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車생산 처음엔 의심… 세계5위 올라 감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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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디자이너 주지아로 대표

77세의 노(老)디자이너는 말을 끊을 새도 없이 미래 자동차에 대한 생각을 쏟아냈다. ‘포니 정’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전 현대자동차 명예회장)과의 인연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틈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한국 자동차 사상 첫 고유 모델인 현대차의 ‘포니’를 디자인한 조르제토 주지아로 이탈디자인주지아로 대표(사진)는 여전히 정열적이었다.

주지아로 대표는 한국 자동차 역사의 산증인일 뿐만 아니라 20세기 자동차 디자인을 이끈 주인공이다. 17세 때 이탈리아 피아트에 입사해 디자이너의 길을 걷기 시작한 뒤, 1974년 폴크스바겐 1세대 ‘골프’를 디자인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후 BMW, 아우디, 부가티, 페라리, 마세라티, 캐딜락, 포드, 피아트 등 세계적 자동차를 디자인하며 세계 자동차 디자인의 거장이 됐다. 영화 ‘백투더퓨처’에 나오는 ‘드로리안 DMC12’와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 잠수함으로 변신하는 ‘로터스 에스프리’도 그의 작품. 한국에서는 포니를 시작으로 스텔라, 엑셀, 쏘나타, 라노스, 마티즈, 매그너스, 코란도 C 등을 디자인했다.

주지아로 대표가 1973년 도쿄모터쇼에서 정세영 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 세계 5위 자동차 회사가 된 현대차의 성장은 감격일 수밖에 없다.

“솔직히 당시 현대차 공장에 대한 첫 인상은 실망스러웠어요. 자체 모델도 없이 미국 포드차를 조립 생산만 하는 ‘작업장’ 수준이었던 데다 부품 회사도 없는 나라였죠. 당연히 차를 만들 수 있을까 의심했지만 결국 해내더군요. 한국인들은 자동차 산업 성장에 자부심을 느껴야 합니다.”

그가 기억하는 정세영 회장은 좋게 말해서 열정적인, 있는 대로 말하면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다.

“시간은 별로 없는데 하고 싶은 건 엄청 많은 분이었어요. 그런 성격 덕분에 현대차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듯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 돈이 많은 사람이라기에 자신이 타고 싶은 고급 스포츠카를 만들어 달라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대중을 위한 중소형차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의외였습니다.”

주지아로 대표는 포니의 스타일부터 엔지니어링까지 전 과정에 참여했다.

차의 ‘미래’에 대해 말할 때 그는 가장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미래에는 차를 사는 목적이 달라지고, 규제에 따라 형태도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사람 한 명이 시내에 가는데 5m의 길이와 2m의 폭이 왜 필요합니까? 자율 주행이 되면 핸들도 없어지고 쓸데없는 공간을 줄일 수 있겠죠. 과시를 위한 게 아니라 진짜 이동 수단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법이 규제하지 않으면 의미 없는 공간은 계속 존재하고 교통 체증도 그대로일 겁니다.”

전기차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환경 양극화’는 우려했다. 그는 “무선 충전 기술이 발달하면 자동차가 달리면서 도로 밑에서 전기를 공급받아 충전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터리를 만드는 곳은 오염이 심해지고, 그 배터리로 달리는 차를 쓰는 곳은 환경이 좋아지는 지역별 양극화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지아로 대표는 “한국 차 중에는 기아자동차의 K7, K9, 스포티지와 현대차 i30, i40 등을 눈여겨보고 있다”며 “피터 슈라이어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사장은 뛰어난 감각으로 유럽풍의 좋은 균형과 스타일을 한국에 잘 전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세운 이탈디자인이 폴크스바겐 그룹에 들어가서 이제는 현대차와 같이 일할 수 없게 돼 아쉽다”며 웃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포니#현대#주지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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