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물가 35.8% 껑충… 인플레 공포 커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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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물가 쇼크]
원유값 급등 영향 13년만에 최대폭… 기상악화-물류난에 식량값도 비상
전세계 식량수입 금액 역대 최고… “내년 물가 예상보다 더 오를수도”

유류세 인하 첫날, 주유소 늘어선 차들 기름값 상승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가 유류세를 내린 첫날인 1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이날부터 6개월간 유류세가 20% 내린다. 휘발유는 L당 
164원, 경유는 116원가량 인하된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유류세 인하 첫날, 주유소 늘어선 차들 기름값 상승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가 유류세를 내린 첫날인 1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이날부터 6개월간 유류세가 20% 내린다. 휘발유는 L당 164원, 경유는 116원가량 인하된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수입물가가 13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치솟았다. 수입물가가 오르면 국내 소비자물가도 함께 뛴다. 올해 식량 수입 금액도 역대 최고치로 오르는 등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공포가 커지고 있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수입물가지수는 전달에 비해 4.8% 오른 130.43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3년 2월(130.83) 이후 8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35.8% 올라 2008년 10월(47.1%) 이후 13년 만에 상승 폭이 가장 컸다.

특히 국제 유가가 크게 뛰며 수입물가 상승세를 이끌었다. 국내에 많이 수입되는 중동산 원유 기준인 두바이유는 10월 평균 배럴당 81.61달러로 지난해 10월에 비해 100.7% 급등했다.

각국이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식량 가격도 함께 치솟으면서 농산물 가격 상승이 물가 전반을 끌어올리는 ‘애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11일(현지 시간)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식량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전 세계 식량 수입 금액이 총 1조7500억 달러(약 2063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20년에 비해 14% 증가한 규모로 사상 최대다. FAO는 지난해 가뭄과 폭우 등 기상 악화로 곡물 가격이 급등했고 세계적인 물류난과 운송 비용 상승이 맞물리면서 수입 식량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공급망 차질까지 겹쳐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3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르는 등 세계 경제는 물가 급등에 휘청거리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11일(현지 시간) 보고서를 통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에너지 가격으로 인해 2021년 4분기(10∼12월) 경기 회복세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글로벌 공급망 차질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시중에 풀린 돈이 원화 가치를 상대적으로 떨어뜨리고 물가를 밀어 올리고 있다”며 “물가 상승 압력이 상당히 거센 만큼 내년 물가가 예상보다 더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원자재-유가 뛰어 글로벌 인플레… 물가 2%-성장률 4% 목표 흔들

수입물가가 13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면서 이미 3%대로 치솟은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급등한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에 이어 미국 연말 쇼핑 시즌 시작에 따른 수요 증가,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생산자물가 급등 등이 맞물린 ‘인플레이션 쓰나미’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치솟는 물가를 안정시키면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확대 등으로 살아난 경기 회복의 불씨를 살려나가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 “초과 수요는 끓는 ‘인플레 압력밥솥’”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수입물가지수는 1년 전에 비해 35.8% 오르며 2008년 10월(47.1%)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을 보였다. 최진만 한은 물가통계팀장은 “국제 유가 상승의 영향이 컸고 원자재 가격도 올랐다”고 설명했다. 품목별로 보면 원유(107.3%), 천연가스(122.6%) 등이 일제히 급등했다. 중간재 중에서는 석탄 및 석유제품(93.9%), 화학제품(25.9%), 제1차 금속제품(45.3%) 등의 상승률이 높았다.


수입물가는 보통 한 달 정도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준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입물가가 오르면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도 뒤따라 오르기 때문에 결국 국내 물가 상승을 자극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2% 상승하며 9년 9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이달 들어서도 국제 유가 오름세가 이어지면서 수입물가 상승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문제는 대외 여건이 나아지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의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PPI)는 13.5% 상승하며 1996년 집계 시작 이후 25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을 보였다. 미국의 연말 쇼핑 시즌도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있다. 미국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6.2% 올라 1990년 12월 이후 31년 만에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손성원 미국 로욜라 메리마운트대 교수는 “초과 수요가 압력밥솥을 끓이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들불처럼 번지며 ‘퍼펙트 스톰’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 물가 vs 경기, 딜레마에 빠진 당국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정책점검회의에서 “경제 회복의 온기가 아랫목까지 전해지기 위해서는 서민경제와 밀접한 생활물가의 안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크게 오른 김장 비용과 유류비 등의 가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배추 한 포기의 평균 가격은 4515원으로 1년 전보다 39.2% 올랐다.

올해 물가 상승률을 2%로 묶고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을 통한 연말 내수 회복으로 연간 4%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정부는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차질 확대를 우려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5개월 만에 내수 회복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 등에 따른 인플레 우려가 지속되는 가운데 주요국 통화정책 전환과 글로벌 공급망 차질 확대 가능성 등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물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으면서 이달 25일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1.0%로 0.2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와 경제성장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순 없다”며 “소비자들의 기대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에 한은이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세종=주애진 기자 jaj@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수입물가#인플레 공포#원유값 급등#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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