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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땐 ‘오빠’-불황땐 ‘대출’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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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땐 ‘오빠’-불황땐 ‘대출’ 많아

동아닷컴입력 2010-05-07 03:00수정 2010-05-0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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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금칙어-휴대전화 스팸단어로 본 한국사회의 변화
업체들 ‘금칙어’ 선정하면
사용자 금세 변형문자 생산
최근엔 6·2지방선거 앞두고
“黨-후보 이름 걸러내라” 골치

올해 1월 LG텔레콤은 20억 원을 들여 스팸 문자메시지를 걸러주는 서버를 설치했다. 이 서버는 ‘대*출’(단어 사이 문자 삽입), ‘ㄷㅐㅊㅜㄹ’(형태소 나누기), ‘⊂ㅐ출’(다른 문자로 대체) 등 ‘대출’ 관련 수십 개의 변형 문자들까지 잡아낼 수 있다. 그러나 곧바로 ‘대출상담’이라는 단어를 세로로 쓴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후 대각선 쓰기, 빗살 쓰기, X자 쓰기 등 수많은 위치 변형 스팸 메시지가 발견됐다.

국내 정보기술(IT) 업계는 ‘금칙어’(禁飭語·사용자가 쓸 수 없게 정한 특정 단어)와 관련된 ‘전쟁’을 벌여왔다. 이동통신업계는 주로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게임업계는 게시판에 글을 올리거나 채팅을 할 때 쓸 수 없는 단어를 선정한다.

금칙어를 정하는 업체들과 이를 피해가기 위해 머리를 짜내는 사용자들. 두 집단의 쫓고 쫓기는 경쟁이 올해 10년째를 맞았다. 그 속에 우리 사회의 변화상, 시대상이 담겨 있었다.

○ ‘오빠’가 ‘대출’로 바뀐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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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2006년부터 매달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분석해 스팸 메시지에 가장 많이 쓰인 단어를 공개한다. 3월 현재 ‘최저’ ‘당일’ ‘현금’ 등 대출, 금융 관련 단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2년 전에는 ‘060’ ‘오빠’ ‘사진’ 등 성인 관련 키워드가 많았다. KISA 스팸대응팀 노명선 팀장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대부업체, 사채업자들이 보내는 메시지가 급격히 늘었다”고 말했다.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금칙어가 생기는 경우도 많다. 포털 사이트 다음은 2004년 이라크에 피랍된 고(故) 김선일 씨의 참수 동영상이 카페나 블로그 등에 나돌자 ‘침수’ ‘참수 동영상’ 등의 단어를 아예 금지시켰다. 이듬해엔 유명인들의 자살 보도가 잇따르자 ‘자살모임’ ‘청산가리’ 등 관련 단어들을 모조리 금칙어로 선정했다.

사회 통념이 바뀌면서 금칙어에서 해제된 경우도 있다. ‘일반(인)’의 상대어로 성적 소수자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이반(異般)’이나 ‘콘돔’은 2000년대 초만 해도 포털 다음에서 금칙어였으나 현재는 사용할 수 있다. 그만큼 성과 관련된 의식이 변했다는 뜻이다.

반면 게임업체 넥슨은 사용자들에게 사회적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며 ‘레즈비언’을 금칙어 리스트에 올렸다. 최근에는 ‘낙태’도 추가했다. 현재 이 회사가 모든 게임에 공통적으로 적용한 금칙어 수는 2800개가 넘는다. 넥슨의 한 관계자는 “10대들이 주로 게임을 하다 보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점 하나에 울고 웃는 금칙어

리니지와 아이온으로 유명한 온라인게임업체 엔씨소프트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2007년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온라인게임 속 공개 대화(채팅)창에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거나 비방하는 발언이 나돌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이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 당시 이 회사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 이름 등이 들어간 말들을 모니터링을 통해 금칙어로 걸러냈다.

업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변형어들이다. 특히 개인 간 파일공유(P2P) 사이트에는 점 하나로 금칙어 유무가 결정될 때가 종종 있다. 영화와 방송 콘텐츠들의 불법 다운로드를 막기 위해 ‘아바타’ 같은 단어를 금칙어로 만들어 단속을 하면 곧바로 ‘아.바.타’ 같은 변형어가 나타난다.

이 지겨운 싸움이 1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에는 사용자들이 금칙어로 선정될 만한 단어를 사용할 때 돈을 벌거나 해킹을 하는 등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넥슨 서비스 앤드 디스트리뷰션 운영팀 정재훈 팀장은 “통제당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리 때문에 금칙어 후보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며 “최근에는 ‘씨’를 ‘^^1’로 표현하거나 ‘조’ 대신 한자 ‘丕’를 사용하는 등 기발한 금칙어가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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