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앞을 비질하던 노숙인…진정한 우리 사회의 숨겨진 영웅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3일 14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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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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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비교적 치안이 좋은 나라다. 그러나 요즘 잇따라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에 대해 들을 때마다 정신과 마음이 불안해진다. 과연 언제부터 우리 살고 있는 세상이 이렇게 어지러워졌을까. 한국에 단기적으로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한국이 치안이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곤 한다. 나도 한국에서 처음 생활 했을 때 한국은 정말 안전한 나라라고 생각했으며 대학시절 학교 안에서 24시간 동안 돌아다녀도 아무 문제 생기지 않을 거라는 확신으로 대학 생활을 보냈었다.

하지만 한국어 수준과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고, 각종 뉴스 헤드라인에 보이는 사회 뉴스를 보기 두려워 이제는 일부러 접하지 않은 지 꽤 오래 됐다. 뉴스를 멀리 하는 게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기에 끊어 버린 지 몇 주 째다. 동시에 필자는 나름대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밝은 면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선한 것들이 충분히 많이 존재하고 있음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나는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가장 바쁜 곳 중 하나인 서울역 인근에 거주한다고 이전 글에서 독자들에게 알린 바 있다. 이곳은 하루에 수십 만 명이 다닐 정도로 복잡한 곳이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며 어떤 사람들은 노숙하기도 한다. 종종 술에 취한 노숙인의 무례한 행동들이 눈에 보이지만 누구도 그들을 말리지 않는다. 가끔은 정신이 혼수상태가 된 노숙인을 구하러 119 구급대원들이 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마치 우리 사회에서의 그림자 속에 가려진 사람들 같다. 누구도 이들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뀐 사건이 있었다. 여느 때처럼 아이 손을 잡고 늦은 저녁에 지하철 출구에서 나왔는데, 휠체어를 탄 한 노숙인이 큰 빗자루로 들고 지하철 입구를 청소하고 있었다. 뒷모습을 보고 감동해서 가까 가보니 한 쪽 다리가 없으셨다. 나는 그냥 가만히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늦은 밤에 청소하는 그를 보고 우리 사회에 숨겨진 영웅들이 있기에 우리가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직은 사람 살만 한 사회라는 것을 느꼈다. 뉴스나 신문에서는 대부분 매일 같은 대형사건을 반복해 보도하지만 이런 사소한 좋은 일들은 그 안에 잘 담기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는 너무 감동한 나머지 가까운 슈퍼마켓에 들려 먹을 것 몇 개 챙겨 가서 그에게 건넸다. “날도 더운데 고생하시고 계셔서 사 왔다”고 말하니 그는 웃으며 봉지를 받았다. 자세히 보니 한 쪽 눈도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가 사회의 청결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고 하나를 더 배우고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회적으로 장애인, 한 부모가정, 다문화가정 등을 사회가 돌봐 줘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들 중 본인 삶이 힘들더라도 남을 돕는 것을 잊지 않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결혼이주여성과 그들의 자녀가 암에 걸린 아이들에게 머리카락을 기부하는 경우도 봤고, 외국인 유학생들이 복지관이나 요양원 같은 곳에서 봉사하는 경우도 흔하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 가져도 사회 속 보이지 않은 영웅들을 발견할 수 있다.

꼭 돈과 권력이 많아야만 우리 사회에서 안전이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하철역 앞에서 비질을 하던 그를 통해, 그리고 많은 외국인과 다문화가정의 사례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 사람 목숨을 구하는 사람들 또한 잊을 수 없다. 악한 사람들보다 선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해 주는 일이었다. 그 어느 시절에도 이런 보이지 않은 영웅들이 존재하였기에 한국 사회가 빠른 시간 안에 발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벗드갈 몽골 출신·서울시립대대학원행정학과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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