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공감백서 맞아, 맞아!]직장 옮기는 ‘환승학 개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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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속 상사 “회사 옮겨봐야 마찬가진데”
부하 직원 “거긴 네가 없기 때문이야”

회사 옮긴 898명에게 물어보니
“이직해도 다 똑같은데 뭣 때문에 옮기려 그래?”

직장인들이 지긋지긋한 회사에 사표를 내고 작별을 고할 때 직장상사로부터 한 번씩은 듣는 말이다. 최근 직장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회의하는 회사원’ 페이스북 페이지는 이런 상사들에게 이직하는 직장인들이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차마 말하지 못한 한마디를 날린다. “(왜냐하면) 거긴 네(상사)가 없기 때문이야.”

‘회의하는 회사원’은 회사원들이 매일 직장에서 겪는 애환을 촌철살인의 짧은 문구로 표현하면서 요즘 많은 젊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꼴 보기 싫은 직장상사를 피해 환승(이직)을 하는 직장인이 많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고 평탄치 않다. 정답이 없는 직장인의 ‘환승학 개론’을 들여다봤다.

○ 10명 중 9명이 이직 충동 느껴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다. 최근 직장인 박모 씨는 ‘피할 수 없는 일을 즐길 수는 있어도 피할 수 없는 사람은 결코 즐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서울의 한 회사 법무팀에서 일했던 박 씨는 몇 년 전 입사 3년 선배이자 직속상사인 정모 과장의 괴롭힘을 못 견뎌 퇴사를 결정했다. “로스쿨에서 좀 더 공부해 변호사가 되겠다”며 정 과장 면전에 사표를 내던질 때는 속이 후련했다.

국내 한 로스쿨에 입학한 그는 학비, 생활비를 포함해 연간 2000만 원 이상을 수년간 투자한 끝에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대형 로펌에 입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결국 과거 직장 경력도 인정받지 못하고 다시 대리급 변호사로 대기업 법무팀에 입사했다. 더 끔찍한 건 책상 앞자리에 꼴도 보기 싫었던 정 과장이 앉아 있더라는 것. 알고 보니 정 과장도 박 씨가 입사한 회사의 법무팀으로 이직해 있었던 것이다. 박 씨는 “몇 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아직도 대리네”라며 비웃는 정 과장을 보며 다시금 이직을 결심했다.

취업 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98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3.5%(1853명)가 ‘사표를 내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실제 이직한 직장인의 절반 이상이 충동적으로 회사를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직 경험이 있는 직장인 89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7.7%(518명)는 ‘충동적으로 퇴사 및 이직을 결정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36.1%(187명, 복수응답)는 퇴사를 결심한 이유로 ‘대인 간 갈등’을 꼽았다. 인간관계가 퇴사나 이직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 평판 신경 안 쓰면 이직도 어려워

광고업계에서 4년간 일했던 김모 씨는 지난해 여름 회사를 떠난 뒤 아직 백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퇴사한 뒤 마음을 정리하고 올해 초부터 경력직 공개채용 공고가 뜰 때마다 서류를 넣었다. 서류전형까지만 해도 회사 측에서 호의적인 태도로 연락을 해왔지만 정작 면접을 보고 나면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번번이 면접에서 낙방하자 김 씨는 조급해졌다. ‘내가 말주변이 없는 걸까, 아니면 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절망감에 빠진 그는 전 직장동료와의 술자리에서 기분 나쁜 이야기를 들었다. “선배 평판을 묻는 전화가 종종 걸려오는데 회사 대표가 좋은 말을 안 해주나 봐요.” 그제야 김 씨는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근무 환경에 대한 문제로 회사 대표와 대판 싸웠던 일이 기억났다. 이직할 때도 전 직장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에 그는 쓰디쓴 소주를 몇 병이나 들이켜야 했다.

전문 마케팅업체에 다니던 이모 씨도 지난달 취업 포털에 이력서를 올렸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한 거래업체로부터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는데 우리 회사 일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겠느냐”는 핀잔을 들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한 헤드헌팅업체가 포털에 올라온 이 씨의 이력서를 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자신들의 고객사들에게 뿌렸고 이 과정에서 거래업체로까지 흘러들어간 것. 결국 이 씨는 거래업체에 해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직 계획까지 포기해야 했다.

회사를 그만두는 직장인 중 시간에 쫓겨 인수인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는 금물이다. 직장 문화 서비스기업 오피스N 관계자는 “어느 정도 업무를 익힌 직원이 갑작스럽게 퇴사하면 기업으로서는 큰 손실이다.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직원도 평판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재취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직장인#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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