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회장 “기업이 왜 정부에 기대려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30일 11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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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부에 기댑니까?"

30일 제주 서귀포시 해비치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하계포럼. 짧은 머리에 빨간 재킷을 입은 여성이 마이크를 잡았다. 중소기업 여성 경영자로 주목받고 있는 김성주 성주D&D 회장. 독일 패션 브랜드 'MCM'을 인수해 세계적 브랜드로 키워낸 최고경영자(CEO)다. 김 회장은 "최근 대기업에 대한 정부 비판과 전경련 개회사 등에 관련된 소식을 접했다"며 "이번 논란에 일부 왜곡이 있다고 들었지만 (기업들은) 정부에 기대지 말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국경도 국적도 의미 없는 글로벌, 정보화 시대에 정부는 가장 하위 조직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미 젊은 세대는 글로벌 이동성이 강한 '노마드(Nomad·유목민)' 성향이 뚜렷하다"며 "앞으로 정부의 역할은 더욱 축소되고 약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업들이 더 이상 정부에 끌려다니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강연 직전까지 전경련 포럼은 주제인 '변화의 물결, 새로운 세대,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논의는 묻히고 소모적 갈등과 논쟁만 남은 상황이었다. 포럼에 참석한 1000여 명의 기업 경영자와 관계자들은 삼삼오오 모이면 최근 정부와 대기업의 갈등을 화제로 올렸다. "정부와 정치권이 중심을 잡으라"고 한 28일 전경련의 '쓴소리 개회사'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며 걱정이 많았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강연에 나선 김 회장은 기업들이 소신있게 경영활동에만 전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3년간이 한국 기업에 다시 오지 않을 '황금기'"라고 했다. 금융위기로 미국과 유럽이 주춤하면서 글로벌 경제의 주도권이 아시아로 이동하는 이때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데만도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는 설명이다. 김 회장은 "앞으로 한중일이 글로벌 경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발 빠른 중국 기업들이 브랜드 파워와 기술력을 가진 해외 유명 기업들을 사들이는 걸 보면 마음이 다 조급하다"며 "한국 기업이 당장 기업 사냥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성그룹 창업주인 고 김수근 회장의 딸인 김 회장은 "대기업과 재벌그룹의 추태가 너무 속상하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올 초 루이뷔통 회장의 방한에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유통기업 오너들이 총출동해 고개를 숙인 것을 빗댄 말이었다. 김 회장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우리도 세계적인 명품을 키우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데, 국내 재벌 기업들이 입점 경쟁을 벌이며 해외 명품에 굽실거린다"며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아시아 고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더욱 굴욕적"이라고 한탄했다.

김 회장은 또 "가진 자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1000평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집을 나와 어렵게 자립하면서 주위에 소외된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걸 직접 체감하게 됐다. 일 년에 60번 이상 비행기를 탈 정도로 강행군을 하는데 힘들 때마다 고 정주영 회장님 등 1세대를 떠올린다. 우리 2세대는 너무 안락하게 선대(先代)가 해 놓은 것을 당연하게 누린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김 회장은 여성들을 향해서도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우리나라 상류층 딸, 며느리들이 이른 시간 호텔 사우나 같은 곳에 모여 어디서 맛있는 걸 먹을지, 뭘 쇼핑할지 얘기하는 걸 듣자면 가슴을 치게 된다"고 한탄했다. 김 회장은 "대학 나오고 유학까지 다녀온 여자가 사회 탓을 하며 집에 있으려고 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며 "유교적 풍토, 남성 위주의 문화, 출산과 육아로 여성의 사회활동이 힘든 걸 알지만 여성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 여성도 군대를 보내야 강인해진다"며 "이스라엘, 스웨덴의 여성을 보면 우리나라 여성보다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기업을 향해서도 "앞으로는 여성적 시각으로 시장의 새로운 경향성을 읽어내지 못하면 후퇴할 수밖에 없다"며 "여성 인력을 과감히 고용할 것"을 당부했다.

서귀포=강혜승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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