인을 다른 금융회사에도 맡길 수 있도록 했다. 은행은 그동안 해당 은행에 계좌가 있는 고객에 대해서만 증권사의 실명 확인 업무를 대행해 왔다. 하지만 개정안이 적용되면 해당 은행 계좌가 없어도 실명 확인이 가능해지고 증권사 계좌를 틀 수 있게 된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가족명의#금융실명법 개정안#차명거래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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