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선물 사주고 싶어요” 아낌없이 쓰는 이모-고모들

  • Array
  • 입력 2012년 4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눈에 넣어도 안 아파… 조카 바보

서울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정진영 씨(34·여)는 지난해 7월 남동생 부부가 아들을 낳은 뒤 조카의 선물을 사는 데 적잖은 돈을 썼다. 조카가 태어난 직후 미국 뉴욕에 출장을 갔을 때는 ‘자카디’ ‘봉프앙’ 등 고가의 아기 옷을 샀다. 얼마 전엔 약 50만 원짜리 턱시도를 사다 줬다. ‘버버리 칠드런’과 같은 명품 옷을 비롯해 자전거, 교구 등도 선물했다.

그는 “출장을 가면 하루는 조카 선물을 사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며 “아이 옷이 너무 예뻐서 쇼핑하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조카 사진만 보면 직장에서 쌓인 하루 피로가 모두 날아간다는 정 씨는 벌써부터 돌잔치 때 줄 ‘특별한 선물’을 고민 중이다.

[채널A 영상] ‘등골브레이커’ 아이 책가방 40만 원…“그래도 최고만 주고파”

정 씨와 같은 ‘조카바보’들이 늘고 있다. 조카바보란 소득은 안정된 반면 부양가족이 없다 보니 조카에게 애정과 관심을 쏟고 선물 공세를 하는 이모와 고모를 가리키는 말이다. 조카들이 어릴 땐 ‘선물 공세’를 하다가 어느 정도 성장한 뒤에는 수시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애정을 표시한다. 한두 달에 한 번씩 식사를 같이하는 것은 필수.

○ 미혼 남녀 33% “나는 조카바보”

동아일보와 SK마케팅앤컴퍼니가 2∼4일 25∼44세 미혼 남녀 5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3.4%가 스스로를 조카바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응답자 중 가장 많은 40.6%는 1년에 조카 선물로 10만∼30만 원을 썼다.

본보는 1년에 선물에 쓰는 금액을 기준으로 상위 20%(104명) 이상을 분석해 봤다. 이들 가운데 59.6%는 수시로 선물을 사줬고, 51.0%는 한 번에 5만∼10만 원어치의 선물을 샀다. 3분의 1 이상은 50만 원 이상의 의류나 유모차 등 고가의 선물을 준 적이 있었다. 10%는 조카 선물로 1년에 100만 원 이상 썼다. 이들은 “조카가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76.9%) “자녀가 없으니 대리만족이 느껴져서”(10.6%) 선물을 구입했다고 응답했다.

조카바보들은 대체로 소비 성향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60.6%는 쇼핑을 할 때 웬만하면 명품 또는 유명 브랜드 제품을 사고, 53.8%는 뮤지컬이나 공연을 찾아서 감상한다고 답했다. 49.0%는 “자신이 모임을 주도한다”고 답해 사회성도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조카바보 현상은 소득계층이 다양해지면서 가처분소득이 높은 미혼 남녀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돈을 쓰고 만족감을 느끼는 자기만족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며 “2000년대 중반 가수 팬클럽에서 ‘삼촌팬’과 ‘이모팬’이 생긴 것과 비슷한 심리”라고 설명했다.

○ 유통업계 ‘큰손’ 된 조카바보

유통업계에서는 조카바보들을 새로운 전략고객으로 주목하고 있다. 이들이 브랜드나 디자인을 중시하고 가격은 크게 개의치 않는 성향을 보이기 때문.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30대 기혼 고객은 ‘블루독’이나 ‘캔키즈’ 같은 국내 브랜드를 선호하지만 30대 미혼은 버버리, 구치, 랄프로렌칠드런 등 수입 아동복을 선호한다”며 “아동복 매장에서 회원 가입을 하는 미혼 이모와 고모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신세계백화점에서 30대 미혼 여성이 아동용 제품을 사는 데 쓴 금액은 2007년 94만9000원에서 작년 123만9000원으로 30.6% 증가했다. 백화점 측은 “최근 황금돼지띠(2007년), 백호랑이띠(2010년), 흑룡띠(2012년)가 이어지면서 이를 기념한 고가 선물 구매도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조카바보 ::

조카가 너무 귀여워 어쩔 줄 몰라서 조카에게 수시로 선물을 사주는 미혼 남녀를 뜻하는 말. 늦게까지 결혼하지 않은 고소득층이 많아 ‘골드 앤트’ 또는 ‘골드 엉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조카바보가 늘어나는 데는 만혼(晩婚)과 저출산의 영향이 크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조카바보#이모-고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