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한국원전 러브콜에 정부는 왜 덤덤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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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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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 자신감… 경쟁국 자극할 필요없어

손님들은 ‘제품을 구입하고 싶다’고 외치고 있지만 정작 제품을 판매하는 주인은 별 반응이 없다. 한국형 원자력발전소를 둘러싼 최근의 형국이다.

필리핀, 아르헨티나 등에서 잇달아 한국형 원자력발전소 도입 의사를 보였고, 원전 관련 기업의 주가도 급등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결정된 것은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지난해 말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를 전후로 한껏 고무됐던 것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 UAE 원전 수주로 화려한 데뷔

각국이 한국형 원전 도입 의사를 앞다퉈 밝히는 것에 대해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황주호 교수는 “한국이 UAE 원전 수주를 계기로 ‘화려한 데뷔’를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UAE 원전 수주는 미국, 프랑스 등 기존 원전 수출국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며 “원전 건설을 계획 중인 국가들 역시 뛰어난 운영 능력에 가격경쟁력까지 갖춘 한국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터키와는 의사 타진 단계를 넘어 원전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했지만 정부는 담담하다. 지식경제부는 “도입 의사를 밝힌 국가가 많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정작 터키도 실제 수출까지 이어지려면 많은 단계가 남았기 때문에 흥분할 필요는 없다”며 선을 그었다. 정부가 철저히 ‘낮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UAE 원전 수주 이후 경쟁국들의 견제가 심해졌기 때문. 지경부 관계자는 “필리핀, 아르헨티나 등이 한국에만 원전 도입 의사를 타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경쟁국들이 한국 견제에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먼저 흥분해 카드를 다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또 “무조건 뛰어들지 않고 사업 규모, 리스크, 국내 역량을 고려한 뒤 진출하겠다”고 덧붙였다.

○ “멀리 내다보고 준비한다”

이 같은 ‘정중동(靜中動)’의 배경에는 기술력에 수출 계약을 위한 노하우까지 갖췄다는 자신감이 자리 잡고 있다. 지경부는 “원전 수출은 기술력에 협상 능력이 더해져야 한다”며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하기 위해 조직됐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통해 정치, 경제, 외교 등 온갖 변수가 존재하는 계약을 해봤고, UAE에서는 피를 말리는 입찰까지 거쳤기 때문에 경험도 충분하다”고 밝혔다.

또 원전 인력 수급이 빠듯하다는 점도 정부가 신중하게 움직이는 이유 중 하나다. 통상 원전 1기를 건설, 운영하기 위해서는 200명 이상의 전문 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 국내 인력으로는 UAE 외에 추가 건설은 당장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는 장기적인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 원자력 인력 수급 계획을 마련할 예정이다.

우선 국내 이공계 대학원 중 몇 곳을 선정해 토목, 기계 등 전공 지식과 원전 관련 지식을 함께 가르치는 ‘투 트랙’ 대학원을 개설하는 한편 원전 건설 및 운영 경험이 있는 퇴직자를 대상으로 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지경부 관계자는 “인력 수요와 공급에 대한 분석은 마쳤고, 거기에 맞는 양성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며 “관련 부처와 논의해 8월 세부 계획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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