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엔 문턱 너무 높은 ‘사잇돌 대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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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銀서 돈 빌렸거나 2년전 카드연체 기록 있어도 “안됩니다”
은행권 보증심사 요건 까다로워… 대부업 경험자 14.8%만 대출
‘중금리로 갈아타기’ 취지 무색… 저축銀 9월 年15%대 사잇돌Ⅱ 출시

연봉 2640만 원을 받는 공장 근로자 김모 씨(44)는 지난달 국내 시중은행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중금리 대출상품인 ‘사잇돌 대출’을 문의했다. ‘재직기간 6개월 이상, 연소득 2000만 원, 신용등급 4∼7등급’이라는 대출 요건을 모두 충족했지만 대출은 거절됐다. “서울보증보험에서 보증한도를 산출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답답해진 김 씨는 서울보증보험에 이유를 따져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저축은행 대출 경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올해 3월 한 저축은행에서 연 27.9%의 금리로 400만 원을 빌린 것이 화근이었다. 김 씨가 “소득에 비해 부채(잔액 370만 원)가 과하지 않고, 대환 목적으로 대출을 받은 것”이라고 항의했지만, 서울보증보험 측은 “2014년 카드연체 기록도 한 차례 있어 대출을 해줄 수 없다”고 설명했다.

7월 선보인 은행권 중금리 대출상품인 ‘사잇돌 대출’의 문턱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이 20% 이상의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중·저신용자들을 위해 이 상품을 선보였으나,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대출 경험 등이 있으면 대출을 거부당하기 십상이다.

29일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실에 따르면 7월 5일∼8월 12일 사잇돌 대출 건수 총 5647건 중 최근 3년 이내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경험이 있는 이들의 비중은 21.3%로 조사됐다. 대부업 대출 경험자 비중은 14.8%로 더 적었다. 최근 3년 이내 10만 원 이상, 5일 이상 연체 경력이 있는 이들의 비중은 20.2% 수준이었다.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의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갈아탈 수 있게 하겠다는 당초 취지와는 거리가 있는 결과다. 실제로 같은 기간 전체 대출 집행금액 591억2000만 원 중에서 신용등급이 7등급 이하인 사람에게 나간 대출액의 비중은 10.4%에 그쳤다.

연소득이 6800만 원인 직장인 이모 씨(41·여)도 저축은행 대출 3500만 원을 사잇돌 대출로 갈아타려다가 거절당했다. 이 씨는 “저축은행 대출을 받으면서 신용등급이 1∼4등급에서 5∼7등급으로 떨어졌는데, 저축은행 대출 경력을 이유로 사잇돌 대출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온라인으로 사잇돌 대출을 신청했는데 ‘제2금융권 1건 이상, 카드론 300만 원 이상, 현금서비스 3건 또는 300만 원 이상 거절’이라는 안내 문구가 떴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금융위원회는 은행권 사잇돌 대출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다음 달 6일부터 저축은행에서 ‘사잇돌Ⅱ’를 판매한다고 29일 밝혔다. 최대 2000만 원을 15% 안팎의 금리로 빌려 60개월간 분할 상환하는 상품이다. 하나저축은행, 신한저축은행, SBI저축은행 등 30개 저축은행에서 판매하며 총 재원은 5000억 원이다.

5개월 이상 재직해 연소득이 1500만 원 이상인 근로소득자, 연소득 800만 원 이상의 사업소득자(6개월 이상) 및 연금소득자(1회 이상 수령)들이 대상이다. 상환 능력에 따라 △은행탈락자 연계형 상품 △제2금융권 보완형 상품 △300만 원 이내 소액을 빌려 18개월간 나눠 갚는 ‘소액신속형 상품’ 등 3가지가 있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서울보증보험이 보증을 이유로 은행권 대출처럼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면 이 수혜를 입을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사잇돌#대출#중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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