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단 한 번뿐? 누구에게나 두 번째 삶이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6일 15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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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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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에게 삶은 한 번뿐이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 있는 삶은 딱 한 번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고구려 담징의 벽화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일본의 법륭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다. 무려 1300년이나 되었다는데, 대대로 이 곳의 목수로 살아온 니시오카 츠네카츠에 따르면 법륭사에 있는 노송나무 기둥도 1300년이나 됐다. 수령(樹齡) 2000년 쯤 되는 나무를 기둥으로 쓴다고 하니 싹이 튼 걸로 따지면 3300년이나 된 것이다.

평생 나무를 보고 만지며 살아온 그는 나무에게는 두 번의 삶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삶은 나무 자체의 삶이고, 두 번째 삶은 목재로 쓰인 후의 삶이다. 그에 따르면 법륭사 기둥 나무는 ‘지금도 훌륭하게 자기 역할을 다하며’ 1300년째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 생전에 남긴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이라는 책에서는 “대패를 대보면 지금도 상품(上品)의 향기가 난다”며 “아직 살아있다”고 한다. 향기가 나는 건 나무로써의 가치를 잃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모든 나무가 이런 삶을 누리는 건 아니다. 현재 수령 2000년 이상 된 노송나무가 있는 곳은 대만의 원시림이 유일한데 이런 ‘천년 거목’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야생이라는 완전경쟁 환경에서 자랐다. 왜 하필 이런 곳일까? 자라는 동안 온갖 풍상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단단함을 갖춘 덕분이다. 그래서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암반지역 같은 곳에 이런 나무들이 많다. 역시 오래 산 나무를 연구한 식물학자 에드먼드 슐먼도 같은 얘기를 했다. 좋은 환경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나무들이 오래 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나무들이 오래 산다고 말이다.

하지만 새로운 1000년을 살려면 한 가지를 더 갖춰야 한다. 50년 정도 건조시키며 내부 수분을 완전히 빼야 한다. 그래야 변형되지 않는다. 이 시간을 아끼면 오래 가지 못한다. 이전 삶에 필요했던 많은 것들을 완전히 버려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이 두 번째 삶을 살겠다며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일본 아키히토 왕도 살아서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우리 주변에도 수십 년 다닌 직장을 은퇴하고 두 번째 삶을 시작한 이들이 많다. 소설 ‘백 년의 고독’을 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는 그날 한 번만 태어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숨만 쉬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기에 새로운 의미를 설정하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4-미래전쟁의 시작’에서 절반의 기계인간 마커스(샘 워싱턴)는 인류의 저항군 지도자 존 코너(크리스찬 베일)가 부상으로 죽어가자 그에게 자신의 심장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두 번째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죠. 이게 내 기회예요.” 우리도 마찬가지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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